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예술과 예술가는? (art and artist in the age of AI)

in #kr6 years ago (edited)

강의 요점 소개

전에 안내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특강 안내 : 인공지능의 시대, 미래예술의 가능성 중 제3강이 5월 17일 6시부터 9시까지 열립니다. 장소는 석관캠퍼스 연극원 L506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또는 포스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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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위 특강의 '자료집'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물론 강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면서 훨씬 더 자유분방하게 진행됩니다.) 출판 예정인 글의 일부이니, 절대 퍼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링크를 거는 건 무방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예술과 예술가는?

요약: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은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지능적 활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잠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예술은 어떤 지위를 갖게 될 것이고, 예술가의 작업은 어떤 전망을 지니게 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1) 인공지능이란 무엇인지를 논리학적, 공학적으로 살펴본 후, 2) 18세기에 확립된 ‘예술 체계’는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 3)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시대에 어떤 특성이 예술의 독특성과 고유함으로 여전히 남게 될지, 서로 비교해 보려 한다. 이를 통해 예술가, 감상자, 연구자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이 작업은 미학과 예술론의 미래에 약간의 방향성을 부여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내용:

1.

오늘날 컴퓨터공학자들은 인공지능을 정의하기 위해 ‘지능적 에이전트(intelligent agent)’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지능적 에이전트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의된다. 여기에서 환경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 ‘과제 환경(task environment)’이다. “과제 환경들은 본질적으로 ‘문제들(problems)’이고, 합리적 에이전트는 그것들에 대한 ‘해답들(solutions)’이다.”(러셀&노빅) 여기서 ‘문제들’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준 문제, 즉 과제이다. 합리적 에이전트는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과제에 대한 최상의 해답을 성취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 공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한 가지 과제 해결에 특화되어 있다.

지능적 에이전트로 정의되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준 과제에 대해서만 합리적 해답을 제출한다는 점은 인공지능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경우는 어떨까? 동물에게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문제가 닥친다. 차이는 동물은 문제를 문제라고 감지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에게는 문제를 문제라고 알려주어야 하는 데 반해, 동물은 스스로 문제를 문제라고 깨닫는다. 문제가 생긴 후에 지능이 작동하는 과정은 인공지능에게나 인간에게나 똑같다고 봐도 좋다. 현실적인 최상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불러도 좋다.

인공지능의 핵심인 알고리즘은 자신의 고유한 의지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 게 아니다. 목표를 정하는 건 인간이다. ‘문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학에서는 문제가 인간이 정해준 과제 형태를 하고 있다. 반면에 진화를 보면 문제는 환경에서 생물에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으로 닥쳐온다. 진화란 문제의 발생과 문제의 포착, 그리고 문제의 해결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학과 진화에서는 각각 문제의 성격 자체도 다르고, 목표의 위상도 다르다.

인공지능은 인간지능과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이나 목표 성취를 위해 각자 합리적으로 접근하지만, 인공지능에서 문제나 목표는 에이전트 바깥에서(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주어지는 반면 인간지능은 문제나 목표를 스스로 정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원리상의 차이는 문제나 목표가 외적이냐 내적이냐에 있다.


2.

인공지능의 토대인 알고리즘은 ‘만일 ~라면 …이다’의 복잡한 연쇄이다. 알고리즘은 사실상 그 안에 버그가 존재하면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생물은 버그나 고장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을 통해 작동한다. 진화는 생물의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손상이 생기고 큰 변형이 일어나는 걸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생물에게는 일종의 고장이지만 동시에 이런 고장은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추동력이다. 알고리즘은 간단한 지시들의 집합인데, 하나라도 고장 나면 작동이 멈춘다. 버그나 고장을 스스로 고쳐가면서 유지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논리·수학적으로 성립 가능할까?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층위가 같이 가야 한다. 하나는 작동의 층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작동을 판단하는 더 높은 층위이다. 작동의 층위에서 고장이 나면 상위 층위에서 ‘고장 났으니까 고쳐야지’라고 판단해서, 어떤 식으로든 고쳐서 계속 작동하는 ‘자가 수선(自家修繕)’ 형태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두 층위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게 원리상 가능할까? 생물 또는 마음은 자기가 고장 난 것을 스스로 고치는 자가 수선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알고리즘의 본성상 인간의 생각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차별되는 마음의 능력이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 능력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다.


3.

반성과 자가 수선의 의의를 ‘창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인공지능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당분간은 창조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창조성은 앞으로도 중요한 능력으로 상찬될 것이 분명하다. 창조성은 무언가를 최초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물론 새롭다고 다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그것이 창조적이었구나 하고 회고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것은 견뎌 배기고 살아남은 것이다. 어떤 행위가 됐건 결과물이 됐건, 사전에 그것이 창조적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창조성은 일단 긍정적 결과가 있고 난 후 거기에 내려지는 평가다.

