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연극 '아마데우스' : Too Much의 향연 (18.04.01 광림아트센터)

in #kr8 years ago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 이름에 실린 무게는 지금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크건 작건 여러모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요 반짝 반짝 작은별을 부르는 순간, 케이블에서 고전 명작 아마데우스를 보는 순간 그렇게 우린 가볍게 모차르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의 무게추를 얹고 저울질하다 보면, 교향곡 40번, 레퀴엠 그리고 협주곡의 경이로움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어 진다.
본인 역시도 조금씩 무게추를 얹어가면서, 그의 음악을, 인생을 더 세밀히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본인이 단지 5g의 무게만큼만 알 길 원한다면 그만큼으로 족한 것이지, 강요는 없다.

모차르트를 떠올리면 많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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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경박한 웃음 소리,
여색을 밝히는 호색한의 면모,
음악보다 여흥을 즐기는 모습,
천재적이나 자만심에 빠진 인성,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경쟁과 질투의 관계,

어떤걸 실제에 또 어떤걸 허구의 범주에 담아야 할지 분간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의 허구성에 기대어, 들리는 소리보다 보여지는 이미지에 기댄채(클래식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리고 영화라는 이미지 소비가),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난 영화의 틀을 깨고 음악의 문을 열었기에, 그의 왜곡된 성격과 인생은 내게서 조금 흐려졌다는 거다.
조금의 푸념과 함께 리뷰 글을 끄적이기 시작하는 건 다름아니라, 30년이나 된 한 영화의 힘이 그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도 그 당시 배우의 성격 연구와 감독의 극 설정이 창조한 모차르트의 아우라에 손쉽게 기댄채 전혀 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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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마데우스는 동명의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앞선 내 푸념을 가이드라인으로 쉽게 예상했으리라. 영화의 설정 그대로 장르만 바꿨다는 것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 변했다. 과하게. 과유불급이라 했거늘..
영화의 아마데우스에 더 진한 마스카라를 칠하고, 짙은 립스틱, 핑크 볼터치로 과즙미까지 팡팡.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좋게 말해서 현실을 살고, 나쁘게 말해 이외수처럼 장인에서 SNS 스타가 되었다.

뮤지컬 모차르트도 같이 비교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연극만 언급하고자 한다.

한지상, 조정석 그들 배우의 무게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아니, 박효신이 모차르트를 연기한다는 것처럼 분에 넘칠 정도이다.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한지상 그리고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요즘 연기 가장 잘하는 남자 배우' 타이틀의 상위권이 아쉽지 않은 조정석.
이 둘이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를 맡았다는 건, 다분히 흥행과 작품성을 노렷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선택이 무리수가 될 줄은 기획 단계에서는 몰랐을 것 같다.

배우가 배역에 녹아내리지 못한 채 붕붕 떠다니는 건, 배우의 잘못도 없진 않겠으나, 그 전에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연출력의 부재 때문이다.
배우는 연출가가 지시하는 가이드 안에서 뛰어논다. 처음 기획, 극본 단계부터 배우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전해지고 정해진 대사 안에서 배우는 자신의 톤을 사고를 배역에 입힌다. 그리고 연출은 그런 배우의 자유를 적당히 조율하면서 자신이 설정한 큰 틀에 적합한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연출자는 최우선으로 가이드를 잘 줘야 하고, 배우를 자유롭게 풀어두어야 하고, 자유와 동시에 자제라는 테두리를 그려야 한다.

먼저, 모든 극의 흐름과 등장 인물 그리고 성격 톤 앤 매너 모두 영화를 맹신한다. 인물에 대한 고뇌 보다 장르 전환에 핵심을 두다 보니, 미세한 역효과들이 상생하고 도드라지게 만든다.
뮤지컬의 성공은 연극으로의 장르 전환도 자연스럽게 고심하게 했을 것이다. 모차르트라면 성공한다는 헛된 법칙 때문에.
연극으로 독립되어야 할 장르적 특성들은 원작 영화와 성공 뮤지컬 사이를 방황하며 억지로 불러온 모차르트를 귀천에 떠돌게 만든다.
뮤지컬의 앙상블들이 춤을 추며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때론 어설프게 노래도 부른다. 뮤지컬이면 안되면서 뮤지컬을 따라한다. 이 어중간함이 완성도를 떨어 뜨린다.
화려한(?) 조명들과 무대미술의 사용법도 뮤지컬의 형식을 차용한다. 문제는 그 퀄리티가 매우 떨어진다는데 있다.
시종일관 허공에 떠서 궁전 내부의 조명 역할을 하는 장치는 현대적 해석의 완전한 실패의 상징으로 둥둥 떠있다.
궁정을 비추는 과거의 조명을 굳이 애써 현대적 해석을 위한 긁어 부스럼의 종기처럼 도드라지게 병들어 있다.
차라리 화려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였다면. 진짜 궁정처럼. 애쓰지말고 자연스럽게. 이 작은 무대 연출하나가 이번 연극 전체의 핵심 오류를 말해준다.
"억. 지."
이 억지스러움이 모차르트 연극을 망작으로 만든다.
분신사바를 해서 귀신을 불렀으면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곱게 다시 보내드려야 하거늘. 불러만 놓고 과거를 살았던 귀신에게 현재의 귀천을 떠돌게 만들어 노여움을 사는 꼴이다.

