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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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9 (토)

■ 민수기 32:28-42

[ 기여도가 아닌 약속에 따른 분배 ]

르우벤과 갓 자손이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들은 모세는, 이제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증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증거를 삼습니다(28-30). 모세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한 지도자는 여호수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르우벤과 갓 자손의 맹세가 아무리 진실한 것이라 하여도 모세가 증인이 되는 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제사장 엘르아살과 각 지파의 수령들이 알도록 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을 증인으로 불러서 다시 그들 앞에서 두 지파에게 맹세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가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라"고 합니다(29-30). 이러한 모세의 말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단을 건너가 함께 싸우지 않을 경우 가나안 땅을 다른 지파와 마찬가지로 분배받도록 한 것입니다. 함께 희생하며 싸우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안위와 소유만을 지키려는 지파가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것은 부당하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이 요단을 건너가 함께 싸우면 그들이 원하는 땅을 줄 것이며, 싸우지 않더라도 가나안 땅을 분배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은 르우벤과 갓 자손에 대한 편애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애도 부당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세의 명령은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이 결코 이스라엘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쟁에 대한 각 지파의 기여도에 의해서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며, 비록 자신의 소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르우벤과 갓 자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얻은 것만으로도 은혜로 약속의 땅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여도에 따라 가는 곳이 아닙니다. 주권적으로 택함을 입은 모든 자들이 자신의 공로 없이 은혜로 가는 곳입니다.

한편으로는 요단을 건너가 함께 싸우고 그 땅을 얻으면 그들이 원하는 땅을 줄 것이며, 만일 요단을 건너가 함께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 땅을 함께 배분받도록 한 모세의 명령은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모세의 말에 의하면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어떻게해도 손해보는 것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모세의 명령을 세상적인 시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땅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됨"의 문제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분열하지 않고 한 운명공동체로서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일, 르우벤과 갓 자손이 요단을 건너가 함께 싸우지 않았다고하여 가나안 땅 분배에서 제외될 경우,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은 서로 갈등하며 분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기여도를 따지고 희생이 없는 자를 구별하여 제외시킨다면 공동체는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르우벤과 갓 지파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지파에게 공동체의식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른 지파로서는 정복전쟁에 르우벤과 갓 지파가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도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구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희생없이는 결코 공동체를 하나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앞에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고 확증합니다(31). 교회는 신앙공동체이며 한 몸으로서의 운명 공동체입니다. 내가 많은 기여를 했고 나만이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서로 한 몸이 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롬12:4-5). 나의 생각에 불필요한 사람같아 보여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공동체 안에서 지체로서의 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필요에 따라 보내신 것입니다. 내가 기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세우시고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헌신도를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할때에 진정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세울 수 있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요단 동편의 땅을 르우벤과 갓 자손뿐만 아니라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주십니다(33). 요단 동편을 구하지 않는 므낫세 지파에게 요단 동편 땅을 주겠다고 선언한 모세의 결정은 갑작스럽거나 혹은 자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하지 않았을지라도 합당한 자에게 주시는 것이 은혜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므낫세지파는 요단 동편 땅을 정복하는데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성경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분배받은 요단 동편 성읍들을 자세히 열거하며 기록합니다(33-41). 그들은 즉시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양들을 위해 우리를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 성읍을 쌓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은 외형상 먼저 자신들의 삶을 세우고 난 후에 요단을 건너가 싸우겠다는 르우벤과 갓 자손의 원래 주장과 전혀 달라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처음 그들의 주장이 요단 동쪽을 얻기 위해 요단으로 건너가 싸우겠다는 빈 말을 한 것이라면, 이제는 여호와 앞에서와 이스라엘 앞에서 요단으로 건너가 싸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성읍과 양들의 우리를 짓고 있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내 삶을 하나님의 사명보다 더 가치있게 여겨 내 삶을 세워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느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내 삶을 세워가느냐는 외형적으로 같아보이나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쪽 땅을 점령해 가며 각 지역에 새 이름을 짓거나 다른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38). 느보와 바알므온과 같은 이름은 이방신들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곧 공동체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결단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그 땅의 거민들을 쫓아내고 자기의 이름을 따서 성읍의 이름을 지었습니다(41-42).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것을 기억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하신 일이 증거되도록 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나를 높이시고 그 곳이 나의 집이 되게 하실 것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내 이름이 기억되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교회 공동체 안에서 기여도를 앞세우며 사람을 멸시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부름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요 한 몸을 이룬 지체임을 기억하며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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