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에게] 1. 데릭 레드먼드와 아버지 “그럼 함께 가자”

in #kr-sports6 years ago

이전에 누군가 제게 스포츠가 왜 좋은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그렇게 답했습니다.

“영화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다. 감독이 시작과 끝을 의도대로 끌고 간다. 우리는 거기에 감동한다. 스포츠도 룰은 같다. 감독이 시작과 끝을 의도대로 끌고 간다. 다만 그 감독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 일 뿐이다.”

조금 오버를 붙여서 저는 스포츠가 신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스포츠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겁니다. 좋아하는 분들은 각자의 이유에 맞게 즐기고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죠.

저는 스포츠가 우리 삶과 별개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 경제, 문화, 역사 어느 하나 별개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없습니다. 오늘 부터 최소 한 주에 하나씩은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눠볼까 합니다. 관심 없고, 이해할 수 없던 스포츠가 내 삶과 우리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은 것임을 느끼는 시간되길 바랍니다.

데릭 레드먼드와 아버지

(경기 장면 캡쳐)

6만 5천명이 운집한 스타디움. 한 젊은 청년이 트랙 위에 쓰러져 있습니다. 관중들은 안타까움의 탄식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만, 청년은 일어나질 못합니다.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은 이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스물일곱의 청년은 얼핏 보기에도 뛰는 것이 불가능 해 보이는 다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뛰어보기 시작하고,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와 한 마음으로 함께 뛰기 시작한 겁니다.

이 이야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육상 400m 준결승에 출전했던 영국 단거리 간판 스타 데릭 레드몬드의 이야기 입니다.

(출처 : 게티이미지/이메진스)

데릭은 청소년 시절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였습니다. 19살에 영국 신기록을 세웠고, 23세의 나이에 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기권합니다. 이 당시 출전을 10분 앞두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한 것이죠. 당시 강력한 메달 후보였던 데릭은 그렇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데릭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납니다. 전성기의 데릭 레드먼드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었죠. 단연 영국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관중석에는 한 중년의 신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데릭의 아버지 짐 레드먼드였죠. 아버지 짐은 아들의 올림픽 금메달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둘은 여느 부자관계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데릭은 아버지 짐을 의지했지만, 친구처럼 항상 붙어 있었죠.

(경기 장면 캡쳐)

드디어 고대하던 올림픽 무대에서의 4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8명이 뛰는 경기에서 상위 4위 안에만 들면 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경기에서 데릭은 순식간에 1위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스타디움은 6만이 넘는 관중으로 꽉 차 있었고, 모두 환호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버지 짐은 누구보다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뚝!”

150m를 지나가던 데릭의 다리에서 무언가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립니다.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긴겁니다. 데릭은 트랙에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얼마 못 가 주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데릭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일이었지만, 올림픽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수 많은 고민들이 데릭의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잠시 후 들것이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데릭은 이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안 돼요. 들것에 절대 탈 수 없어요. 완주 할게요.”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짐은 사지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관중석 맨 윗줄에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죠. 다른 관중들을 다소 과격하게 밀치기도 하고, 부딪히며 정신 없이 내려옵니다.

(경기 장면 캡쳐)

이때 카메라에 작은 실랑이가 포착됩니다. 아버지 짐이 결국 트랙에 내려온 겁니다. 아들은 처절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짐이 바리케이트를 뛰어 넘어 트랙 안으로 들어 옵니다. 그리고 경기 진행 요원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이 저기 있소.”

안전 요원들은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아버지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달려가 안아줍니다. 온갖 생각에 힘겨운 사투를 버리던 데릭은 옆에 온 아버지 데릭을 보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한 국가의 자존심을 짊어지고, 수 만명의 관중 앞에 놓여진 검투사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 아버지의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짐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끝까지 완주할 필요 없어. 무리하면 너의 선수 생활이 여기서 끝날지 몰라.”

아들 데릭이 말합니다.