광림아트센터의 시설 때문인가. 조명이 매우 인위적이다. 조명 컨트롤을 못하는 건지, 시설이 극 연출에 따라주지 않는 건지. 아마 전자 일듯 싶다.
배우들은 심혈을 기울여 돈을 들이고, 조명은 신경 안썼다는 건 오만한 거다.
스포트라이트는 눈뜨고 보기 싫게 밝았고, 화자를 비추는 조명의 초점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세명의 등장인물 중 말하지 않는 두 배우에게만 조명이 비춰진다. 그리고 화자는 그 사이를 떠돈다. 조명찾아서.

의상. 조정석의 모차르트의 색동 스니커즈는 세번 변한다. 처음의 레드, 극 중간의 그린, 마지막의 화이트.
그 시대를 재현한 옷차림에 또 또 현대적 디자인의 구두를 신긴다. 오직 모차르트만 그런 특혜를 받는다. 또 한번의 무리수.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연출이라니.
이런 사소한 집착이 극을 미세하게 분열시키고 작은 분열들이 모여 커다른 균열을 만든다는 것을 연출은 몰랐던 것이다.
무대미술은 피아노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
스마일 마크와 핫 핑크의 조합도 멋으로 만드는 지드래곤의 화려함과 이박사의 화려함은 토들리 디퍼런트 한 것이다.

배우들...
극을 시작하고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살리에르. 영화 속 여백과 기품은 어디로 갔나요.
오두방정 떠는 투머치 토커 살리에르와 영화에서 처럼 톤을 한껏 높인채 모차르트를 연기하는 정석데우스. 아마데우스는 없다.
모차르트를 연기하는, 납득이도 연기했고, 쉐프도 연기한 조정석이 보인다. 지휘하는 납득이라니..... 눈을 감아버렸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 톤이 3톤 정도 올라가 있다. 중간 중간 웃음을 주기 위한 설정도 뮤지컬의 잔재미에서 따온다.
앙상블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절대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조연들에게 노래 대신 몸을 쓰게 만든다.

지금 당신들은 연극을 하고 있잖아!!!! 라고 외치고 싶었다.
화려하게 발차면서 지휘하는 조정석이 아니라 봇물터지듯 솟구치는 악상을 주체 못하는 천재 모차르트가 보고 싶은 거였다.
노래하듯 대사를 주절주절 끊지 못하는 토커 살리에르 대신, 조용히 멀찌감치 서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도덕적 이상에서 한참 벗어난 모차르트에 대한 능멸과 질투의 아우라를 엿 보고싶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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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여백의 순간은 인터미션 때 뿐이었다. 아, 처음 조용히 휠체어를 끌고 나오는 늙은 살리에르의 10초. 그 후부터는 입을 닫지 않았다.
3일을 우려낸 사골처럼, 서로 다른 두 본성이 폭발하고 하나로 엉킨 진득한 인간의 본성은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 무대에서 기대할 만한 것 아니겠는가.
상업적 미장센과 자본이 뒤엉킨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과,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에 진심을 담는 뮤지컬에 기대하는 것 그것과 분명 다른 길을 걸어 가야했다.

아까운 두 배우를 소비하고, 자본도 소비한 채.
진짜 모차르트가 아닌 변질된 가상의 모차르트를 아니 스타아이돌을 만들어 냈다. 살리에르는 애초에 허구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라 모차르트만으로 언급을 마친다.
당시 극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도 심난함에 주체할 수가 없다.

화가 마크 로스코에 대한 연극 '레드'가 왜 잘 만들어 졌는지, 오답노트를 만들어 교정하라고 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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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쉬워셨겠네요. 다음에 또 좋은 작품을 만나실겁니다.

감사합니다! 공연은 좋던 나쁘던 볼 가치가 있으니까요~~ ㅎ

지당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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