그런데 창조적 결과는 반드시 실험을 거쳐야 생겨날 수 있다. 실험은 결과에 의해 평가되겠지만 결과를 모르는 채 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작정 실험해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창조성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하나마나한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떻게 해야 창조성을 계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나아가 창조성의 본질인 실험을 가로막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게 된다. 실험은 미리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을 막으면서 그와 동시에 창조적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창조성은 실험의 위험성을 이겨내는 개인적, 사회적 용기와 그것이 실천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예술가의 삶과 작업 방식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점이 보인다. 예술가는 남들이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롭고 미적인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남들이 뭘 만들어냈는지 다 조사해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로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류나 표절 혐의는 스스로 예방해야 한다. 예술가의 작업은 완전히 새로운 필요에서 지식을 얻도록 추동하며, 학습할 지식의 성격도 바꾼다. 암기했다가 꺼내서 써먹기 위한 지식이기보다는 자신의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지식. 다 조사한 다음에는 직접 실행해봐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실행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작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할 수 있을 만큼 기능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지식과 기능은 작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통합된다.

예술가가 더 놀라운 점은 남들이 만들어낸 것뿐 아니라 예전에 자기가 만들어낸 것도 넘어서려 한다는 데 있다. 니체는 인간만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말했는데, 예술가의 실천은 그 특징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는 창조 행위의 최전선에 있다. 더욱이 이런 방식의 삶은 재미있다. 자신이 뭔가를 창조해내고서 기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나본 적이 없다. 창조 행위 또는 창작 활동은 실제로 삶을 고양한다. 그러니 어찌 권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동시에 나는 창조 행위로서의 창작이 학습의 핵심 활동으로 여겨졌으면 하고 바란다. 각 개인이 창작자 또는 메이커가 되어 보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봐야 한다. 남들이 여태껏 하지 않았던 것을 해내는 걸 학습의 최우선 목표와 최고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 과정에서 학습자에게 그런 과제를 던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제안한 방안을 따라 학습자가 수시로 ‘나는 이런 걸 만들어볼 거야’라는 결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처음에는 조사와 실험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겠지만 결국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풀어가는 일이 몸과 마음에 배게 되지 않을까? 이는 언제이건 촉(觸)을 세우고 민감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4.

예술가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감(感)’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예술가는 남이 알아채지 못한 것을 감지(感知)한다. 나아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파울 클레(Paul Klee)가 말했듯이, “예술은 보이는 것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용어를 쓰자면 감이란 문제의 포착이다. ‘민감(敏感)하다’는 말은 ‘감(感)’에 ‘재빠르다(敏)’는 뜻이다. 민감하다는 건 조건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챈다는 뜻이다. 조건이 변하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조건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감은 생명의 능력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인간이 맞닥뜨려왔던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와는 유형이 다르다. 학습자 스스로 문제를 찾고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데, 인공지능은 그것을 할 수 없다. 기계학습은 결국 자율학습이 아니며 지도학습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습 목표, 즉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말하자면 인간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목표나 문제는 인간 스스로 찾고 정한다. 특히 생각의 수준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민감할수록 더 많이 고민한다.

현상만 놓고 봤을 때 고민이란 생각의 교란이다. 생각이 교란된다는 건 그 전에 어느 정도 생각에 질서가 잡혀 있었음을 전제한다. 요컨대 고민은 생각을 이루고 있는 규칙과 질서의 교란이요 변경 과정이다. 고민 중에 있다는 건 생각이 아직 새 질서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고, 고민이 끝났다는 것은 생각이 새 규칙에 의해 재편되었다는 걸 말한다.

물론 사서 고민을 자청하는 사람은 없다. 고민은 문제가 포착되었음을 뜻하며, 생각이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징표이다. 이런 점에서 고민은 일종의 탁월한 능력이다. 민감하지 않으면 고민도 없다. 인공지능은 고민하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아주 잘 해낼 뿐이다. 이제 중요한 차이가 드러났다. 생각의 고장은 사람에게만 있다. 요컨대 사람이니까 고민한다.

고민이 시작이라면 다음 단계는 궁리이다. 궁리란 해결책을 찾으려는 갖가지 노력과 시도이다. 인공지능은 궁리하지 못한다. 주어진 명령들을 따라갈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유라는 이름에 값한다. 자유란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라 고민하고 궁리하는 구체적 과정이다. 그러니 자유를 누린다는 건 무슨 뜻이랴? 고민이 많다면 자유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기뻐해야 하리라.


이상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한예종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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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시간만 맞으면 가보고싶네요.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민감한 사람들의 고민...
저는 별로 민감하지 않아서...
아마도 민감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이 오히려 행복할 듯 하네요 ㅎㅎ

모든 면에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은 목표가 내부에 있지 않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진화의 결과로서 외부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랜세월 진화가 만들어낸 인간만의 특징일 것입니다.

멋진 글 잘 봤습니다! 팔로우 보팅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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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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