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가치

in #kr8 years ago (edited)

나는 영화 「친구 」 처럼 우정을 호들갑스레 다룬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작품에 결여된 것은 현실성 하나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풍미도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소주와 삼겹살을 들이키는 블루칼라들의 유대가 잰 체하는 교수들의 그것보다 더 친밀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한, '의리'라는 격한 단어를 내세운 인간 관계에는 통상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

인간 관계는 신중히 다루어야 하는 문제다. 의리라는 극히 모호한 개념으로 뭉뚱그려 이해하면, 사람과 사람이 가진 근원적 차이를 이해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사람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같은 무지는 사람들을 돈 문제가 얽힌 배신의 피해자로 만든다. 갚지 않는 사람만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일단 데여보면 비로소 이들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사람에 대해 가졌던 믿음의 방식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우정의 방식은 아래 필사한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 다 들어있다.

담백함.
각자가 가진 확고한 관심사.
자기 영역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삶.

무척이나 오랜만에 해후한 대단히 친밀한 관계임에도 아주 짤막한 시간만을 보낸 후 또 기약 없이 헤어진다. 폰 보르크의 수표를 바꾸러 가는 장면이 가장 압권. 코난 도일은 우정이 현실과 떼내어 존재할 수 없음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얼핏 보면 매정하게 느껴질 만큼 쿨한 관계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난다. 한 두마디 말에서 짤막하게 드러나는 그 남자답고 굵직한 그 표현이 주는 깊이는 '친구 아닌가?'라며 술자리에서 아무에게나 어깨 동무를 하고 나중에 의리 빙자하며 돈을 빌려달라는 천박한 우정과 비할 바가 아니다.

어런 시절에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가급적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과 끝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인연이 닿으면 아무리 멀리하려 해도 다시 보게 되어 있고, 더 이상 인연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이 하려 해도 멀어지는 게 사람이다. 조금만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그걸 알게 된다.
게다가 지금의 내가 A라면 나를 A라고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쉽게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다만, 또 어떤 형태로든 변하는 게 사람이다. 굳이 그 변화를 인정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지나칠만큼 낡았다면, 실은 그 사이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써먹을 대로 써먹은 구닥다리 추억들이 그 '종결된 관계' 사이를 메운다. 종종 '자존심'이나 '과시욕'이라는 그 구닥다리 추억만도 못한 것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이, 내가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내 모습 그대로 보아주길 바랬다. 가급적 많은 이들이 그래주기를 바랬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군주들은 자기 이름과 업적을 대리석에 새기곤 했다. 그들이 추구했던 불멸의 명예란, 남들에게 자신의 특정한 이미지를 강제하는 사업이었다.

내게 그런 욕심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명예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지만디아스 왕처럼 피라미드를 쌓을 능력도 없고, 그의 비문에 적힌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유한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이름이란 한계가 있다.

내가 진심으로 실망했던 순간은,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사람은 서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다.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음에 투영된 그림자뿐이고, 그것은 쉽게 일그러지고 변하는 것이다. 소울메이트란 두뇌 속에 존재하는 이상론적 허구가 아닐까? 삶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연애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란 부차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나를 온전히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나를 비교적 잘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잘 모르는 내 어떤 모습을 짚어줄 수도 있다. 결국 자기 자신과 좀 더 충실히 연애 하기 위해서도 친구는 필요한 것이다.

성격을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가 먹으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운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무례할 정도로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가 10대가 저지르는 주된 실수라면, 내밀한 부분은 서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무관심은 어른의 문제다.

하지만 시작이야 어떠했든 간에, 지금까지 시간을 같이 보내온 사람들은 그래도 어딘가는 다르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친구로 부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쌓아온 교훈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또 너무 먼 것도 아닌, 충돌하지 않고 삶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점을 알고 있는지에서 지인과 친구가 구분된다. 그 균형점이 어디인지는 매우 긴 시간과 여러 사건을 거쳐야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외형 상 예의와 존중을 표방하나 실은 자기 계산에 그치는 대다수 인간 관계와는 다르다.

부자의 시간과 빈자의 시간은 그 값이 다르다. 시오노 나나미는 오래 전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을 위해 15분 동안 어떤 전화도 받지 않았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난면서,
"지금 널 위해 15분 동안 아무 전화도 받지 않을게, 감동스럽지?"
라고 넌지시 말한다면 다들 날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남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으려면 비싼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로소득이 아닌, 자기 능력만으로 한 시간에 4,000만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있고, 고작 4,000원의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구라도, 4,000만원을 포기하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지 않을까. 반에서 가장 인기있는 친구가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든 선물과 왕따가 만든 선물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1년에 짤막하게 한 번 마주하는 2, 3시간이 매일 습관적으로 죽치는 2, 3시간보다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내 경험 상 만취한 술자리에서 맺어진 우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 하나 쯤은 걸릴 법도 하건만, 정말 하나도 걸리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자기 시간을 그렇게 반복적으로 낭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허세라고 비난한다만, 능력 있는 중년의 남성들이 고급 술을 선호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바쁜 와중에 제공할 수 있는 자신의 짧은 시간. 그나마 값비싼 명주라도 대접하여, 자신이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온전히 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이다. 높은 단가의 시간과 술, 그리고 거기 걸맞는 친구, 이 세 가지를 온전히 음미하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의 시간이 좀 더 가치 있기를, 계속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010년 7월 10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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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대게 잘쓰시네요
배우고 싶네요 이제 막시작한 초보입니다
팔로우하고 가용

저도 초보입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소 정곡을 찌르는 아픈 표현들이 있긴 해도 관계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써주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늘 가즈앗 하시기 바랍니다!! 가즈앗!!

ㅎㅎ 거진 10년 전 쓴 글이고 또 지금 관점은 다릅니다, 그냥 오랜 글을 정리하다가 올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가즈앗~!!

지금은 또 어떻게 생각이 변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ㅎㅎ 지금은 아무래도 나이가 먹었으니 좀 더 유하게 변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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