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시험 재시 합격 수기

in #kr8 years ago (edited)

※ 어제 제 7회 변호사 시험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마 떨어지신 분들은 지금 혼이 완전히 나간 기분일 겁니다....... 저는 지금처럼 합격률이 낮을 때 변호사가 된 사람이 아니라, 과연 제가 쓴 후기가 큰 도움이 될까는 의문이지만, 먼저 붙은 동기들 모두 합격을 기대하지 않았을 수준의 최하위권 로스쿨생으로서 단기간 내에 점수를 끌어올린 부분은 분명 있기 때문에 혹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까 하여 여기 포스팅해봅니다.


무슨 사법고시를 수석합격 한 것도 아니고 동기들은 거진 붙은 시험을 1년 씩이나 더 공부하고 붙은 마당에 쓸데 없는 자랑을 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떨어지신 분들 중 저보다 실력이 좋으신 분들도 많을겁니다.

전 학점이나 모의 시험이나 다 바닥권이었습니다. 재시 합격 생 중 초시 성적이 가장 낮은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랑 비슷한 분들에게 혹 도움이 되는 부분이 한 두개라도 있을까 싶어 글을 남깁니다.

전 로스쿨 3년을 대학생 때보다 더 즐겁게 보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죠. 사시 구력 있으신 분, 직장 그만두고 자기 인생 걸고 로스쿨 들어 온 분들 사이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공부를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고시 공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많지 않은 공부 시간을 효율적으로 안배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학교 수업을 듣고 수업 시간에 나눠준 인쇄물로 적당히 공부하고 시험보고. 그러다 시험이 끝나면 제대로 정리를 안 하니 그냥 머리 속에서 사라지더군요. 2학년 말,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법원실무와 검찰실무 과목을 수강할 때 이미 전 허수였습니다. 졸업 시험도 가까스로 통과했죠.

작년 시험은 소설을 쓰고 나왔습니다. 객관식도 65개라는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는 점수를 받았죠. 근데 그때는 살면서 시험에 떨어져본 적이 없어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잘 실감이 가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합격자 발표일까지 정말 편하게 놀았습니다.

발표 당일 날 제 수험번호가 없으니 눈 앞이 캄캄하더군요. 불합격을 전제로 계획을 짜지 않아서 정말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습니다. 당연히 붙을 것으로 기대했던 부모님과는 몇 달간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뭘 해야될지 몰라서 다짜고짜 신림동의 모 학원 종합반 수강을 신청했죠. 지난 몇 년 간 N시생의 합격률이 높지 않다는 것과 별도로, 분명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학원 수강을 고민하실 겁니다.

저는 막연하게 학원 수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은 않습니다. 장점도 분명 있으니까요. 종합반 과정은 변호사 시험을 볼 때까지 단 하루도 수험생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매일 강의와 시험의 연속입니다. 또한 순환마다 일곱 과목이 다 들어가 있어 치밀한 수험 계획을 짤 자신이 없는 분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또 학원을 다니다보면 예전 로스쿨 스터디 때 알던 사람, 탈락 후 연락이 두절되었던 동기랑 마주치기도 하죠. 그런 소소한 것들이 재시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신림동에서 변호사 시험용 대비로 개설한 강좌는 객관식 대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 불합격한 형과 같은 날 신림동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형 같은 경우는 학원 실강은 물론이고 진도 별 모의고사도 수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일 판례집을 암기하고 기출 문제집 풀이를 반복했는데, 첫 모의 시험 객관식에서 저보다 열 개 정도를 더 맞더니 실제 시험까지 그 차이를 유지시키더군요(단 마지막 모의 시험에서 사례 점수는 제가 더 높았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시험을 통해 배점이 높은 부분 위주로 답안을 쓰는 법을 숙지하게 되니까요).

더군다나 신림동 종합반 코스는 보통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 강의를 듣게 만드는데 이걸 복습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유명 강사가 어려운 쟁점을 술술 풀어주고 개그까지 섞어서 강의하는 걸 듣고 앉아있으면 다 이해되고 머리 속에 남는 것 같지만.......(뭐 실제로 그런 분도 있으실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3순환 때부터는 이미 끊어 놓은 돈은 아까웠지만 강의는 생략하고 시험만 봤습니다.

