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아임 유어 파더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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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국민학교 입학식 날 아침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들은,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들은 팔을 넣는 구멍에 팔을 넣지 못하고 낑낑대는 아버지를 보고 깔깔 웃었다. 아버지는 이상하게 움직였다. 아들은 아버지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내가 만난 적 없는 내 할아버지가 그날 돌아가셨다. 뇌출혈이었다던가. 할아버지는 한의사셨다. 매일 아침 냉수욕을 하셨다고 한다. 동네에서 제일 인물 좋은 사내였다고, 처녀로서 재취하는 남편을 맞기 싫었는데, 그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풀어지고 말았고 생전에 내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내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남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의 분노는 사랑만큼 대단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산수를 배웠다. 산수를 배우면서 죽도로 맞고, 구둣주걱으로 맞고, 문진으로 맞았다. 그 이후로 산수, 수학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나를 때렸던 시절의 아버지가 가엾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므로, 아마 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조차 첫째를 키우면서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나는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윽박질렀으며, 때로는 완력으로 아이를 제압하려 했다. 때린 적은 없다. 때리지 않을 것이다.

4년 넘게 좌충우돌하면서 아이를 겁박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격한 훈육을 완전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단계로 가기까지 아들과 충분한 대화를 한다. 4살짜리와는 말이 통한다. “집에 가야 돼”하고 들쳐 안고 가기보다 “10분만 더 놀고 집에 가자”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아들놈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도 그것이 될까. 잘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한때 “아빠 나가서 자”하던 큰놈은 요즘 종종 울다가 아빠를 찾기도 한다. “아빠 뽀뽀”하면 열에 아홉 번은 해준다. 아직 엄마에 대한 사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정도로 충분하다.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옳은 것 같지도 않다.

지난 금요일 아버지를 회사 근처로 모시고 저녁을 대접했다. 고급 중식당에 가서 동파육, 마늘새우, 탕수육을 사 드렸다. 2차를 갔다. 괜찮은 집이 다 만석이었다. 그냥 맥줏집에 갔다. 모듬소시지에 생맥주 500㏄를 여러 잔 마셨다. 아버지는 소시지를 가리키시며 “이게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나도 언젠가 아들놈들과 이렇게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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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께 짜장면 한그릇밖에 사드리지 못했는데.. ㅎㅎ
그리운 이름입니다.

분명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드셨을 겁니다

오늘 아버지 기일이었는데... 12년... 공교롭게 이런 글을 쓰셨네요. ^^;;;

아아 ㅠㅠ

자식키우는 게 제일 어려운 일 같습니다. 강하게 키우려고 했지만 따라와 주지않고 상처만~~~

아아 저는 이제 꼴랑 네살, 두살 아들을 가진 아빠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디 강건하게 자라주기만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아들 돈쓰는걸 싫어하셨던 걸까요? 정말 소시지가 맛나셨던 걸까요?

아무래도... 후자 쪽인 거 같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꼭 그리 되실 겁니다!

마음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네요 :)
언젠가 꼭 그렇게 아드님들과 노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놈들이 그때 가서 안 놀아준다고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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