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6 연습 일지] Autumn Leaves

in #kr6 years ago

레슨 전 리얼북을 챙기면서 어떤 곡을 과제로 받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All The Things You Are나 Misty만 아니길 바랐는데, 선생님은 "가을이니까 Autumn Leaves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기 싫은 리스트에 Autumn Leaves를 넣지 않았을까...

가을이니까 Autumn Leaves를 하자고 하신 말은 아마 거짓일 것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레슨곡은 Autumn Leaves였겠지...

가장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 곡이 뭘까? 생각해본 적 없지만, Autumn Leaves도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배웠던 재즈곡도 Autumn Leaves다. 사람들에겐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낭만적인 곡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지겹디 지겨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넘버다.

처음 음악을 배울 때부터 Autumn Leaves를 쳤는데, 또 Autumn Leaves를 친다. 아직도 Autumn Leaves 하나 제대로 못 친다는 생각과 나뿐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도 Autumn Leaves 한 곡을 제대로 못 치고 죽을 거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이 곡 하나로 여러 가지 보이싱과 스케일, 솔로를 연습 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멜로디 페이크에 꽂혔다. 멜로디 페이크는 원곡의 멜로디를 즉흥으로 다르게 플레이하는 걸 말한다.

헤드만 카피할 생각으로 Autumn Leaves를 떠올려 보는데, 그 대단한 아성에 비해 생각보다 바로 떠오르는 연주가 없었다. 사람들은 Autumn Leaves를 생각하면 누구의 곡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 Cannonball Adderley - Autumn Leaves >

재즈 애호가들은 분명 이 버전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베스트를 골라야 한다면 이 연주다. 이 Autumn Leaves에선 행크 존스가 피아노를 쳤는데 이 곡에서 행크 존스의 연주는 반짝반짝 빛난다. 짧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한 코러스의 피아노 솔로도, 귀를 잡아끄는 인트로도 수십 번 쳐봤다.


< Bill Evans Trio - Autumn Leaves >

피아노 연주는 이 버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빌 에반스를 특히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꽤 유명하기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더듬더듬 이 곡도 많이 쳐봤다.


< Wynton Kelly Trio - Autumn Leaves >

내게 '피아노 버전 어텀 리브즈!'하면 빌 에반스보다는 윈튼 켈리의 이 연주가 먼저 떠오른다. 이 Autumn Leaves는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 것 같은데, 재즈 피아노 전공자들은 모두 알 것 같다. 왜냐면 이 곡 악보가 있기 때문에... (위에 올린 빌 에반스 버전도 악보가 있다) 나도 그 악보로 고통받았었다.


< Eddie Higgins - Autumn Leaves >

생각해보니 이 버전이 대중들에겐 가장 친숙할 것 같다. 나만 해도 카페에서 이 곡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생 땐 정말 좋아하는, 나의 최고 Autumn Leaves였지만, 요즘은 찾아 듣진 않는다.


Autumn Leaves는 노래가 있는 버전도 있고, 다른 악기가 연주한 버전도 많지만, 피아노 공부를 위한 것이니 피아노가 헤드 멜로디를 연주한 걸 찾기로 했다. 몇 번 유튜브를 뒤적이다 잊고 있던 윈튼 켈리의 또 다른 Autumn Leaves를 찾게 되었다.


이 버전은 61년도에 나온 Someday My Prince Will Come에 수록된 버전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버전도 좋아한다. 유명하진 않지만 담백하고 윈튼 켈리스러운 헤드가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솔로를 카피할 생각은 아니었으니(솔로도 카피해볼 만큼 좋지만) 오늘 연습곡은 이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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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트에 악보를 그리니 무척 어색했다. 12줄 오선지는 간격이 좁아 악보를 그리기 힘들다. 간단하게라도 왼손 컴핑을 그리려다가, 공간이 부족해 뒤에는 멜로디 라인만 그렸다.

카피를 시작하니 내가 윈튼 켈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유독 윈튼 켈리 곡을 많이 쳤는데, 쉼표의 타이밍까지 흉내 내려 했던 건 윈튼 켈리가 유일하다. 오랜만에 윈튼 켈리를 듣고 있으니, 전엔 안 들렸던 것들이 들린다. 영영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루브, 윈튼 켈리 특유의 라인들...

윈튼 켈리의 멜로디를 카피하다가, 이런 걸 정말 악보에 그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요즘은 재즈를 악보로 옮기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천재라 귀로 듣고 외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천천히라도 조금씩 악보와 거리를 둬야겠다.

