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MT 계획 02] 철학은 왜 공부하며, 인문학은 왜 하나?

in #kr8 years ago (edited)

얼마 전 모 철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후 갑자기 든 생각이다. '철학은 왜 공부하나? 왜 굳이 인문학인가? 학문은 왜 하나?' 내 생각에, 인문학은 가치에 대한 물음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활동이 왜 중요한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되고 있을까?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사실상 '죽음'이다)를 말함에 있어, 인문학 내부의 문제를 말하지 않음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다른 학문의 경우 '돈'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해서 좋다. 인문학은 무엇을 중시하는가? 지원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리지나 말라! 제발 일반인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야기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들어도 잘 모르겠는 소리나 하지 말고.

인문학의 위기는 정확히는 인문학자(라고 써놓고도 민망하다)의 자질의 위기이다. 대부분 교수라는 직업을 놓고서 취직과 승진과 봉급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들 말이다. 내게 반박하고 싶은 인문학자가 있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뭐 때문에 중요한지부터 밝히기 바란다.

니체가 일찍이 말했듯이, 철학(학문)은 '가치의 가치'를 물어야 한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겨온 것들이 과연 진짜로 가치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철학은 '비판의 극한'에 있다. 한편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구체성이다. 가령 '인권'은 모호한 개념이다. 그 말이 가리키는 바가 일관되고 분명해야 하는데,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개념을 말할 때는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무심코 넘어가거나 실수하기 쉽다. '인권'은 최종 논거가 될 수 없다.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SMT를 통해 인문학 부활의 마지막 기회를 살려 보려 함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활동으로서의 학문을 살려 보자.

참고 글 : [나의 SMT 계획 01] 인문학 논문 봉인과 토론의 장


<참고 자료> (내용이 까다로우니 건너 뛰어도 됩니다.)

아래의 두 글은 '인권' 및 '인도적 개입'을 둘러싼 어려움을 보여주는 상반되는 주장을 담고 있다. 글이 조금 어렵더라도 참고 삼아 기록해 둔다. (2009학년도 법학적성시험 논술 3번 문제의 제시문.)

(가)

우리는 코소보 사태와 동티모르의 비극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고통에 시달릴 때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이러한 비극을 중단시킬 능력이나 의지가 없을 때, 국제 사회가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소보 사태의 경우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회원국들이 국제 연합의 안전 보장 이사회의 결의도 없이 개입했습니다. 동티모르의 경우는 안전 보장 이사회가 국제 연합의 개입을 결의했지만 그것도 분쟁 관련국인 인도네시아로부터 요청을 받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개입으로 동티모르의 상황이 신속하게 안정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미 수백, 수천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5년 전 르완다에서처럼 국제 사회는 거의 한 것이 없고 개입도 너무 늦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다음과 같이 새로운 행위자, 새로운 책임 그리고 평화와 발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화와 국제 협력의 증가로 주권의 전통적인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기에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참신하고 보다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가 맞서고 있는 심각한 도전은 인류 전체의 이익이 바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권의 전통적인 개념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국제 연합 헌장과 그 이후에 나온 여러 국제 협약에 명시된 인권의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앞서의 비극들로부터 이제 우리는 인권을 유린하는 세력을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는 점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 연합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제 연합이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르완다에서의 대학살은, 국제 연합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코소보 사태를 두고 벌어진 국제 사회의 갈등은, 국제 연합을 통한 합의나 분명한 법적 권한이 없이 취해진 군사적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똑같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인도적 개입의 딜레마입니다. 국제 연합의 권한 위임 없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아니면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엄청난 규모의 인권 유린이 계속되는 것을 묵인해야 하는가? 코소보 사태에서 나타난 이러한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을 국제 사회가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정말 비극으로 보일 뿐입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비극적 사태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인도적 개입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인권 유린은 어디에서 발생하든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코소보 사태에서 보았듯이, 어떤 행동이 필요하고 언제 그리고 누가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방식에도 합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인도적 개입을 무력 사용만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인도적 개입을 판단하는 기준도 지역이나 민족이 관련된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사회 모두의 이익이 개별 국가의 이익이라는 근거에서 전통적 의미의 주권 개념을 넘어서야 합니다. 또한 국제 연합은 헌장의 원칙을 유지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상에 부합하는 실질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인권을 유린하는 사태가 종결되어도 평화를 유지하고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

개별 국가들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할 때 문제가 된 사안들은 결코 타협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인권의 맥락에서만 말한다면 이와 관련된 분쟁은 결국 협상이 불가능한 사안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자신의 주장을 인권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면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쪽과 극단적인 대립만 초래할 뿐입니다. 인권이, 갈등하는 쌍방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통의 틀은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인권을 보장할 수단과 방법뿐만 아니라 인권 그 자체의 내용도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권은 곧 정치입니다.

