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수집가의 작은 늘어놓음

in #kr-writing7 years ago



오늘도 일하기 싫은 마음을 스팀잇으로 승화시켜 본다.

노동은 이제 슬슬 절정을 달려야할 준비에 들어서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금요일은 그것이 절정을 이룬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있는 연필 없는 연필을 끌어모아 사진을 찍어보았다. 어차피 문서를 붙잡고 있는다고 해도 손이 마우스에 가있을 뿐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가기 어려운 오후다.

연필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 역시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가 점차 마켓 전반에 퍼져가면서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된다는 그 화두의 연장선에서 문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가구 브랜드인 Hay가 내놓는 작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트렌드를 휩쓸었고, 많은 브랜드들이 문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뉴욕에 어떤 연필 중독자가 CW Pencil Enterprise라는 연필편집샵을 냈다는 마케팅 사례를 접하게 되었고, 머지 않아 국내에도 '흑심'이라는 연필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심'은 지금은 연남동으로 이사갔지만, 처음에는 구로시장의 어둑한 청년몰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찾아가기 정말 불편한 그 곳을 나는 꽤 추운 날씨를 불사하고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왜 그랬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들여다보니 무취향이 되어버린 나에게 무언가 집착할 만한 한가지가 생겼다는 기쁨이 컸던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두어번 흑심을 방문하고 나서, 성수동 편집샵에서도 연필을 사고, 서점에서도 연필을 샀으며, 전시를 보고 난 후 미술관에서도 연필을 샀다. 연필이 눈에 띄는 곳에서는 언제나 뭐 살건 없을까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만의 작은 소확행적 취미였을까. 그러다 어느 순간 시들해지기도 했는데, 스팀잇에 소개하려고 모아보다 보니, 몇 개 안되는 양에 나를 '연필수집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모을 계획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변명을 해본다.)

이 글의 제목도 처음에는 '연필 수집가의 작은 컬렉션'이라고 썼다가, 겨우 이걸로 무슨 컬렉션인가 싶어 '늘어놓음'이란 말로 바꿨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어쨌든 나의 작은 아이들을 소개해 본다.




팔로미노 시리즈(Palomino)



연필 브랜드 잘은 모르지만, 팔로미노 만큼은 내 기억속에 들어와 완전하게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연필에도 디자인이란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연필도 아름답고 고급진 디자인이 있다면 그건 바로 팔로미노!라고 생각했다. 지우개가 있는 뒤 끝이 포인트다. 쓸 일이 있건 말건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숫자에 따라 상징하는 바가 다르고, 그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이 바뀐다.

사실 전부 기억은 못하는데, 위에서 두번째 1이라고 써있는 연필은 미국의 컨트리송 가수 '가이 클락(Guy Clark)'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그의 앨범 타이틀 'Old No.1'의 1을 상징한다. 나는 팔로미노 연필깎이 마저 가지고 있는데, 깎는 곳이 두 곳이다. 한쪽은 연필대를 깎는 부분이고, 나머지 한쪽은 연필심만 깎인다. 이런 디테일도 괜히 맘에 든다.




빈티지 컬렉션(Vintage Collection)



(표현할 말이 없어 결국엔 '컬렉션'을 쓰고 말았음;;)

흑심에서 산 것이 대부분이다. 내 기억에 일본의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빈티지 연필을 구매해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코카콜라는 레트로한 비주얼에 매료되어 샀고, 맨 위에 저 짧은 연필은 담배 모양인 것이 흥미로워서 샀다. 흡연자 아님.. 하여간 왠지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예뻐서' 듀오들



변명의 여지 없이 예뻐서 산 영국 디자이너 duncan shotton의 무지개 연필. 깎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느껴지는 쾌감이 느껴진다고 하면 나 변태처럼 보일까.. 무지개 연필대를 보여주려고 깎다보니 너무 많이 깎아버렸지만, 어째든 버리기 아깝게 느껴지는 저 빛깔들..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필에 포르투갈이라고 적혀있다. 동물의 왕국처럼 기린과 코끼리와 사자, 얼룩말, 원숭이 등등의 일러스트가 너무 귀여울 따름이다.




