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아벤트 자서전 <킬링 타임>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철학을 배우거나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반드시 들어봤을 이름이다.
포퍼의 반증주의를 시작으로 과학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던 시절 나는 파이어아벤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너무 우물 안 개구리같은 편협함이었구나를 깨닫고 그의 생각과 철학에 꽤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물론 나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철학 전반에 대해서도, 동양이든 서양이든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내가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만 많은 지적인 자극이 되어 준 것이 사실이다.
포퍼의 제자였지만 포퍼의 반증주의와 결별하여 쿤의 입장에 섰다가 또 쿤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절친인 라카토슈와도 첨예한 논쟁을 벌인 20세기 최고의 과학철학자였던 그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무엇이든 가능하다(Anything Goes)는 말로 과학이 무엇이다라 고 정의 내리는 것 자체를 거부한 아나키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있지만 그래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철학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그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자서전 <킬링 타임>을 읽고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과 익살스러운 에피소드들 때문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의 삶이란 고리따분하게 하루 종일 앉아서 생각하고 아무도 안 읽을 글이나 쓰는 모습을 생각해서 그런 철학자의 삶에 무슨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조금만 읽어보면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 많은 그의 이야기에 단숨에 흠뻑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파이어아벤트의 삶을 추적해가다보면 한 개인의 인생 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20세기 서양의 과학철학에 대한 흐름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어서 빠르게 현대 과학철학사의 맥락을 짚는 공부도 되는 장점이 있다.
정말 그의 삶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미장원에 갔다가 그 때부터 은퇴를 꿈꿨던 이야기나 어렸을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에 대한 회상, 2차 대전에 징집되어 군인으로 참가하여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했던 이야기, 불운했던 그의 가족관계, 버클리에서의 교수 생활, 포퍼와 쿤과의 관계, 라커토슈와의 논쟁과 함께한 우정 등등...
나는 종종 어머니를 따라 미용실에 갔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미용실에 있는 여자들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전 은퇴하고 싶어요.” 하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는 이유가 있었다.
공원에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가방을 들고 혼잡한 전차 뒤를 쫓아 뛰어가는, 초조한 남자들을 본 적이 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어머니께 묻자 “일하러 가는 거야.” 하고 대답했다.
공원에는 벤치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는 늙은 신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은퇴했거든.”
그 이후 내게 은퇴라는 말은 아주 매력적인 말로 생각되었다.
이런 글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좋았던 부분은 그의 말년을 함께했던 그라지아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다. 스스로가 남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그것이 논문이나 철학자로서의 어떤 선언이 아닌 사랑이길 바란다는 저 고백..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현명해졌다. 몇 가지 삶의 기교를 배웠고 정서적으로 좀 더 잘 균형 잡혀 있다. 이 균형이란 게 여전히 욕망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10년 전보다 내 인생을 시작하는데 더 좋은 위치에 있다. 내 생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몇 년을 더 살든지 덜 살든지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5년, 아니면 10년을 더 얻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잠깐의 짬을 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것은 내가 영원히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중요한 책이나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라지아와 더불어 늙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녀의 늙고 주름 잡힌 얼굴을 그녀의 젊은 얼굴을 사링하듯이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녀를 뒷받침해주고, 그녀가 행복할 때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나 자신의 남은 인생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나에게 주의하라고 외치는 것이지만, 그 덕분에 분명해진 것이 있다. 그것은 결국 내게 어딴 강한 성향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고독이나 지적인 성취와 같은 추상적인 사물에 관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인간에 관한 것이며, 이제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변했다. 내가 버클리 일을 계속 했더라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주의가 산만했을 것이고 너무나 많은 도망갈 길을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지아와 그렇게 긴 나날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날들이 냉혹한 에고이스트에서 한 사람의 친구, 반려자, 남편으로 나를 변하게 했다.
많은 사람은 자신과 그 자신의 환경 사이에 거리를 둔다. 하나의 전체로서 서양문명은 인간을 '개인'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나로 남고 너는 너로 남는다. 방탄유리와 같이 서로 교류하는 당사자들이 각기 자신만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감정과 행동에 한계를 부여한다.
내 경우에 그 한계는 더욱 분명하게 그어졌다. 어린 시절에 이미 나는 부모를 내게서 멀리 밀어냈다. 나중에 아버지와 살게 되었을 때, 나는 그의 공포와 궁핍함을 외면했다. 아버지가 아프면 나는 그것을 귀찮아했고 그를 여자 친구의 불친절한 간호에 맡겨버렸다. 아버지가 죽어갈 때도 그를 찾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마음이 불편했고 양친과 친지, 때론 낯선 사람과도 좀 더 친밀한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군대에서 보낸 첫 며칠 동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깨달았고, 돌아가면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최후의 며칠이 남았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한 순간 한 순간 감내할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마비는 뇌 내부의 출혈 때문에생긴 것이다. 지금 나의 관심은 내가 남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논문, 철학자로서 마지막 선언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이다. 나는 사랑이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가 마지막 떠나는 모습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쁜 추억은 뒤로한 채, 혼수상태처럼 죽음의 고통 없이 평화롭게 가고 싶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라지아와 나,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랑의 생존이다."
학부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나중에 소장용으로 한 권 구매하려고 봤더니 절판되어 버린 상태였다.
다시 재발행하면서 동시에 자서전 뿐만 아니라 "Against Method"와 같은 학문적인 성과들도 함께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 인용은 모두 정병훈 선생이 번역하시고 한겨레출판에서 출판한 번역본을 인용하였다.
책 정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3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