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옥션 주식이 2배 이상 오르기전 살 수 있었던 이유
마케터에게 덕질하는 브랜드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덕질 수준까진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건 전시회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관람객으로 머물던 관점이 예비 투자자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건 재작년 DDP에서 열린 아트페어 ASAF였다. 다양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당연히 작품 옆에 가격표도 붙어있었는데 이 작품 괜찮다 싶으면 sold out을 뜻하는 빨간 스티커가 가격표에 붙어있었다.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내가 작품을 산다면 어떤 작품을 살까, 그리고 그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도 있지만 ‘작품을 누군가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되팔수 있을까?’가 더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예술품 투자자에게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ASAF보다 더 큰 규모의 아트 페어가 종종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바스키아전 같은 서울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회는 챙겨보았다. 그러다 작년 가을 예술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사건이 생겼다.
작년 가을, 휴가였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카페를 갈 수 없었기에 입장료 3만원을 내고 소전서림에 들어갔다. 양질의 도서들을 구비한 도서관이면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판화 등 예술품들이 전시된 갤러리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소전서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서가에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도록이 눈에 들어왔다. 도록을 펼치니 내가 좋아하는 김환기 화백 등 유명 작가의 원화 작품들이 여러 점 등장했는데… 순간 이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록을 덮고 곧바로 인스타그램에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을 팔로우했다. 이 회사들이 경매 입찰 전 프리뷰 전시회를 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가 마지막 날이었던 그 다음주 월요일,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에 무작정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두 회사 전시장에서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그날 서울옥션 6층 전시장에서 앤틱하면서 고급진 가구들과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어우러진 ‘CASA’라는 기획전이 열렸었다.
그날 당직이던 담당자분께 벽에 걸린 작품들이 모두 원화인지 여쭤보며 초보 티를 팍팍 냈는데, 감사하게도 담당자께선 이곳에 걸린 작품들의 히스토리와 작가 분들의 이야기를 알려주셨고 이 기획전의 기획 의도도 함께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하나 해주셨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응찰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경매 방식을 도입했는데 응찰 횟수가 훨씬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우환, 김창열 등 국내 작가들에 대한 해외 고객들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해외에서도 온라인 응찰 횟수가 많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투자 관점에선 애매한 금액대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비싸더라도 확실한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경우에 따라서 낙찰받은 가격의 5-6배를 회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확인한 작품 가격이 내가 엄두도 못낼 수준이다보니 군침만 삼켰지만 코로나가 경매시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일으켰다는 사실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네이버에서 서울옥션을 검색했는데 검색 결과에 주가 차트가 등장했다. 알고보니 코스닥 상장사였던 것이다.하필 내가 서울옥션에 다녀간 이후 5천원 대이던 주가가 2주 만에 8천원대로 급등하는 바람에 매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시총 1천억대의 스몰캡이기 때문에 조정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7천원대 초반으로 주가가 내려온 12월말 소량 매수를 했다. 지난 연말 폭풍질주하는 삼성전자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을 때 운이 좋게 틈새 투자처를 찾은 셈이었다.
올 초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시고 그분의 작품 세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술가가 죽으면 그가 남기고간 작품들은 당연히 희소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경매 시장에도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2월에 열린 서울옥션의 159회 미술품 경매의 주인공은 김창열 화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관심을 보였고, 1977년작 물방울은 10억 4천만원에 낙찰되며 기존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최고가 경신이 발생하면 시장에 내놓으려는 김창열 작가 작품 소장자가 늘어날 것이고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도 증가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과 달리 주식장이 횡보하고 있었고, 부동산으로도 투자 수익을 내기 어려우니 투자 자금이 미술 경매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3월초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화랑미술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작년 이맘 때 코로나 여파로 관람객이 1/3로 줄었던 화랑미술제는, 올해엔 재작년보다 오히려 30% 늘었다. 그리고 화랑미술제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인 3월 8일 서울옥션은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글을 쓰는 23일에도 서울옥션 주가는 전일 대비 10% 올랐는데, 김창열, 이우환, 박서보 등 국내 작가의 대표작 뿐만 아니라 쿠사마 야요이,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서울옥션이 하반기 NFT(Non-Fungible Token) 경매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서 예전보다 더 커진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포트폴리오의 1%도 안되는 금액을 서울옥션에 투자했기 때문에 실현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주가 수익과 관련없이 서울옥션의 프리뷰 전시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그 이유는 경매 출품작으로 오른 작품들을 보면서 작품에 대한 안목과 취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꾸준히 전시장을 방문하게 되면 이전 전시와 지금 전시에 오른 작품 퀄리티를 비교할 수 있고 관람객 수와 전시장 분위기도 비교하면서 경매 실적이 좋을지 여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서 서울옥션 주가를 언급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거래 대금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한편으론 서울옥션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서울옥션을 통해 관심사와 취향을 토대로 투자 종목을 발굴할 수 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과 깨달음 얻은 것은 투자 수익 이상의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