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술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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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배를 증류해 만든 술이라니. 내 일찌기 쌀, 보리, 옥수수 등으로 빚은 술은 마셔봤어도 배로 만든 술은 못 먹어봤다. ‘문배술’이 배 맛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문배술의 원료는 수수다. 다만 야생 배 맛이 나는 것일 뿐.

배상면주가에는 ‘아락’이라는 증류주 시리즈가 있다. 각각 배, 복분자, 오디, 고구마로 빚었다. 고민하다가 배 아락을 골랐다. 유명한 고창배로 빚었대서 한 번, 문배술과 얼마나 다를지 궁금해서 또 한 번 마음이 동했다.

술맛에 앞서 술병 디자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술병의 모양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술의 본질은 맛이지만, 잘생긴 병은 술의 맛을 돋워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락의 생김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렇게 젊고 감각적인 전통주 술병이라니. 아락은 투명한 병에 흰색 라벨을 붙이고 원재료를 그려 넣었다. 그 위에 단정한 필치의 한글로 ‘아락’이라고 새겨 넣었다. 좋다.

이제 본질, 맛을 볼 차례다. 투명한 잔에 술을 따랐다. 달콤한 배의 냄새에 끈적한 단내가 섞였다. 잔을 슬쩍 기울여 흔들었다. 술잔 벽을 타고 술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점도가 높아 보였다.

배 아락을 한 모금 머금었다. 배의 풍미가 깊고 달았다. 혀에서 달았던 술은 목구멍을 향하면서 달아올랐다. 뜨거운 아락이 부드럽게 위장으로 미끄러졌다.

술이 목젖을 통과하는 찰나 그 화기(火氣)는 콧구멍을 향해 내달았다. 이 술이 알코올 도수 40도짜리 독주였음을 실감한다. 숙성하지 않은 술이므로 다층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대신 저돌적인 맛이 있다. 터프하다.

진한 향과 다디단 맛에 독하기까지 해 스트레이트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물에 희석해 마시면 좋다. 나는 1대 1의 비율로 섞어 마셨다.

희석한 배 아락은 한결 순하다. 순한데 썩 맛이 괜찮다. 알코올의 기운이 약해져 배 아락의 독특한 풍미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배 아락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이것조차 독하면 술 1대 물 2도 나쁘지 않다.

배 아락 하이볼도 괜찮았다. 나는 하이볼 잔에 얼음을 채우고 술 1대 탄산수 4로 섞어 만들어 먹었다. 톡톡 터지는 탄산 알갱이 사이로 달달한 배향이 올라왔다.

기분 좋게 먹고 성분표를 봤다. 나는 배 증류 원액 100%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 증류 원액 88%였다. 나머지는 정제수와 설탕이었다.

설탕. 설탕이라니. 나는 술을 마시면서 이 단맛이 배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었다. 설탕의 단맛이었다니. 조금 배신감이 들었다.

375㎖ 한 병에 2만5000원이다. 다시 사 먹지 않겠다. 만약 배 원액 100%였으면 ‘다시 사 먹겠다’고 썼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나머지 아락도 언젠가 먹고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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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분좋게 먹었던 어느 맥주에서 무슨 원재료로 이렇게 맛있는 맛을 내지..하곤 뒤를 봤더니 설탕. 마법의 설탕. 제기랄.

저는 설탕을 발효 과정에서 효모 활동을 촉진하려고 넣는 것까지는 용납이 되는데, 따로 넣는 것이 병적으로 싫어요.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순수'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인지.

설탕... 충격이네요. 술을 먹으면 살이 찌는 이유가 설탕이었나요?

모든 술에 다 들어가는건 아니고 일부 술에 그렇습니다. 단맛을 내고싶은데 도무지 단맛이 안나니 조금만 넣어보자. 뭐 그런거 아닐까요. 그런 술을 멀리멀리..

술을 먹으면 살을 찌는 이유는 안주 때문... 흑흑

배로 만든 술이라 어떤 향일까 궁금하네요~ ^^

아주 향긋하고 달콤하고 독했답니다^*

아락 그래도 맛있던데요 ㅎㅎ 술렁술렁 넘어가서 정신 안 붙들면 큰 일 치를 것 같았습니다.

헉 술고수시다... 제입엔 꽤 독한 데다 향까지 강해서 막 술술 넘어가지는 않았어요 ㄷㄷ

무척 고급스러워 보여요~

예- 디자인엔 정말 높은 점수 주고 싶더라고요 ㅋㅋ

설탕만 아니었더라도 다시 사드셨을텐데 아쉽네요.
술배 라고 적혀있어서 깜놀해서 클릭 했다는.. -_ -;;;

위보스는 왜 와인은 취급하지 않는겁니까 ;ㅂ ;

위보스에서도 와인을 취급합니다. 블랙라펠에서 진행했던 위보스 2차 밋업에서는 와인을 주제로 했고, 와인 소믈리에님도 초대를 했었습니다 :)
아마 기다리시면 다시 와인으로 밋업을 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앗 그런! 제가 외국에 있어서 밋업에 가는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와인 좋죠ㅎㅎ 개인적으로 전통주 와인 정말 좋아합니다

아앗! 반갑습니다 :)

술배가 뽈록... ㅠ 와인도 가끔 먹긴 해요. 하지만 내로라하는 소믈리에들이 있는데 거기서 와인 어쩌고 하기가 민망해서 와인 리뷰는 안 하게 돼요

저는 저번달에 연남동에 위치한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배 아락17도를 마셨는데, 당시에 달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문배술처럼 향미에서 배향이 향긋하게 났던 것만 인상적으로 기억하는데..... '달다'라고 말씀하신 게 무척 궁금하네요. 다음에는 사과 아락을 마셔볼 참인데, 신중하게 음미해 봐야겠네요ㅎㅎ

음 40도짜리와 17도의 맛이 좀 다른 것일까요? 아니면 제 입이 이상한 걸지도! ㅠㅠ

디자인 이쁘게 나왔네요ㅎㅎ 일품진로도 와 진짜 위스키같네~하고 성분표보면 대실망 ㅜㅜ 전통주 분류 술 중엔 첨가물 들어가는게 생각보다 많은가봅니다.

그죠... 저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전통주에 실망한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전통주’라는 명칭부터, 과연 그 명칭을 붙일 자격이 있는 술이 얼마나 되나 싶기도 하고요. 저는 첨가물로 맛낸 술은 왠지 잔기술을 부린 것 같아서 싫어요.

아락이라는 술도 있군요. 40도면 괜찮을 듯한데 25000원이면 가격이 만만찮네요. 연태고량주 정도 되려나... 배로 만든 술중에 문배주 괜찮던데요.

연태 한 병에 1만 70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문배주는 야생배 맛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 술인데요. 정작 주원료는 수수라고 합니다^^

수수가 원료에요.. 완전 속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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