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대통령 박근혜 파면(박근혜와 함께한 토요일6·끝)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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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탄핵 심판이 임박한 무렵 나는 사건팀 부팀장으로 승진 아닌 승진을 했다. 경찰청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현장을 지킬 수 없었다. 역사의 순간 헌재 앞에 있을 수 없다는 아쉬움과 현장에서의 내 몫(몸빵)을 후배에게 미뤘다는 미안함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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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일이 다가오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탄핵 심판 이틀 전인 8일 오전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회원 400여명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일대로 몰려들었다. 탄기국 회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탄핵 기각 집회를 했다.

이날 ‘박근혜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박사모) 회장이자 탄기국 대변인인 정광용씨는 “탄핵 심판일까지 헌재 일대에서 집회를 할 것”이라면서 “10일에는 전국 12개 지역에서 전세버스로 500만명이 모일 것이다. 반드시 기각 또는 각하될 것이다. 집회 준비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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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9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구속’, ‘헌재는 탄핵’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장에서 헌재 방향으로 행진했다. 호루라기, 부부젤라도 동원했다. 주최 측 추산 1만명이 모였다. 오후 9시 10분쯤 해산했다.

탄기국은 헌재 일대에서 시위했다. 오전에 수십명 수준이었던 인원이 점점 불었다. 오후 한때에는 안국역 4·5번 출구 삼일대로 일대를 메울 정도가 됐다. 주최 측은 추산 12만명이 참석했다. 태극기,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이 군가 등을 불렀다. 동아일보 앞에서는 다른 탄핵반대 단체가 계엄령 선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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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읽었다. 헌재 앞 촛불과 태극기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촛불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청와대 쪽으로 축제의 행진을 했다. 태극기 시민들의 헌재 쪽 분노의 행진은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현장에 나간 후배에 따르면 태극기 인파 속에서 “헌재로 쳐들어가 죽이자”, “헌재 나쁜 놈들” 같은 말들이 튀어나왔다. 일부 태극기 시민들은 “이게 다 기자들 탓”이라며 기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후배는 “노인들이 기자 같아 보이는 젊은이들을 둘러싸고 다구리 합니다”라고 후배가 말했다.

내가 부팀장이 아녔다면, 거기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팀장과 나는 우리 후배들에게 “안전이 먼저다.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후배들은 인근 지하철로 피신하거나 경찰 저지선 밖으로 후퇴했다. 타사 기자 몇 명이 크고 작은 폭행을 당했다. 특히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제1 타깃이었다.

태극기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사망·부상자가 나왔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60대 남성이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경찰 소음관리차량 지붕 위 대형 스피커가 A(72)씨 머리 위로 떨어졌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외에도 6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고, 70대 남성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

일부 태극기 시민이 경찰에게 죽봉, 각목 등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버스의 창문을 깨거나 버스에 줄을 매달아 잡아당기기도 했다. 경찰관 33명이 다쳤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극렬 시위는 오후 8시까지 계속됐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7명을 연행했다.

촛불 시민들은 안국역 1번 출구 쪽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탄핵 심판을 지켜봤다. 이 권한대행이 파면 주문을 읽자 시민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대열 가장 앞에 앉아서 중계방송을 지켜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도 울었다. 나는 경찰청 기자실에서 속으로 환호했다.

퇴진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개월간 달려온 1500만 촛불 민심이 이끈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촛불 시민들은 이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광화문 광장에 모여 탄핵을 축하했다. 촛불집회는 토요일인 이튿날에도 열렸다. 나를 비롯해 팀장과 우리 팀원들은 토요일 촛불집회를 취재하지 않고 쉬었다.



에필로그


늙은 기자들은 옛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선배들은 술에 취하면 성수대교, 삼풍, 각종 연쇄살인 등 자신이 맡은 사건·사고 중에 가장 굵직한 것을 주섬주섬 안주로 꺼내곤 했다. 어쩌면 그 시절이 그들이 가장 빛났던 순간일지도 모르곘다. 나도 늙으면 그렇게 될까. 그럼 그때 나의 안주는 박근혜 탄핵이 되어야 마땅하다.

개인적으로는 피곤하고, 춥고, 뿌듯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일해야 했다. 너무, 너무 추웠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구스다운이 소용이 없었다. 여러모로 고됐지만,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일렁이는 촛불, 그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탄핵 인용 이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박근혜 청와대 퇴거·재판·맨 얼굴·붙임 머리,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나오는 각종 비위, 블랙리스트, 김기춘·조윤선 구속 등등.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른바 적폐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심판일까지 썼으므로 여기서 시리즈를 끝내려 한다. 이 진통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진일보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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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물결의 감흥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못느낄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

맞습니다. 저야 관찰자였지만... 감동적이었어요 정말로

저도 10번 넘게 참석했네요^^ 오늘 파이팅입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선거 결과는 ㅋㅋ

작년에 서울에 살지도 않았고 고3이라 집회에 참여하지도 못했지만 제가 살던 대전에서는 학원가 근처에서 집회와 행진을 했기 때문에 학원을 오며가며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날들에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학원 끝나고 가까이 가보기도 했었는데 그때 보았던 것들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살면서 집회를 하는 것을 그다지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성숙했던 시민의식이 인상깊었던 집회였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굉장했어요. 서울뿐 아니라 각지에서도 뜨거웠다고 들었습니다. 서울 중심이다보니 서울 얘기만 하게 된 것 같네요. 광주에서는 촛불이 아닐 횃불이 타올랐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 번 밖에 참여 못했었지만 유독 추운 날이어서 그런지 기억에 더 크게 남아 있네용 ^^

크으 역시. 너무 추워서 그런지 그 촛불이 더 따뜻하게 보이더라고요. 광화문 일대가 은은한 촛불 불빛으로 가득했었는데 말입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늘상 새로운 정보를 캐치해야하는것이 기자의 사명이 아닐까요?
스티밋에서도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것도 기자다운 모습이라 생각되네요.^^


한편 태극기 노친네들은 정말 나이만 많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만도 못하네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약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어서요. 여기 있는 동안은 스팀잇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적폐청산은 현재진행형이죠.
기록해주시는 기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무지 추웠다고 하셨는데, 그 추위에 촛불을 들고 나섰던 국민들께도 무한 감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야 뭐...

촛불시민들은 정말 대단했지요. 감동이었어요. 우리 민족이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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