“결승선을 밟고 싶어요.”

다시 아버지 짐이 말합니다.

“...그럼 함께 가자”

(경기 장면 캡쳐)

이후 두 사람은 마치 2인3각 경기를 하듯이 발을 맞춰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이들은 경기장 안전 요원들입니다. 상식적으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고, 전 세계에 송출되는 경기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 했습니다.

“나오시오. 내 아들입니다. 함께 갈 겁니다.”

데릭과 아버지는 2분 10초의 기록으로 400m를 완주합니다. 육상 400m 역사상 가장 느린 기록이며, 데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에 당연 실격이었습니다. 데릭 레드먼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생각할 지, 아니면 영웅으로 생각할 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완주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짐은 인터뷰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내 아들이 자랑스러워요.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인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만약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랑스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는 용기있는 일이었어요.”

(경기 장면 캡쳐)

그럼 함께 가자

세계 육상 역사상 가장 느린 기록의 경기. 그것도 실격된 경기가 이 대회 400m 금메달 보다 더 유명해지고, 회자되는 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날 경기는 스포츠 경기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관중이 들어왔고, 관중이 트랙 위에 있는 것을 관계자들이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스포츠도 삶의 한 부분이며, 사회의 한 부분이란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올림픽 정신, 스포츠 정신을 이야기 할 때, 공정성과 최선을 이야기 합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공정성과 최선은 과정에서 나오는 정신 입니다. 스포츠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스포츠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아야 하고, 감동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스포츠의 존재 이유는 반감됩니다.

1등은 1등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데릭 레드먼드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는 10년 뒤, 100년 뒤에도 회자 될, 금메달 100개를 줘도 아깝지 않을 스토리 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선수이기 이전에 한 아버지의 아들이며,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존엄의 가치를 이 이야기가 잘 보여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울림을 주는 한마디.

“함께 가자”

이 한 마디가 우리 사회나 가정, 더 나아가 오늘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이 모든 문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데릭 레드몬드 관련 영상

https://youtu.be/t2G8KVzTwfw

자료 참고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50714

https://youtu.be/t2G8KVzTw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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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매력은 정말 마력과도 같지요 ㅎ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죠:)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네요.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우리도 발전하는 방향으로 함께 갑시다~!

@홍보해

오늘은 멍뭉이가 잘 도착했군요:) 감사합니다~ 제 글 보다도 영상 링크되어 있는것 한번 보시면 그 의미가 더 다가 올거에요. 글쓰면서도 저 느낌을 잘 못살리는것 같아 아쉽더라고요..ㅠ 노력해야죠.

^^ 링크 영상도 봤습니다.
전 글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likersh7님 안녕하세요. 개대리 입니다. @feelsogood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볼 때마다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죠!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서의 감동도 있다는게 스포츠의 매력 아닐까요?

맞아요. 바쁘다보면 그날그날 결과를 찾는 날도 많지만 내용 하나하나 보다보면 참 매력적이죠^^

으아.. 진짜 눈물나는 이야기에요
저는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잘 몰랐는데 정말 감동적이네요..
정말 오늘 같이 손잡고 걸었던 남북정상도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감동적인 이야기죠:)
그러게요. 어제 결과 나온 것 처럼 앞으로도 쭉 싸우지말고 좋게 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보팅완료. 좋은 주말 보내세요!
시험 끝나구 자주 소통하러 오겠습니다!^-^

시험 잘 보고 와요~:)

<행복한 스팀잇 만들기 프로젝트> 이웃의 글을 추천하고 보팅도 받고에서 @feelsogood님이 추천 해주셔서 응원보팅 하고갑니다~ :D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D

감사합니다! @feelsogood님이 엄청 도와주시네요..ㅠㅠㅠ @feelsogood님도 @momoggo님도 모두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ㅜㅜ 스포츠의 힘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메시지도 많죠:) 감사합니다^^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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