원래는 오른손 멜로디만 카피하려 했는데, 하다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윈튼 켈리의 스윙은 왼손 컴핑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완벽해지기 때문에, 내일은 왼손 컴핑을 카피하기로 정했다.


Stephano Grappelli의 Autumn Leaves를 좋아한다. 풍성한 바이올린 음색으로 듣는 Autumn Leaves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건 Ray Nance가 바이올린을 켠, Ozzie Bailey가 노래한 Duke Ellington 버전이다.

Autumn Leaves는 이제 싫어하는 넘버에 넣어야 할 정도인데, 그래도 선생님이 하신 말이 위안이 된다. 가을이 왔으니 Autumn Leaves를 들어야지...

< Duke Ellington - Autumn Leav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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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가 영어처럼 느껴지내요
저는 못 읽겠다능..ㅋㅋ

영어가 잔뜩 쓰여 있어서 그럴까요? ㅎㅎ 제 글씨체가 복잡한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ㅋㅋ

엄청 많이 듣는 곡은 감명이 다 없어져버리긴 하죠. 찾아서 듣지 않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어서 좋은 경우는 있는데...개인적으로 All the things you are를 맨 처음에 들었을 때와 같은 순간은 다시는 없을 테니깐요. 한 열 살때쯤 성악가 노래로 들은 듯.

그런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들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걸 보면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위에 언급했던 곡들은 선생님의 연주, 혹은 제 연주로 처음 알게 된 곡이거든요. 음악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연습하게 되는 곡들은 확실히 더 애정도 가고 즐기게 돼요.

어떤 노래는 연속 수십 번 들어도 굳이 질린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확실히 일부러 찾아 듣지 않게 되긴 하더라구요. ㅎㅎ 제 경우는 All the things you are를 마리오 란자 노래로 제일 처음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들으면 그 느낌이 아닌 듯...그리고 음 우디 앨런 영화에서도 좀 (웃긴 장면이었지만) 예쁘게 나왔죠. ㅎㅎ

저도 오늘 아침에 마리오 란자 노래를 들어 봤어요. 이 곡도 정말 싫어하는 곡인데, 이렇게 들으니 색다르고 좋네요. 미스티는 막상 치기는 싫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데... 이 두 곡은 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봐야겠어요. 늘 감사합니다!

란자 노래 들으셨다니 웃었어요. ㅋㅋ 감정 과잉인 면도 있지만 뭐 영화에 자주 나오던 목소리이니...참고로 마리오 란자는 Be my love가 대표곡이긴 합니다! ㅎㅎ

제이미님 곁에 있다 보면 들을 노래가 한가득 쌓이지만, 그래도 제이미 님이 올려주신 음악들은 꼭 듣고 싶달까요. 들으면 다 좋아서요. 알려주신 곡도 들어볼게요. 감사해요:)

좋은 노래 또. 잘 듣고 갑니다. 높은 음자리표가 되게 특이하네요. 안에 원이 바깥원보다 큰 높은 음자리표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

좋으셨나요? 잘 들으셨다니 기쁩니다. 높은 음자리표는 어릴 때부터 저런 식으로 그렸는데, 다른 이유는 없고 좀 빨리 그리려다 보니 저런 모양이 되었네요. 가만보면 사람마다 높은 음자리표 그리는 방법이 다 다른데요. 저는 그게 일종의 서명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아카펠라 했을때 autumn leave를 처음 접해서 그냥 음표보고 부르느라 정신없어서 이렇게 다채롭게 들어보니 좋은 것 같아요. ^^ 블로그 들를때 마다 좋다는......

악보를 그리는 분들에겐 그럴 수 있겠네요. 음악시간에 이렇게 그려라 라고 배운 이후로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는데... ^^

아카펠라도 하셨나요? ㅋㅋㅋ 무척 다양한 활동을 하셨네요. 아카펠라가 참 들으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좋게 들어주셨다니 그것만으로도 기뻐요.

저도 중요한 악보는 프린트된 높은 음자리표처럼 정성껏 그리는데요. 많이 그리다 보니 저절로 효율을 찾게 되었어요:)

덕분에 이틀간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어제는 노래 듣는 중에 소나기도 오고해서 기분이 더 좋더라고요. ㅎㅎ

하늘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하늘님도 피아노를 좋아하시니, 피아노 버전을 좀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만 해봅니다. 예전에 이사 글을 본 것 같은데, 요즘 이사할 때가 되어서인지 그때 생각이 종종 나요. 이제는 편한 집이 되었겠죠? :)

재즈에 1도 관심이 없는데 글을 워낙 잘쓰셔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노래는 이따 맥주 마시면서 들어봐야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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