관계의 무게

in #kr6 years ago

“저기.”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걸어왔다.

“알 수도 있는 친구에 떠서 친해지고 싶어서 친추 했는데 안 될까요?”

당황스러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페이스북 ‘알 수도 있는 친구’ 리스트에 내가 왜 올라가 있는 것이며, 저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고 친해지고 싶다는 것일까. 내 타임라인 대부분의 글은 친구공개라 게시물이 보이지도 않을 것인데…

“당황스럽네요.”

나는 이 메시지를 통해 여자의 속내를 묻고자했다. 알 수도 있는 당신은 왜 나와 친해지고 싶은지,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했다. 또 이유가 있다고 할지언정 당신과 내가 친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정 그렇다면 내가 당황스러운 만큼 당신은 당신의 면을 조금 깎아줬으면 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그 동안, 이미 잘 아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완전히 잊게 될 즈음,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싫음 마시구요.”

얘는 뭘까. 다짜고짜 친해지자고 메시지를 보내오더니 싫음 마시라니? 세상에 진짜 별 사람이 다 있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한글로 풀이하면 사회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은, 사람이 매개가 되어 그들 간에 관계를 맺게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소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디지털화 된 것인데, 나는 이 디지털화가 본질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은 0과 1로 이루어져있다. 친구면 친구고, 친구가 아니면 친구가 아닌 것이다. 또, 말을 하면 말을 하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날로그는 어떤가. 완전한 타인에서부터 내 몸처럼 소중한 친구까지 친함의 정도가 0과 1처럼 구분되어 있는가? 또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친구라기엔 어색하고, 모르는 사람이라기엔 안면이 있는 사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소리 없는 말, 친구라고 불리지만 서로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 또 같은 말이지만 표정과 억양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는 메시지. 0과 1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것들이 우리의 관계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SNS 상에서 0과 1로 변환되어 다양한 모습(그룹핑, ‘ㅋㅋㅋ’, 이모티콘, 짤방 등)으로 현실을 반영하려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가벼움은 어쩔 수 없다.

그럼 다시, 도대체 그 여자는 뭘까. 내가 “네, 좋습니다. 친구하죠.”라고 말하면 당신과 내 관계가 0에서 1로 바뀌고, 친밀도가 상승하여 진짜로 친구가 될 것이라 믿었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관계를 생각하는 가벼운 마음이 ‘당신 말처럼’ 싫으므로 친구 요청은 거절이다. 관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답장 하고 싶었지만, 좀 시비 거는 느낌인가-라는 생각에 딱히 더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답장은 하지 않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당신이 내 답장을 기다렸다면, 그 기다림이 당신 스스로 당신의 메시지에 좀 더 많은 무게를 싣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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