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4] 싱글라이더, 스파게티 면발로 짜장면을 만들다

in #kr-story7 years ago (edited)

작년 2월22일 싱글라이더가 개봉했다. 워너브라더스가 두 번째로 투자한 한국영화. 첫번째는 밀정이었는데, 역시 이병헌이 출연했다. 밀정과 싱글라이더는 완전 다른 장르의 영화다. 어쨌든 워너브라더스가 투자했으니 기대되는 것도 있고, 잔잔하고 여운있는 영화가 끌렸기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보러갔다. 그러나 이해하기 힘들 결말은 나를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movie_image.jpg
<우수에 찬 병헌이형>

영화는 기러기 아빠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잘나가는 증권사의 지점장인 주인공은 부실채권 문제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큰 상심에 빠진다. 열심히 일해 만든 커리어인데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가 느낀 상심은 매우 컸기 때문에 주인공은 극도의 우울함을 느낀다. 더불어 그는 기러기 아빠로, 혼자 살기 때문에 더 심각한 상태.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movie_image (5).jpg
<그는 참 깊은 눈을 가진 배우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호주에 보내고, 기러기로서 살고있는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무작정 가족을 찾아간다. 중요한 핸드폰마저 놓고 호주로 떠난다. 그야말로 한국과의 단절. 그러던 그의 눈앞에 사연을 갖고 있는 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 소녀와 몇 번의 마주침 끝에 서로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풀어낸다. (다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풀어낸다) 철저히 관찰자로서 가족들의 삶을 바라보는 재훈(이병헌)은 자신만의 상처를 갖고 있는 지나(안소희)를 도와주게 된다. 그녀는 역시 재훈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감싸주며 서로를 돕는다.

이내 재훈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생동감 있는 그의 아내. 한국에서 함께 살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들. 그녀는 호주에서 굉장히 생기넘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를 떠나서 사는 동안 그녀는 스스로를 찾은 것이다. 재훈은 그런 그녀를 보며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호주에서 가족의 삶을 더 관찰하기로 한다.

movie_image (1).jpg
<삭막한 부부>

영화는 이병헌으로 도배되어있다. 걷는 이병헌, 우는 이병헌, 쓸쓸한 눈빛의 이병헌. 그의 감정연기로 97분을 채우기
때문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감정과잉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문제해결을 위한 주인공들의 행동과 해결의지가 크게 두각되지 않아 감정선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씁쓸한 감정을 그대로 갖고 간다. 재훈의 아내만 생기가 넘치는데 그 원인이 절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재훈과 지나 중 그나마 해결의지가 있었던 것은 지나다. 하지만 그녀도 이내 절망으로 떨어져 관찰자 이병헌 옆에서 빙빙도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꼭 있어야하는 캐릭터인지 존재 이유조차 불분명해져버린다.

movie_image (2).jpg
<한국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재훈의 아내 >

싱글라이더의 시종일관 같은 분위기와 감정은 느끼함을 불러일으키는 음식같았다. 까르보나 스파게티만 2접시 먹으면 느끼한 것처럼, 관객들도 과잉 씁쓸함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병헌의 연기가 그것을 잘 풀어내는 조미료가 된다. 그의 우수에 찬 눈빛은 적당한 조미료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철저한 관찰자로서 안소희 이외의 인물과는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는데, 사건의 당사자인 그의 과묵함이 관객들을 오히려 긴장하게 만든다. '저렇게 참다가 언젠가 폭발할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관객들 스스로의 인생도 같이 돌아보는 것이다. 안소희의 발연기가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법 괜찮게 연기한다.

movie_image (3).jpg
<안소희는 긔...긔여ㅓ>

결말로 다가가며, 영화는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시종일관 잔잔했던, 묵직했던 영화는 황당한 결말로 강점이던 감정이입을 깨버린다. 그동안 이병헌의 연기로 적절하게 조미료 쳐온 까르보나는 갑자기 짜장면이 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결말의 순간에 같이 온 사람들과 토의하기 시작했다. 결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설마 그런 결말은 아니겠지' 하고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결국 결말을 이해했을 때, 굉장히 탄식했다. 그동안 같이 한숨쉬며 공감한 나의 감상이 허무하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movie_image (4).jpg
<이병헌, 안소희, 그리고 강아지...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싱글라이더 자체를 마구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영화의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후회하는 순간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잔잔하게 잘풀어냈기 때문이다. 감정의 폭풍을 최대한 억제하고 절제하는 연기가 영화의 씁쓸한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비록 결말은 황당했지만, 여운남는 씁쓸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출처: http://cappuccinoasordered.tistory.com/entry/싱글라이더-맛있는-짜장면에-캐찹을-넣다 [MxB..and L]

Sort: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류의 영화였지요.

네 ㅋㅋㅋ 그런 류였죠. 결말을 이상하게 만들었지만 먹먹한 감성이 계속 여운에 남았던 기억이 나네요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6
JST 0.031
BTC 62731.36
ETH 2678.00
USDT 1.00
SBD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