그 외, 기타등등



톰보우, 동아, 필드 노트, 스테들러. 사실 실제로 쓰게 되는 것들은 이 아이들이다. 뭔가 기본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한 맛이 있다.


노동이 끝나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연필을 또 모아봐야겠다.

연필을 쓰지 못하고 마우스만 까딱거리는 금요일 저녁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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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님.. 아니 어쩜 우린......(입틀막)
222.jpg
저도 흑심을 굉장히 애정합니다.
혹시 홍대 '오벌'도 안가보셨으면 꼭 가보세요, 두번 가보세요 :)
문(구)덕(후) 올림

으아니 작가님ㅠㅠ데스티니 ㅋㅋ저 연필깎이 전 지인에게 선물했었는데, 보니까 또 갖고 싶네요. 오벌도 팔로잉만했는데, 가봐야겠네요. 그리고 저 사실..올라이트 메모지 써요..

올라이트 말씀이십니까....
KakaoTalk_20180406_210944001.jpg

저 사실 문구 덕질이 점점 심해져서.. 작업실 한켠을 문구 편집숍으로 준비하고 있기도 해요 ㅎㅎ 담에 오픈하면 P님 꼭 놀러오세요 ㅎㅎ

대박 넘넘 기대되는데요!!! 문구편집샵이라니 제가 원하던 바로 그런 것이군요:)

네이버 블로그에서 스팀잇 후기를 잘 읽어봤습니다.

@emotionalp님 같은 분이 아름다운 글들을 쓰시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다면 스팀잇 kr은 훨씬더 아름다운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김삿갓( @yungonkim)이 깊은 감명을 받고 풀보팅을 하고 갑니다~~

정말 감성적인 예쁜 연필들을 갖고 계시네요. 작은 컬렉션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려요. 몇개 얻어가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기는데요? ㅎㅎㅎ 갑자기 이 글을 읽으니 제 엉뚱함에 @feeltong 님을 호출해보고 싶네요. ㅎㅎㅎ

소환되어 왔습니다!!
여기 제 취저 포스팅이 있다는 소문듣고....호호호호 ㅇㅅㅇ)// 제가 잘 찾아 온것 같습니다!ㅋㅋ
듀오들, 빈티지 컬렉션 ....하앍..... 글씨는 왜 안 써주시나요! 핑계김에 P님 손글씨도 보려했는데!!
'흑심'은 잘돼서 연남동으로 간거겠죠? 개인적으로 구로시장에 추억이 있어 거기 있었다면 시간내서 찾아갔을지도 몰라요. 이름도 엄청 느낌있네요. '흑심'이라니..!! 꺄륵. +ㅅ+)
예전에 드로잉 배울때 한창 펜이랑 연필이랑 제게 딱!! 맞는거 찾아다녔거든요.
펜은 정착했는데.. 연필은 정착을 못했어요.
KakaoTalk_20180407_121609417.jpg
뭐, 궤는 아주 다르지만 제게도 이런 취미아닌 취미가 있습니다. 귀엽쥬?
저 뭔가 흥분해서 두서없이 막 쓰고 있는것 같은데...
썸네일에 '늘어놓음'이라는 말도 완전완전 좋아요!!! P님 만세에!!!!!!!!!

요즘 정신 없어서 피드를 많이 놓치는데 잊지않고 저를 소환해주신 @flightsimulator 님도 만세에!!
감사합니다아아~

앜... 아기자기하네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좋아하시는군요. ㅎㅎㅎ 호출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탐나는 아이템들을 보유하고 계시네요. 특히 저 뒤에 주사위는 왜 있을까~ 라는 엉뚱한 호기삼이 또 발동합니다. ㅎㅎㅎ

흥분한 필통님 감사합니다 ㅋㅋ귀여운 볼펜들이 많으시네요! 글씨를 잘 못쓰긴 하지만 연습해서 다음에 한번 올려볼게용. 아 글도 흑심은 연남동에 편집샵 개념으로 다른 브랜드와 공동 공간을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곳으로 간 것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flightsimulator 하늘님! 이거 너무 뒷북이긴 한데요..
제가 이 포스팅에 흥분한 이유는...제가 필통이기 때문이었어요. ㅋㅋ
뒤늦은 깨달음!!! (P 님 , 저 흥분한거 티났나요? .. 많이 티났나요? 오호호)
저 주사위도 볼펜이예요. 볼펜 꼭지에 주사위가 달려있어요! 히힛

정말 뒷북이긴 하십니다. ㅎㅎㅎ 제가 다 이유가 있어서 소환한 것 아닙니까? 필통이기도 하고 또 필통님이 이 쪽의 취미 생활이 비슷할 것 같아서 소환한거였거든요.

