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텍스트와 친해지고 싶다

in #kr6 years ago (edited)

우연한 기회에 운이 좋아 외부에서 선발하는 산학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준비해가야 하는 많은 서류들 중에 아직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으며, 내 머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건 다름아닌 A4 3장 분량의 "자유 형식의 학업계획서"이다.

글쓰기라고는 교양 수업 때 해본 글쓰기가 전부고, 대학조차 정시로 와서 그 흔한 자기소개서조차 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장학생 지원할 때 썼던 한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마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비단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 뿐 만이 아니다. 글보다는 수식과 더 많이 씨름하고, 대학와서 써본 문자라고는 형식이 정해진 실험 보고서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리스 문자나 프로그래밍 코드 정도가 전부인 내게 텍스트는 음악, 영상 등 다른 매체, 특히 영상에게 그 접근성을 빼앗기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고 강제로라도 책을 많이 보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텍스트에 대한 피로감이 덜 했던 것 같다. 시간 안에 정해진 텍스트를 읽고 해석해야 하는 시험때문이긴 했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던 텍스트를 많이 읽고 친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기였다. 텍스트와 멀어진 원인을 전공이나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더이상 텍스트를 많이 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텍스트 외의 다른 매체가 급부상하면서 뉴스 기사에는 자극적인 제목과 소제목만 읽고 평가하는 댓글들이 부지기수고,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글 말미의 3줄요약 같은 것은 어느 정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전공 지식을 찾아보기 위한 방법도 더이상 도서관이나 구글링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더 편하고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물론 아직 학사수준의 수업이라 논문의 필요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심각한 문제이다. '일상'의 영역에서는 영상과 음성 등의 다른 매체를 주로 영유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직무'의 영역에서 텍스트는 아직까지 가장 중요한 매체이다. 공식적인 업무는 철저하게 텍스트를 통한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능력은 한 사회가 유지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보다는 영상과 더 친숙한 세대가 나중에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텍스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리는 의사결정은 단순히 학점이 낮아진다거나 입사에 실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텍스트의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기도 하였지만 몇 천년 간 문자가 쌓아온 지위를 다른 매체가 대신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를 못써서건, 제목만 보고 기사를 읽는것 조차 피로감을 느끼는 내게 환멸을 느껴서건, 논문 리딩을 제대로 못해서 졸업을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건, 이제는 텍스트와 친해지고 싶다. 팔자에도 없던 블로그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텍스트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되지 않는 실력이지만 두서없는 주제로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고, 스팀잇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은 펄떡펄떡 살아있는 싱싱한 뉴비이지만,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텍스트와 친해지고 싶다.

글 쓰는 재주도 없고, 아직 타인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만큼의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비문도 많고, 스팀잇에 보이는 정말 좋은 글을 써주시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좋은 텍스트들을 많이 접하고, 또 나름의 글을 많이 써보면서 텍스트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발전을 이뤘으면 좋겠다.

또한 이러한 일을 계기로 작년에 구매하고 아직 제 기능을 못하면서 주인의 손만을 기다리고 있는 내 전자책이 올해부터는 제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잡생각을 마치겠다.


(누크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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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종이에 그려본다고 생각하며 글을 써보세요~!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많이 그려볼게요ㅎㅎ

오늘 정말 춥네요 ㅜㅜ
좋은 컨텐츠가 즐거운 스티밋을 만드는거 아시죠?
짱짱맨이 함께 합니다

추운데 몸 조심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오~ 글 좋은데요. 이미 충분히 텍스트와 친해지신것 같아요 ㅎㅎ 아무래도 이과 공부를 하시니까 그리고 요즘 트렌드니까요... 전 구세대라서 텍스트 아주 좋아하는데요 글을 쓰는건 또다르네요. 암튼 오늘 글 아주 좋아요!!

격려 감사합니다!!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지도 않고 최근에는 글 읽는것도 등한시하는것 같아서.. ㅎㅎ 이렇게 글로 다른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더 친해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기소개서는 정말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예전에는 탄생부터 학창시절, 가족관계 등 줄줄이 엄청나게 써내려가는것이 정석이었는데 요새는 약간 창의적인 느낌으로 바뀌었더라구요. 지금의 형태가 훨씬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기소개서를 첨삭하고 지우는 모습을 보며 저게 뭐지 싶었습니다... 여하튼 흠흠 저는 주절주절 생각을 적게 되면 참 가벼운 글이되곤 하던데 이렇게 진지하고 좋은 글을 보게되어 기쁩니다 ! 다음 생각도 보러올게요 :D

음.. 자기소개서가 완전히 바뀐게 아니라 shinkong님께서 말씀하신 성장과정, 가족관계에 플러스 알파로 여러가지 쓰는거더라구요ㅎㅎ 그런게 필요한가봐요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좀 읽기 쉽고 가볍게 글을 쓰고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거같아요ㅎㅎ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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