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행] 제주를 쓰다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iminjeju 에세이 1

낯선 곳에 있을 때, 나는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지도 속에서 나의 방향과 위치를 찾는다. 동쪽에 있던 내가 마치 해처럼 서쪽으로 걸어간다. 낯선 동쪽에서 낯선 서쪽으로 왔다.

낯선 서쪽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래전 기억을 안주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전 감정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생생한 기억이 다시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 현재의 몸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들끼리 술잔을 부딪힌다.

담배를 한 대 피고 옆 테이블 손님이 다시 가게로 들어온다. 그들의 고민이 아까 핀 담배연기처럼 가게 안을 가득 메운다. 한 사람의 고민이 다른 한 사람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안주를 집는 젓가락이 아주 작게 부딪힌다. 현재의 몸을 하고 현재의 고민을 꺼내며 서로를 바라본다.

땡그랑 종소리가 가게 안을 채우고 새로운 손님이 들어온다. 사진을 직고 사진을 보여주고 까르르 웃는다. 이 가게를 찾은 게 처음인 듯 처음이 아닌 듯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래를 이야기한다. 현재의 몸을 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안주가 나오길 기다린다.


iminjeju 에세이 2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은 어느 날 불쑥 누군가의 세계로 던져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 속에 담긴 감정은 때때로 너무 짙어 과거에 묶이고 만다.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은 결국. 과거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그 기억을 비워버리지 못하는 한, 그는 과거의 사람인 것이다.


iminjeju 에세이 3

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고민상담이 이어지는 테이블의 술 따르는 소리. 딸랑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어디선가 성난 듯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 처음 듣는 음악. 그 모든 소리를 적는 나의 펜.


iminjeju 에세이 4

글을 쓰는 작가라면, 29살의 그녀라면,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날까. 나의 29은 숫자가 아니라 글자였다. 스물아홉이라고 적어야 했던, 그래서 숫자보다 더 길에 써야 했던 조금은 복잡했던 나이였다.


iminjeju 에세이 5

바쁜 직장인이라면, 33살의 그라면,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날까. 혼자이고 싶지 않은 그는 어떤 삶을, 어떤 여행을 할까. 나의 33살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셋이 아닌 33이면 좋겠다.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그저 숫자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iminjeju 에세이 6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내게는 언제나 운전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렌터카를 빌리러 걸음을 옮기는 게 공항에 나와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았고, 두리번거리며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았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버스기사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응대하는 게 힘들어 보였다.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은 이 버스가 자신의 목적지까지 가는지 물었고, 기사는 일일이 그에 대한 응대를 잊지 않았다. 방향이 같은 사람들은 한 버스에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지도 앱을 켜놓고, 나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했다. 나의 위치는 기사가 운전하는 대로 움직였고, 마침내 나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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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차분하고 고즈넉한 글 잘보았습니다. 분위기있게 정말 잘쓰시는것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재밌는 여행 되세요 :)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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