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의 포포투는 토트넘보다 위대하다

in #kr-sports6 years ago

(출처 : 레스터시티 홈페이지)

독이 든 2002년의 성배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린 지 벌써 16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어제 일 처럼 눈 앞에 생생한데요. 2000년생인 제 동생이나 그 전후의 친구들은 2002 월드컵을 모릅니다. 동생의 경우에도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골 넣었을 때 잠자다가 함성 소리에 놀라서 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에 이상한 병이 생깁니다. 우리가 아시아 축구를 탈피하여, 이제는 세계 강호들과 겨루는 수준이 가능하다는 착각의 병. 히딩크 감독 이후 감독을 맡았던 코엘류, 본프레레, 핌 베어벡 등 수 많은 외국 감독들이 한 목소리로 했던 이야기가 있죠.

“한국 팬들은 한국팀의 수준을 모른다.”

2002 월드컵 이후 우리는 우리의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망상에 빠졌고, 2010 월드컵 16강, 2012 올림픽 동메달을 경험하며 그러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물론 잘했던 대회들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결과들에 대해 박수를 쳐주어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피파랭킹 59위.

현재 월드컵 출전국의 가능성을 점처보는 피파 파워랭킹에서 한국은 28위 입니다. 뒤에 4팀 있다는 이야기죠. 2014년 월드컵 전 한국의 피파 파워랭킹은 18위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는 1무2패 조별예선 탈락했죠. 지금 우리의 현실은 당시보다 훨씬 암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우리는 그만 지금이라도 2002년의 독이 든 성배를 던져 버리고, 망상 속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한국 축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신태용의 망상

(출처 : 연합뉴스, 2017.11.10 콜롬비아 전 손흥민 골 세리머니)

작년 콜롬비아 전의 선전 이후 우리는 월드컵에서의 해법으로 포포투(4-4-2)를 가장 합당한 전술로 이야기 합니다. 당시의 포포투는 전술적 짜임새가 좋았고, 전형적인 언더독이 사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한국팀이 지니는 기본적인 약점이 하나있죠. 유럽에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하긴 어렵지만, 언더독으로서 살아가는 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와 한조인 스웨덴, 그 밖에 덴마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웨일즈 등의 팀들. 이 팀들은 유럽의 강호들과 매번 경기를 치뤄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갈지를 잘 압니다.

유럽 언더독들의 특징은 경기력, 점유율을 철저히 무시하고, 결과만 가져온다는 것이죠. 이것이 한해 두해 거치면서 잘 자리를 잡았고, 강팀들과의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시아에서만 호랑이이다보니 유럽팀만 만나면 쩔쩔 맵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점유하며, 이끌 수 있지만,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들과 경기에서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최근 신태용 감독은 우리의 축구를 ‘토트넘의 포포투’에 종종 빗대어 표현합니다. 저는 사실 토트넘 경기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보지만, 토트넘의 전술이 포포투인지는 의문이 드네요. 신태용의 발언을 보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2002년의 독이 든 성배를 마신 한국 축구가 아직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줍니다.

토트넘의 포포투

(출처 : 인터풋볼)

토트넘의 전술은 기본이 4-2-3-1입니다. 여기에 3-4-3을 섞어가며 사용하죠. 이 팀에는 해리케인이라는 월드클래스 공격수가 있다보니, 뒤에서 델레 알리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받쳐주며 공격을 전개하기 용이 합니다. 따라서 원톱을 놓고, 2선 공격수들을 다수 배치하는 형태입니다.

토트넘이 간혹 4-4-2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죠. 크게 세가지 경우 인데,

(1) 해리 케인이 고립되어 경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울 때 전술적 변화

(2) 해리 케인이 없을 때, 지난 시즌의 경우 손흥민과 얀센이 올 시즌은 요렌테가 나오는 경우

(3) 경기 막판 뒤지고 있을 때, 추가적인 장신 공격수가 필요할 때

토트넘은 기본적으로 4-4-2가 그리 잘 어울리는 팀이 아닙니다. 만약 전방에 케인과 손흥민이 선다면, 오른쪽에 에릭센이 왼쪽은 라멜라가 설 것이고, 중원에 알리와 다이어가 서는 방식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 형태가 팀의 밸런스 측면에서 다른 포메이션 보다 뛰어나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면 신태용 감독은 왜 꼭 토트넘의 4-4-2를 집어서 지칭했을까요?

저는 여전히 한국 축구가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토트넘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선수들로 다른 축구를 하는 팀인데, 우리가 과연 어떻게 토트넘 축구를 할 것인가요. 우리의 대안은 사실 토트넘에 있지 않습니다.

2015-2016년 레스터 시티를 보겠습니다.

2016년의 레스터 시티

(출처 : 연합뉴스/AFP)

2015-2016 시즌의 PL은 모두에게 충격적인 결말을 안겨 줍니다. 이제 막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온 레스터 시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끝이 난 것이죠. 당시 시즌 초반 레스터가 선전하며, 2-3위를 전전할 당시에도 모든 이들이 7-8위로 시즌을 마칠 것이다 예상했죠.