주사위는... 그냥 주사위인데 왜 있지? 나중에 교육할 때 사용하는 소재인가? 아니면 우연히 있는 건가 싶었답니다. 근데 주사위도 볼펜이라니... ㅋㅋㅋ 다시 보는 댓글에서 궁금증이 풀리네요. 감사합니다. ^^

빈티지 연필들을 모아서 나중에 이벤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플시님은 저의 아이디어창구 ㅎㅎ

이벤트하면 제가 반드시 참가할겁니다. ㅋㅋㅋ

'연필깎기의 정석'이란 책을 보고, 이런 일도 있구나, 이렇게 연필깎는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연필들이 참 매력적이군요.

아 그 책..읽어보진 못했고 그런 책이 나왔던 건 기억이 나네요. ㅎㅎ연필이 은근 중독적이랍니다 :)

한 때는 필수품이던 연필이
손을 떠난지도 한 참 되었네요.
어쩌다가 한 번씩 샤프펜슬을 잡기는 하지만
손글씨를 쓴다고 해도 주로 볼펜이니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저도 일할 땐 볼펜을 주로 쓰다가, 몇년 전 부터 연필을 모으게 되었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지개 연필 처음보고 너무 예뻐서 감탄했던 기억...
저는 스테들러랑 파버카스텔 연필만 써요...
딱 기본이라 좋더라고요^-^

역시 기본이 뭔지 아시는 군요. ㅎㅎㅎ팔로미노도 부드러워서 은근 자주 쓰게되요. 뭔가 낙서하기 좋은 느낌 ㅎㅎ

감성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엄청나게 구매력 뿜뿜입니다!!
근데 인터넷으로 사긴 싫은데...

아~~~나도 흑심품고 싶다...아니아니 가고 싶다~~~!! ㅎㅎ

연필은 직접보러가서 고르는 재미가 진짜 쏠쏠해요 (부추기기)

어머! 연필수집가님! 연필이 다 예쁘고 수집의 가치가 있네요. 사진도 너무 감각적으로 잘 찍으셨고요... 우리집에는 연필이라곤 서랍에서 몇년째 굴러다니는 몽당연필 뿐 ㅋㅋ

날씨가 풀리면 돌아다니며 좀 더 모아볼까합니다. 오늘은 너무 춥네요ㅠㅠ에빵님 감기조심하세요:)

저도 연필을 모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은근 쏠쏠한 재미가 있답니다 ㅎㅎ

독특한 취미를 가지셨군요. 연필은 초딩시절을 끝낸 후론 잡아본 적이 없어서 거기엔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가 묻어있죠.

정성스럽게 작성하신 사진과 글 잘 봤습니다.

팔로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팀잇 여기저기 구경다니며 제 소개를 짧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생각해보는 인성칼럼과
'터보힘준' 유머(인'터'넷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있는 유머)를
포스팅하고있습니다.
인터넷3대 구경거리는 미인, 동물, 유머라고 합니다.
제 창작 품위유머도 한 번 구경 오십시요 @isson99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칼럼을 쓰시는 군요. 반갑습니다 :)

네 반갑습니다

우와... 전 연필을 안쓴지... 십년도 넘었어요....! 학생때부터 샤프랑 볼펜을 쓰다보니 연필은 초등학교때 마지막으로 쓴 것 같아요 ㅠㅠ 연필은 너무 자주 뭉툭해져서 안 좋아했는데 p님의 글에서 연필이 갖는 빈티지스럽고 감성감성 스러운 느낌을 보니 저도 그 감성 따라하고 싶어졌어요! ㅎㅎ

ㅎㅎ추천합니다. 저도 일하면서는 노트가 번지는게 싫어서 펜만 썼는데, 연필만이 주는 감각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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