4월 말부터 바로 공부를 시작했고 나름 하루가 보람찼습니다. 그때만큼 죽어라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매일 귀가 시간이 뿌듯하기도 했죠. 그래도 반은 뽑는 시험이고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설마 또 떨어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8월 모의 시험을 보고 깨지게 됩니다. 핸드폰도 꺼놓고, 정말 숨 쉬고 공부 밖에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8월 모의 시험에서 중간 이하의 점수를 받아버린 겁니다. 동기들과 본 모의 시험에서 받은 등수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준 밖에 되지 않았죠. 실제 시험이었다면 당연히 탈락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4달 남짓 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실어증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내 머리가 참 나쁘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거였습니다. 물론 변호사 시험을 탈락하신 분 중에는 당일 컨디션이나 운이 정말 나빴던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지금처럼 합격률이 낮은 시점이라면 사소한 차이가 당락을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변호사 시험을 떨어진 분들 중에는 또 저처럼 공부방법론이나 습관 어딘가에 문제가 있고, 또 3년의 시간을 남들만큼 노력으로 채우시지 못한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세 달을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삼 년의 차이를 쉽게 뒤집을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일단 공부하는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고시 합격한 사람들 수기도 읽어보기 시작하고 특히 장수생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뭔지 읽어봤죠. 섬뜩할만큼 제 공부 습관과 닮은 곳이 많더군요.

​이 시험은 지금부터 8개월이라는 극히 짧는 시간 안에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얇은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미 회독수가 높은 기본서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얇은 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 위주로 5번 이상 읽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며 학술적으로 궁금한 부분을 일일이 짚어가며 꼼꼼히 공부하면 떨어지기 딱 좋습니다. 8개월은 정말 중요한 것만 보기도 벅찬 시간입니다.

​중무장한 기본서를 무기로 삼을 수 있으면 당연히 좋습니다만 시간을 계산해보면 실제로 한 과목 당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기간 동안 과목 별로 최소한 3, 4회독은 해야 남들만큼 답을 쓸 수 있습니다. 단 얇은 책을 보라는게 인쇄물이나 사례집으로 시험을 대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종 유명 강사의 요약서에서 문제 출제가 되지 않았다고 저자를 비판하는 경우를 보는데, 애꿏은 강사를 욕할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그런 책으로 변호사 시험 공부를 준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자기 실력을 측정하는 연습용 책과 기본서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중 6일, 하루에 스톱워치(이걸 재는 것은 수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로 9시간 정도 공부했습니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을 쉰 적이 있는데, 처음 탈락 후 2주정도 휴식 없이 공부하다가 처음 쉬었을 때 한 번과, 8월 모의 시험 직후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이었던 것 같군요. 많은 공부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바닥권이었던 사람이 합격권까지 점수를 올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 시간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말만 되면 싱숭생숭하고 참 더럽게 외롭더군요. 당연히 공부도 잘 되지 않았죠. 그래서 떨어진 동기들 같이 학교에 모여 민사 기록 시험을 보고 스터디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어라 점수가 안 오르다가 3순환 학원 진도 별 모의시험 때부터 점수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대부분의 학원 시험에서 상위권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 제가 고수가 됐다고 착각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학원을 갔더니 제가 쓴 답안지 복사본이 100명 가량의 수강생들에게 배포되고 있더군요. 제 답안이 표본 답안으로 선정되었던 겁니다. 그 인쇄물을 두 손으로 붙잡고 신림동 학원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흐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10월에 학교에서 치루어진 마지막 공식 모의 시험 때는 간신히 중상위권 정도 점수가 나왔습니다. 그때 재시생들보다 초시생들 실력이 월등하다는 걸 실감했죠.

재시생 합격률은 오를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갈수록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비교적 실력이 양호한 사람도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고 그럴테니까요. 하지만 초시생의 전반적 실력이 더 낫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 공부 계획대로 3년을 차근차근 보낸 사람들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아마 끄트머리라도 이번 시험에 붙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학원 모의고사 점수를 보고 자신이 잘한다고 착각하고 방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의 시험은 반드시 학교에서 재학생들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참 노는 걸 좋아해서 재시 시작도 하기 전에 잘 할 수 있을까 지레 겁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곳에 돈과 시간을 안 쓰려고 하루에 딱 오천원이랑 도시락만 들고 집에서 나왔습니다. 좀 웃겨보일지 모르겠지만 효과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혹 저 같이 의지가 약하신 분이라면 이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떨어지신 분들께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떨어진 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음 날 신림동을 가는 그 버스에서 아버지의 괜찮다는 전화에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힘드시겠지만 부디 마음 다잡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로 살지 못하는 건...... 사회적인 인식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고, 8개월 간 공부하며 느끼는 그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괴로울 겁니다. 제가 정말 운이 좋아 이 시험을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 여전히 이 시험을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험으로 봅니다.

다들 건승하시고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내년에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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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십니다.. 공부하시는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거같아요

솔직히 대단할 건 단 하나도 없죠 ㅎㅎ 전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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