초국가적 법질서가 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국가 주권을 넘어선 시대를 기대하는 것은 유토피아적입니다. 국가 주권을 세계화 시대에 사라져 버릴 낡은 원칙으로 여기지 말고, 최소한 국가 주권이 국제 질서의 토대라는 점 그리고 국가의 헌정 체제가 인권의 최상의 보루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가 지난 50여 년 동안 국가를 개인의 인권에 가장 큰 위험으로 간주해 온 인권 옹호론자들에게는 낯설 뿐만 아니라 논란거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권에 대한 주된 위협은 폭정으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전과 무정부 상태로부터도 비롯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권의 보루로서 국가 질서의 필요성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즉 시민의 자유는 선의의 외부 개입보다 시민들 자신의 제도를 통해 더 잘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국가의 모든 질서가 해체되고 시민들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에 빠지거나, 국가가 끔찍하고 반복적이며 조직적인 폭력을 시민에게 자행하고 있는 곳에서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 제재를 가하는 것에서부터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에 이르는 직접적인 개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담론은 다름 아닌 인권의 보호입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래 우리가 수행한 개입들을 보면서 누가 그 개입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보스니아에서의 개입은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사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단지 벌어지고 있던 인종적 내전을 잠시 멈추게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권 문화를 공유된 제도 속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개입은 인권 존중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인권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개입은 성공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군사력의 사용이 인권 보호에 불가피한 요소라면 개입이 불가능하도록 설정된 지금의 국제 체제를 바꾸어야 할지 말지가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약소국들은, 개입에 대한 권리가 어떤 형태로든 정식화된다면 결과적으로 이러한 권리는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뿐만 아니라 보호하는 국가의 주권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개입을 옹호하는 국가들은 국제 체제가 실제로 이미 용인하고 있는 것들을 문서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즉 어떤 국가의 인권 실태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 그들은 안전 보장 이사회가 여러 형태의 제재에서부터 전면적인 군사적 개입에 이르는 단계적 강제 수단을 취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국제 연합의 제도적 틀 내에서는 인도적 개입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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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쉽게 말해줘;;ㅋㅋㅋ
내일 올스팀에서 제대로 들어야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겨온 것들이 과연 진짜로 가치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다른건 복잡해서 스킵좀 눌렀는데, 이 말은 가슴팍에 팍 와닿네, 잠자기전에 멍때리면서 함 생각해 봐야지

내일 좋은강연부탁드립니다 형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인터넷의 발달로 아는척이 늘어난 세상이지만 역시 원조는 철학책 읽고 아는척하기긴 하지.

속세적인 것이 나쁜 것이 아닌데. 너무 금기시하는 것 같습니다.

소시민적으로 보실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내면을 철저히 해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인문학을 배우면 돈이 됩니다. 돈을 벌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제가 인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자본도 인간이 굴리는 겁니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돈과 시간을 벌 수 없습니다. 인문학 만큼 인간 그 자체를 파고든 학문도 없습니다.

그리고 구체성이라는 부분이 너무나 흥미롭습니다. 동의합니다. 분명히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한 인문학적 자산들이니까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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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라기보단 이제 시대가 이공계를 원하는 쪽이 아닐까..취업도 잘되구,,인문학은 생활체육 처럼 생ㅎ활속에 스며들어여 점점 넓어지지않을까 싶은데.. 아름형 화팅~~

먹고사는 것으로 부터 자유롭게 ,순수하게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분일것같네요.

우리 같이
가치의 가치를 찾아 나아가용~!

드디어 올스팀 3회차 강연 밋업 만남 설렘~설렘~!

bluengel_i_g.jpg Created by : mipha thanks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셔용^^ 감사합니다 ^^
'스파'시바(스빠씨-바)~!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앞으로 스팀잇을 철학적으로 풀어줄 수 있나요?

'블록체인의 철학'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고요, 당연히 스팀잇도 다루게 됩니다.

t3ran13님이 armdown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t3ran13님의 [The Alternative Steem TOPs, 28.08.2018 GMT] Top Of The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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