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KENZO 브랜드 스토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baaam입니다.
다섯번째로 소개할 브랜드는 겐조입니다.
다카타 겐조
파리의 패션계에서 성공적으로 진출한 이후 사진
1970년대 정글잽!
동서양을 겐조만의 스타일로 화려함을 뽐내는!!
브랜드스토리
'겐조(KENZO)‘를 설립한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는 철옹성 같은 파리의 패션계에 ’가장 프랑스적인 일본 디자이너‘로 불리며 성공적인 진출을 한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로, 새로운 모드의 창조자라는 뜻의 네오 쿠튀르(Neo-couture)라는 말을 생겨나게 하였다.
1939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현명한 셋째 아들(賢三)’이라는 뜻의 이름과 같이 학과성적이 우수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소년 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즐겨보며 모델을 따라 그리거나 잡지부록으로 온 패턴으로 옷을 만들기를 좋아했으며, 그것을 통해 패션세계와 유럽을 향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베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누나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함께 들른 기모노 매장에서 꽃, 새, 나무, 풀, 산, 강 등 아름다운 자연이 그려진 ‘교 유젠 실크 원단’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그는 바로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에 진학하였다.
문화복장학원은 1958년부터 남학생의 입학이 가능했는데, 다카다 겐조는 그곳의 첫 번째 남자 신입생이 되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그는 1960년 소엔(装苑) 잡지 패션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소엔상(装苑賞)을 수상하면서 일본 패션계의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1961년 졸업과 동시에 ‘미쿠라’, ‘산아이’ 같은 브랜드의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하며, 젊은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단시간에 많은 디자인을 해내는 능력을 길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철거하게 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고, 그는 이 보상금으로 항상 동경하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965년 1월, 파리에 도착한 다카다 겐조는 파리의 문화, 패션, 사람들에 매료되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스케치하여 디자이너 부티크와 잡지사 등에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의 밑바닥부터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그러던 중 디자이너 루이 페로의 눈에 띄어 여러 백화점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약하게 되었고, ‘릴레이션 텍스타일’에서 일하며 니트 디자인 테크닉을 익히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당시의 파리 패션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었으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재단되어 몸에 꼭 맞는 의상들은 옷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에도 엄격한 규율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그 시대의 자유롭고 반항적인 마인드의 젊은이들에게 어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카다 겐조는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하였다.
1970년 그는 문화복장학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티크 ‘정글 잽(Jungle Jap)’을 오픈하였다. 당시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다카다 겐조는 새로운 원단을 구입 할 수 없었기에 일본에서 사온 유카타용 실크나 면,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값싼 원단 등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같은 해 6월, 첫 컬렉션 작품 중 하나인 잎사귀 문양의 일본 원단으로 만든 헐렁한 셔츠가 ‘엘르(ELLE)’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그는 새로운 스타디자이너로 떠올랐고, 정글 잽은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다카다 겐조의 디자인은 엄격하고 깐깐한 파리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활력을 가져왔다. 동일한 원단으로 상∙하의 한 벌을 제작하는 파리의 패션과는 달리 화려한 자수와 프린트가 섞인 기모노처럼 한 벌의 의상에 체크, 꽃, 스트라이프 등의 문양을 섞어 만든 의상은 자유롭고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전통적인 일본 의상 외에도 다른 문화권의 전통 의상, 예술,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남미, 극동, 스칸디나비아의 자수와 디테일 장식을 혼합한 다양한 수공예 기법과 트위드 소재 기모노, 바둑판 무늬 사롱, 꽃무늬 페전트 스커트 등 예상치 못한 다양한 국가의 여러 요소들을 결합하여 이국적인 새로운 패션을 선보였다. 이러한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국적인 디자인은 ‘에스닉 룩’을 겐조(KENZO)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게 했다.
또, 그는 실루엣에 있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1960년대에 주를 이루던 몸에 꼭 맞는 실루엣에서 벗어나, 기모노의 직선적인 평면 구성을 도입하여 진동 둘레가 넓고 소매와 다트 없이 헐렁하게 직선라인으로 재단된 풍성한 옷들을 레이어링 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너무 큰 것이 알맞은 사이즈다.(Much too big is the right size)”라고 하는 다카다 겐조의 ‘빅 룩(Big Look)’은 패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다채로운 컬러, 패턴, 소재가 서로 어우러져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976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겐조(Kenzo)’로 바꾸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의 활약은 ‘기모노 슬리브(kimono sleeve)’라는 단어를 패션 용어 사전에 올라가게 만들었고, 1980년대 일본계 디자이너들의 성공적인 파리 진출에 밑거름이 되었다.
1980년대 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이 닥치는 듯하였으나, 그는 부드러운 면 저지 꽃무늬 프린트를 개발 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의 브랜드와 디자인 철학을 지켜나갔다.
1983년 남성복 라인 론칭을 시작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그는 198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하고, 다음 해에는 ‘마이니치 패션 대상’을 수상하였다.
패션에 대한 열정하나로 프랑스인이 아닌 동양인이 파리에 패션하우스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인 다카다 겐조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간 것이 자신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현재는 패션계에서 은퇴 후 리빙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새로운 꿈과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여행은 영감을 주는 훌륭한 원천이다. 나는 모든 문화를 사랑하고 후에 기억 속에 젖어든다. 그때가 돼서야 나는 스케치를 시작한다."
다카다 겐조가 한 말입니다. 사실 패션은 천재적인 디자인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지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들을 열어 놓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접촉하면서
옷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동양인 최초로 파리 패션계에 진출한 디자이너인 것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우셨나요? 저도 패션을 배우는 학생으로써 디자이너들을 서치해 보면서 조금의 공부가 되어서 기분이 좋아요!
글을 쓰는 게 많이 부족하지만 재미있게 봐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ㅎㅎ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