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 내년에도 치앙마이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어

in #kr-travel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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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Thailand, Chiang Mai
March, 2016 (มีนาคม 2559)

"내년에도 치앙마이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나는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처음엔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나의 운명이 그렇게 좋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카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단순히 영어 단어를 생각하느라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남자 두 명이 앉아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길거리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는 어떤 여자가 그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99밧에 그녀에게 운명을 물어보기 위해 사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도 그들이 앉았던 그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타로 카드를 섞으면서 나에게 나이를 물어봤다. 그리고는 앞으로 몇 년 간은 좋은 운이 찾아왔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직 카드를 뽑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일단 나에게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면서 부연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말들은 다른 사람들의 발길에 묻히고 바람에 흩날려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 섞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에게 카드를 다섯 장을 뽑으라고 말했다. 나는 왼손에는 선물이 가득 들어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다섯 장의 카드를 망설이지 않고 뽑았다.

그녀는 내가 뽑은 카드를 뒤집어 확인하면서,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우선, 다섯 장의 카드를 뒤집어서 나에게 보여주면서 카드 풀이를 해주었다.

"하는 일도 모두 잘 되고, 돈도 많이 벌고, 가족들도 모두 좋아. 여기 봐, 돈이 아주 많아."

정말 카드에는 돈으로 상징되는 기호가 쏟아지듯 많았다. 나는 나에게 선택되지 않은 채 뒤집어져 있는 카드도 보고 싶었다. 내가 정말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모든 카드에 쏟아지듯 많은 돈이 표시되어 있을까. 나는 웃으며, 내가 앞으로 돈을 그렇게 많이 버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돈이 많이 생길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못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이번엔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작은 십자가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성당에 다니는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매일 기도해. 자기 전에, 매일 원하는 것들을 신에게 빌어. 그러면 이루어질 거야."

이 내용은 내 앞에 앉아있던 외국인에게도 했던 이야기였다. 매일 기도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나는 뒤에서 듣고 있었고, 그녀는 나에게도 역시 기도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종교를 믿으라는 이야기는 없지만, 어쨌든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를 하라고 이야기해주는 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번엔 다른 카드를 섞으면서, 치앙마이에 며칠이나 머무를 것인지 물었다. 3주 동안 머무를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치앙마이에 혼자 왔냐고 잇따라 질문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도 혼자서 지낸다고 이야기했다. 다 섞은 카드를 역시 아까와 같이 뒤집어서 테이블 위에 펼쳤다. 나에게 처음엔 3장을 뽑아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연이어서 5장을 뽑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뽑은 카드를 보더니 웃으면서 다시 한 번 5장을 더 뽑으라고 이야기했다. 이번엔 연애운이었다.

"영보이는 안 돼."

너무 예상치 못한 '영보이'라는 단어에, 나는 나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영보이는 안 돼?"

"영보이는 돈이 없어. 올드보이를 만나. 두 살에서 다섯 살 정도 차이나는 남자를 만나야 해."

올드 보이라는 말에 나는 또 엄청 크게 웃어버렸다. 그녀는 내가 뽑은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건 나쁜 카드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그게 좋은 카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내가 알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옷과 손가락마다 끼어진 반지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목이 파진 셔츠,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면서 메이크업도 잊지 말라고 나의 화장기 없는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섹시하게 하고 다녀야 남자가 생길 거라면서, 계속해서 '섹시'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나의 짧은 머리를 보면서, 긴 머리가 나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얘기했다. 나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You are very nice."

"Thank you."

그녀는 내가 뽑았던 카드와 그리고 내가 뽑지 않은 카드들을 정리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섹시하게 변신하면 남자가 생기는 거냐고 장난스레 묻고, 그녀는 또 나의 질문에 정성스럽게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하고 목이 파진 셔츠를 입으라며 아까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100밧짜리 지폐를 꺼냈고, 그녀는 거스름돈 1밧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 앞의 외국인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1밧을 받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치앙마이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어."

그녀의 그 한 마디가 나의 가슴에 닿았다. 애초부터 무언가를 기대하고 앉은 게 아니었다. 3500원에 운명을 맡길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궁금하여, 나도 결국 그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 내년에도 치앙마이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그 말을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 한 마디임은 분명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말로 들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진지해져 버렸다. 그녀와 나 사이에 흐르던 공기가 분명 달라져있었다.

"나도."

나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장바구니를 들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그곳에 플라스틱 의자도 그녀와 함께 머물렀다. 나를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 다시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그때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처음 본 사람처럼 타로카드를 다섯 장 뽑아보라며 이야기할까.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녀가 내년에도 치앙마이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 한 마디를 잊지 않고 간직해 두었다가, 내년에도 치앙마이에 찾아올 것이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다섯 장의 카드를 뽑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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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여행 너무 너무 즐거우셨을 것 같네요 ~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한 곳이에요. ^^

저는 방콕만 가보고 치앙마이는 아직 못가봤네요ㅎㅎ
다음에 기회되면 꼭 한번 가보고싶어요

치앙마이에 한 번 가보세요. 방콕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치앙마이 참 좋죠~!
잘봤습니다^^!

보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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