PL의 빅6를 뚫기가 어렵고, 자본이 축구를 완전히 집어삼킨 2010년대에는 언더독이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은 희박했으니까요. 당시 레스터 시티의 축구를 보면 과거의 사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2004년 유로 우승팀 그리스, 2002년의 한국, 2016 유로 8강 아이슬란드. 이런 팀들의 축구와 거의 똑같습니다. 점유율을 버리고, 극단적인 선수비 후 빠른 역습으로 한방을 노리는 축구. 점차 세밀해지는 축구에서 이 방법 외에 경기를 점령하며 이기겠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2015-2016 레스터는 후트와 웨스 모건 같은 강한 센터백을 두고, 중원에 드링크워터와 캉테를 세웁니다. 좌우 측면에 알브라이튼과 마레즈가 서고, 최전방에 오카자키와 바디가 서죠. 결국 강하고 촘촘한 수비 이후 발빠른 오카자키와 바디가 앞으로 뛰고, 4명의 미드필드가 빠르게 이를 받쳐주는 역할을 유기적으로 잘 해냅니다.

레스터는 당시 PL의 빅6이든 나머지 팀들이든 가리지 않고 이러한 전략을 펼칩니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점유를 포기한 채, 결과만을 가져오죠. 그렇게 38경기를 마친 뒤 우승컵을 거머쥡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빅6로서 지난해 준우승 팀이기도 한 토트넘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더독이지만 우승 경험을 가진 레스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축구가 더 잘 맞을까요? 어떤 축구를 모방해야 할까요?

2018년의 대한민국

(출처 : 대한축구협회)

솔직히 한국 축구를 보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신태용 감독에게도 어려운 고민이 될 겁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축구는 정해져 있다는 것. 촘촘한 수비 축구를 하며, 역습을 노리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

만약 우리가 토트넘의 4-4-2를 따라한다고 가정 합시다. 전방에 손흥민이 있습니다. 옆에는 해리케인이나 아니면, 빈센트 얀센이라도 있어야겠죠. 참고로 얀센은 15-16 시즌 에레디비지에 득점왕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김신욱, 석현준, 황희찬, 이근호 정도 입니다. 어떻게 하시겠나요?

미드필드를 보면, 이재성, 권창훈이 측면에 있습니다. 이들은 에릭센과 라멜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중원의 기성용과 고요한(혹은 박주호)은 델레 알리와 다이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만만한 자리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우리 축구와 스타일이 다르죠.

한국 축구의 중심은 손흥민이 아닙니다. 기성용이죠. 기성용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합니다. 다만 피를로 처럼 내려 앉아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입니다. 공격적으로 나서기도 하지만, 사방으로 공을 뿌려주며,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죠.

토트넘은 이 역할을 주로 킥이 좋은 에릭센이 담당합니다. 에릭센은 공격적인 역할의 선수이다 보니, 앞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죠. 뒤쪽에서는 사실 베르통언이나 산체스, 다이어 처럼 풀어내줄 수 있는 훌륭한 수비자원이 많습니다.

반면 레스터와 우리를 비교하면, 오카자키와 바디의 역할은 대략 이근호(혹은 황희찬)와 손흥민이 할 수 있습니다. 캉테의 역할은 기성용이 알브라이튼과 마레즈 역할은 권창훈과 이재성이 맞게 되죠. 이근호가 오카자키 처럼 휘저어주고, 손흥민이 한방을 때려줄 수 있고, 기성용이 캉테처럼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우리가 모방 할 수 있는 유일한 축구 아닐까요?

2018 러시아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이제 2개월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에 정상회담에 여러 이슈에 묻힌채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월드컵이 코앞에 왔네요.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때보다 쉽지 않은 월드컵이 될 겁니다. 우리 선수들이 과거보다 유럽에 많이 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축구 변방국가이니까요. 그 격차가 좁혀지기는 커녕 시간이 흐르면서 더 커진 느낌입니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에서 지금이라도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축구가 쫓아가야 할 방향은 그리스나 아이슬란드 아니면 레스터 시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토트넘의 축구를 따라갈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우승 한번 못해본 강팀의 플레이 전술을 따라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 팀의 전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자원들이 있는가. 아니면 비록 약팀이고 선수는 빈약하나 우승 경험이 있는 팀의 전술을 모방해 볼 것인가.

비록 같은 포포투라는 영역 안에 있는 두 팀이지만 어떻게 그 전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이번 월드컵 성적은 천지차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료 참고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993360&ctg=140001&tm=i_etc_6710

http://m.hani.co.kr/arti/sports/soccer/818526.html

http://minterfootball.heraldcorp.com/news/articleView.html?idxno=190903

http://m.joongbo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073379

http://www.etnews.com/201709040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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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국대 감독이나 기술위원회에서라도 꼭 봐야 할 글인데요!

저희 보다 더 잘 알고 있겠죠.ㅎㅎ 다만 실패를 반복할 뿐ㅋㅋㅋ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우산챙기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스팀잇 만들기 프로젝트>
참여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D

감사합니다. 모모꼬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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