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함] 아이폰X 분실기 및 분실 시 주의사항

in #kr7 years ago (edited)

망한 글이 잘 읽힌다고 @dakfn님이 말씀하셔서 이 글을 쓴다.


아이폰X를 잃어버렸다. 2017년 11월 24일 출시되자마자 산 아이폰X를 그해 12월 26일에 잃어버렸다. 혹시 내가 1호 분실자는 아닐까. 네이버 검색창에 ‘아이폰X 분실’이라고 쳤다. 벌써 잃어버린 양반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겠지.
 
다 술 때문이었다. 26일 오후 10시 나는 회사 뒤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었다. 스르르 눈앞이 어두워졌다. 눈을 뜨니 집이었다. 아내가 “왜 이렇게 술을 퍼먹고 다니냐. 전화는 왜 꺼놨냐. 전화기 어디에다가 뒀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27일 오전 3시였다.
 
오전 8시 기어서 출근했다. 같이 술을 마신 친구들과 술자리를 복기했다. 내 기억에는 2차 치킨집이 끝이었는데, 3차로 맥줏집에 갔었다고 한다. 1차까지는 정신이 온전했으므로 확인해 볼 필요가 없었다. 2차, 3차 또는 택시에서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27일 오후 6시, 전날 2차를 했던 치킨집에 갔다. 주인은 습득한 휴대폰은 없다고 했다. 3차를 했던 맥줏집에 갔다. 직원은 습득한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T머니 콜센터에서 내가 탔던 택시의 운전사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택시기사는 습득한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꼭 찾게 되시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 아이클라우드에 접속해서 분실모드로 전환했다. 분실한 아이폰X 화면에 돌려주면 사례하겠다는 글과 아내의 휴대전화 번호를 뜨게 했다. 내 아이폰X를 가진 자가 전화기를 켜면 나의 애타는 메시지를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이폰이 분실모드가 되면 완전히 잠긴다. 공기계로 팔 수도 없다. 차라리 사례금을 받는 게 내 아이폰X를 습득한 자에게도 유리하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헛된 희망이었다.
 
휴대전화 보험을 들어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약간의 지원을 받아 새 아이폰X를 받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잃어버린 아이폰X를 되찾는 건 완전히 포기했다.
 
그랬는데...
 
2018년 1월 9일 오후 11시에 Find my iPhone에서 메일이 왔다. ‘OOO의 분실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그가 내 아이폰을 켠 것이다. 1월 10일 오후 3시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다.

크기변환_사본 -포맷변환_KakaoTalk_20180110_152829777.jpg
 
아 내 폰을 찾을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메시지 속 주소를 크롬 창에 쳤다. 아이클라우드와 똑같이 생긴 사이트가 1초쯤 떴다가 새빨간 화면으로 바뀌었다. 안전하지 않은 사이트라는 경고문이 떴다. 크롬은 이 사이트 접속을 불허했다. 덕분에 속지 않았다. 세상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사이트 주소를 치니까 접속된다. 그새 손을 쓴 모양이다. 주의요망.
 
fishing.jpg

피싱이었다. 놈들이 그럴듯하게 만든 ‘나의 iPhone 찾기’ 사이트에 내 아이클라우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망한다. 놈들이 내 아이클라우드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분실모드를 해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놈들은 완벽하게 깨끗한 아이폰X 공기계를 손에 넣게 된다.
 
피싱임을 알고나서 문자 메시지를 다시 보니까 더 성질이 났다. 문자의 뉘앙스가 영락없이 애플이었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교묘한 놈들이었다.
 
나는 50만원 사례하겠다는 새 메시지를 남겼다.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경찰서로 보내주고 싶었다.

놈들은 내 옛 아이폰X를 다시 켜지 않았다. 아이클라우드에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내 아이폰X는 늘 오프라인이었다. 놈들이 공기계화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 옛 아이폰X는 분해되어 부품당 얼마씩에 팔아 넘겨졌을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술은 적당히
2.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나의 iPhone 찾기’ 활성화
3. 애플에서 저런 식으로 문자 보내지 않는다. 피싱임
4. 아이클라우드 접속은 icloud.com에서만

Sort:  

사실적인 묘사가 아주 마음을 더 아프게 하네요~ㅠㅡㅠㅋㅋ
술은 적당히! 깨알 애플 피싱 팁까지~ㅠㅡㅠ흑~
더 좋은 아이가 찾아올겁니다~

흙... 감사합니다... 술은 적당히...

피싱.. ㅋㅋ 교묘하군요 저도 한 분실 하는지라.. 위로 드리고 갑니다. ㅜ ㅜ

감사합니다. 저도 분실로는 어디서 안 빠집니다. 길거리의 자선사업가랄까요... ㅠㅠ

메세지만 보면 웬만한 사람은 당하겠네요. 첫접속때 안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무서운 세상이예요 ㅜㅜ
3차를 통째로 잃으셨네요.ㅋㅋㅋㅋ 올해는 적당한 음주로 새론 아이폰 다시 잃어버리는 일없도록 하세요 ^^

예 금주는 못 해도 절주를 다짐하였답니다. 첫 접속 때 연결됐으면 덥썩 물어버렸을 거 같아요.

와 ; 저런짓도하다니 세상 참 무섭네요ㅋㅋ 보통 악질이아닌데

다 술쳐먹고 잃어버린 제 잘못입니다. 반성합니다...

와 아이폰8도 아니고 X요? 아이고................

아이고.... ㅠㅠ

저도 술 때문에 잃어 버린 적이 있어 옛 생각이 나네요.
그 놈들은 아주 교활했는데...너무 X팔려 이만 줄이겠습니다.ㅎㅎㅎ
아이폰 사용자로서 다시 한 번 상기해야 겠네요!

참으로 술이 웬수입니다만... 자꾸 웬수라는 사실을 까먹게 되네요.

대체 왜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다니는 겁미꽈. 평소에 누구랑 그렇게 술을 먹고 다니는 겁미꽈. 나는 술을 잘 못마셔서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슴미다.

대면식이었습니다... 아주 예전에 모선배가 술을 사주시면 꼭 휴대전화 등등을 분실하고는 했었던 기억이 남니다.

그 모선배는 대체 누굽미꽈

그러게 말입니다 ㅎㅎ 대체 누구시기에...

어후 ... 그걸 어떻게든 가져보겠다고 피싱까지 하다니
잠금장치라도 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다 잃어버린 제 잘못 아니겠습니까... 흙...

말을잇지.jpg

피싱이 정말 악질이네요.

예 진짜 소오름...

요새는 피싱이 정말 정교해져서 여차하면 다 속겠더라고요. 무서븐 세상..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걸 수도 있지 않나요? 명검님이 흘린 아이폰을 다른 손님이 주워갔을 수도 있고, 길이나 화장실에 흘렸을 수도 있고. ^^;;

헉 옳으신 말씀입니다. 결국 다 잃어버린 제 잘못 아니겠습니까... 반성합니다.

반은 장난으로 쓴 건데 너무 정색하시면 제가 죄송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