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 , '노동'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in #kr-writing9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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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로 유명한 소설가 이상의 '날개'
문장이 너무도 상징적이어서 나머지는 전부 줄거리에 묻혀버리는 느낌입니다.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좌절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다수의 해설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독자가 '식민지 시대' 그리고 '지식인의 좌절'이라는 것을
연결 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날개'는 개인의 심리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더 쉬울 거 같습니다.
소설의 앞 부분에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엔 '여학생'이라는 용어가 하나의 이슈였덨거 같습니다.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서 '여학생의 자유연애'인데요
이것은 나중에 '자유부인'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확장이 됩니다.
여하튼, 이 여학생이라는 존재는 "지성의 극치를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불일자 말이오"라는 문장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서구의 자유사상을 공부한 의식과 당시의 사회체제간 괴리로 인한 혼란을 언급하는 문장입니다.
사실 그런 괴리는 식민지체제라는 정치적, 법률적 영역에서 더욱 분명히 확인 되겠지만
이상은 그 괴리를 개인의 정신세계에서 탐색하고 표현합니다.


왜 일까요?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정부가
군대를 앞세운 무단통치를 하던 때였으므로 국내의 모든 항일운동이 지하로
숨어들던 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투사도 아닌 병약한 소설가가 사회체제에서의 괴리를 들먹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당연히 개인의 심리영역으로로 전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상이 어떤 지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물론 소설속에서 마르크스, 맬더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카프카와 비교하면서,
실존주의를 제대로 소화를 했네 못했네 떠드는 비평가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문학만으로 세상을 보는 한계를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주인공은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와 집창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33번지에 18가구가 있다는 데..이게 왜 18이라는 숫자를 골랐는지..참..


아내는 여왕봉에 해당합니다.
"여왕봉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이가 있으리까?"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주인공은 따로 생활을 합니다.
밥은 먹여주지요. 때로는 용돈도 줍니다.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닙니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마음에 들었다.”에서 표현하는 것 처럼
그저 숙식을 하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안식처가 아닌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월셋방입니다.

그런 곳에서 타인이 아내에게 주는 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도권은 타인에게 있고 부부는 오로지 종속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직업(?)을 적극적이고 거리낌없이 수용하고 이용합니다.


아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세상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저 살아 있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사회가 스스로웠다. 생활이 스스로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장난을 하고 이불 속에서 마음속으로
여러 편의 ‘논문’을 써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난 후에는
그마저도 그만두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원천인 ‘돈’에 대해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라고
의구심을 갖는 주인공은 돈에 대한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 것 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을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이것을 돈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건 자신이 노동을 해서 돈을 벌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아무런 의미나 능력이 없이,
자신의 소유물인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알 수 없는 행동을 해서 가져오는 돈은
절망과 무기력의 시작일 뿐입니다.


아내에게 돈의 의미를 물어볼 수 없는 남편
그는 남편으로서의 존재감을 박탈당하고
이어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합니다.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전혀 그럴 수 없음을 자각한 사람.
자신이 어떤 것이건 능력 있음을 알면서도 현실에서 수용될 수 없음을 자각한 사람
그것이 바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강제퇴직 당한 사람들,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회복불능인 사람들,
주식투자를 하다가 망해서 길거리로 나 앉은 사람들..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거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허비적거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전부 무기력상태에 놓여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행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이미 삶의 무게를 운명으로 지각하고 있는 주인공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 할 필요도 없다.”
현실을 그대로 수용해버리면 모든 갈등은 사라지고 무의식의 영역에서 편해진다고 느낍니다.
단지 서로 어긋나버린 길을 그냥 그대로 걸어가는 겁니다. 따지고 들어본들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립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활기를 띄고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오늘은 없는 이 날개”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로 표현되는 것처럼 정신세계의 일입니다.

이것을 식민지현실에서 탈출하고픈 의식이라고 해석하는 거 같습니다.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인지하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그렇습니다.
‘이상’이 그것을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의미한 존재로서 망각되어버린 자신의 날개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순간적이나마 자신의 실존을 강하게 인식하려고 하는 본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상의 ‘날개’를 통해 인간존재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인간은 스스로 노동을 할 때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격리되고 종속된 인간은 결국 모든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그에게 놓인 길은 죽음 외에는 없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의 상태로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뭐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노동에는 실패와 성공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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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이야기했는데 전 한국근대문학의 이런 불쾌할 정도로 현실을 발가벗겨 글로 옮긴 내용들과 문체를 사랑합니다.. 이상의 '날개'도 그런 분위기가 극도로 잘 베어있는 작품이죠.

아무튼 본론으로 넘어가보자면, 전 '손에 물묻히지 않게 해줄게' 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성 우울증, 갱년기 여성의 급격한 우울감 등을 '성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데 사실 이런 중년여성들의 우울증은 바로 '노동하지 않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주부'의 역할이나 위의 드라마로부터 파생된 '물묻히지 않게' 해준다는 노동으로부터의 격리때문에 인간본능인 사회에 대한 공헌, 관계맺음이 적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본문에 적혀있듯 무기력함을 가져다주고 당연히 그 무기력함은 다시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여성심리를 다룬 다큐등에서도 중년 여성들이 엉엉 울면서 하는 말이 "나는 집에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져요" 라는 것입니다. 그건 아마 '날개'에 나오는 남편과 같은 상황에서 느껴지는 심정과 같을겁니다. 벌어다주는 돈을 그냥 쓰기만하는 것에서 오는 무기력감.

그래서 전 제 친지나 주변인들 중 노동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꼭 소일거리라도 하나 하시라는 말을 항상 하고다닙니다. 노동은 돈을 벌기위한 고된 행위만이 아닌, 자신의 존재감을 확립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행위이니까요.

글 잘보았습니다 ^^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노동할 기회를 박탈 당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사노동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기피하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한 평가절하로 왜곡되지요.
한편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조장하는 부분이구요.

오랜만에 날카로운 비평을 대했습니다^^

이상의 날개 참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다시금 하나하나 뜯어놓으신 글을 읽어보니 가슴이 아프네요... 박제된 천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최근 최저임금협상이 이루어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노동에서의 소외에서 벗어났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본인이 박제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슬프지요.
임금도 금액이 아니라 금액에 대한 의식이 중요한 것이라서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거릴 정도지만... 확실히 저 문구 하나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네요.
좋은 해석인 것 같아요.
다 떠나서... 한 개인에서부터의 출발.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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