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상강霜降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작년 가을, 정동야행에서 구입한 향초가 있습니다.
투명한 젤캔들의 라일락 향이 좋아 꽤 오래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닳을까 아까워 불도 못피우고 향만 맡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 저는 라일락과 라벤더 향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라'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들의 이름을 일락이와 벤더, 이온이라 짓고싶다는 생각도 했답니다ㅎㅎ

오늘 아침 문득 그 향초 특유의 라일락 향이 떠오릅니다.
방 한구석에 있던 오랜만에 피운 향초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오늘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인, 상강霜降입니다.
따뜻한 향초와 따뜻한 문구로 마음이 데워지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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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마음도 아픈 상태라는 걸 알았다.

무너진 마음과 몸에 충분히 아파하며 느끼는 시간이 조금 진하게 필요했나보다.
근원적인 것과 진리에 기초해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
언젠가 예쁜 결실을 맺게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숨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숨는 게 아닌 드러냄으로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우리가 되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겠다.

다시 한 번 되뇐다.
스치는 바람에도, 지치지 말기를.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 앞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였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신경숙 #아름다운그늘

그래도 이젠 손에 책이 잡히고 글이 써지고 어떤 생각도 할 수 있으니
조금의 여유는 다시 되찾은 걸로.

가을의 서리를 따뜻하게 맞아보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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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가을의 마지막 절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가을이 금새 지나가버린것만 같아서 서운한 맘이 들더라구요~ 깊어진 가을을 맘껏 즐겨봐야겠습니다!!~ ^^

네 벌써 10월도 다 지나가네요! ㅎㅎ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가을 날씨는 지금이 한창인 듯 해요 :)

라일락과 라벤더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라씨 성까지 갔을까요ㅎㅎ
표현이 참 좋습니다

좋아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ㅎㅎ 항상 감사해요 거북님!

ㅋㅋㅋ제가 만나면 연락드릴게요

라씨 성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요? 흔한 성씨는 아니다보니까요. ㅎㅎ
벌써 상강이군요. 더운 지방으로 출장나와 그새 한국 날씨가 어떻게 변하는지 잊어버렸네요.
한국 들어가면 선물 받은 향초 켜보고 싶네요...

ㅎㅎ라씨 남자만 나타나면 운명이라 생각하려했는데... 한 번도 못봤네요....ㅎㅎ

제가 그 비슷한 성씨인데 뭔가 좋은 뜻도 생긴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ㅎㅎ. 나와 라는 같은 한자를 씁니다 ^^ 사실상 같은 성이지요. 발음만 다른...

앗! 그렇군요! 예쁜 성씨를 갖고 계시네요 ㅎㅎ
어린 마음에 특이한 성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ㅎㅎ

사진을 보고 글을 읽으니, 마치 향초를 켜고 읽는 기분이네요.
활기차고 행복한 일주일 시작하시길. :)

감사합니다 브리님! 이번주 힘내겠습니다! :)

오늘 날씨와 참 잘 어울리는 문구들이네요.
퇴근해서 오랜만에 저도 향초 켜 놓고 저만의 시간을 좀 가져야 겠어요. ^-^

ㅎㅎ정말로요, 향초를 키는 것 만으로도 괜히 맘도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이온이는 좀 너무하신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신경숙님의 글 중 사랑이 영원하지않은건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라는 말이 왜 이리 씁쓸할까요~

이온이 동생 이언이도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

글을 읽고, 사진을 다시금 바라봤습니다.
뿌리 깊이 내린 빛나는 나무가 들판에 서있는 것 처럼 보이네요. ^^
글과 사진 잘 읽고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정말이에요!! @jhani님의 눈이 제게 큰 힘으로 느껴져요-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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