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내 기억에 의하면, 새엄마와 함께 산 기간은 겨우 1년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새엄마는 다시 이혼했다. 시골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날 늦은 저녁이었다. 밖이 캄캄했으니 해가 떨어진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화가 많이 나 있었고 집에 오자마자 나와 동생을 벌거벗기곤 수돗가에서 목욕을 시키셨다. 화를 아주아주 많이 내면서 목욕을 시켰는데 때수건으로 얼마나 박박 문질렀는지 온몸의 피부가 다 까지고 상처 났을 정도였기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미친년이지. 나도 너희 둘 같은 아들이랑 딸이 있어."

충격적인 말이었다. 새엄마도 재혼이었던 것. 그리고 나만 한 아들과 동생만 한 딸도 있었다는 것. 새엄마는 늘 화가 나 있었고 나와 동생을 자주 때리셨다. 뭐 당연히 맞을 짓을 했겠지만 참 많이도 맞았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새엄마는 엄마의 역할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을 모아오라고 하셨다.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난 이때까지도 내 생일이 며칠인지 몰랐다. 어른들에게 내 생일은 언제냐고 물어보면 다들 모른다고 하셨고, 할머니는 '애들은 생일 몰라도 된다.'라고 하셨다. 물론 아빠도 내 생일을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기억하지 못해서 못 알려준 건지 생일 챙겨주기 싫어서 안 알려준 건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에 의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생일 선물은 20살 때였다. 식당에서 일할 때였는데, 내가 워낙 말도 많고 시끄러워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장난삼아 생일선물 뭐 해 줄 거냐고 말했다가 대량의 선물 폭탄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전까진 생일선물이라는 걸 받아본 적은 없다. 새엄마는 케이크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여러 음식과 과자들을 준비하셨고 난 동네 친구들을 모아 태어나 처음으로 생일축하를 받았다. 그때가 4학년이었다.

평소 잘 안 먹어서 늘 약골이었고 삐쩍 말랐던 나는 학교에서 늘 맞고 다녔다. 초등학교 6년 동안 4학년 때였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부자 아이였고 늘 애들을 두세 명씩 끌고 다녔다. 그 부자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꼭 나를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는 두들겨 팼다. 난 말이 없는 아이였고 소극적인 아이였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동네 친구 중에 일호라고 있었는데 같은 반이었다. 일호 부모님도 굴다리 앞에서 장사했는데 일호가 부모님께 내 얘기를 했고 일호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께 내가 맞고 다닌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새엄마는 학교에 찾아가야겠다고 그놈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다. 학교에 찾아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 부자 아이가 날 때리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내가 부자 아이라고 기억하는 건 어느 날부턴가 날 안 때리더니 집으로 초대도 했다. 집은 마당도 있는 엄청 넓은 집이었는데 방도 네 갠가 됐던 거로 기억난다. 장난감도 많았고 부자 아이 엄마가 맛있는 음식도 해주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운동회 사진이라곤 4학년 때 사진뿐이다. 역시나 엄마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어떻게 애 운동회 사진이 하나도 없느냐며 운동회에 찾아오셔선 사진을 찍어주셨다. 지금 봐도 하얘도 너무 하얀 피부에 무표정한 얼굴. 새엄마가 없었으면 없었을 사진이었다.

친엄마는 아니지만 난 새엄마가 좋았다. 많이 맞기도 했지만 엄마가 없었을 때와는 너무 달라서 좋았다. 방학이라고 놀러도 가고, 생일축하도 했고, 사진도 찍어줬고, 맞고 다닌다고 화도 내주셨다. 하지만 새엄마와의 시간은 겨우 1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셨다. 말도 없이 정말 갑자기.

그 뒤로 새엄마가 한 분 더 계셨지만 사춘기였던 동생의 반대로 짧게 살다가 가셨다. 난 두 새엄마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만 적지는 않겠다. 나중에 나이 든 후에 기억이 안 나면 말지 뭐.

아빠는 굴다리 앞에서 장사를 계속하시다가 내가 중학교에 갈 때쯤 돼서는 가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셨다. 정확히 언제부턴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학교 2학년이 된 후 같이 버스를 타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 우린 무허가 집을 떠나 영구임대주택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생활보호대상자(지금은 '생활보장대상자'라고 씀) 또는 장애인에게 영구적으로 임대를 주는 아파트였다. 우리는 생활보호대상자여서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됐다. 연탄보일러에, 지하수를 쓰던 우리는 현대문명인 아파트에서 중앙난방과 수돗물을 쓰게 됐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온수가 나왔고 화장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방이 겨우 2개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사를 망설였지만 아직 결혼 안 한 막냇삼촌이 고모랑 사는 것으로 하면서 이사가 결정됐다.

이사를 했지만 난 전학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중학생이니 전학이 안 된다며 버스를 타고 등교하라고 했다. 동생은 초등학생이라서 바로 전학을 했다. 아파트는 좁긴 했지만 살던 집보다 좋았다. 일단 아파트니까 편했다. 아빠는 버스로 출근하기가 힘드셨는지 오토바이를 한 대 사셨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자주 잃어버리셨고 자주 사고가 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빠의 오토바이를 무척 싫어하셨다. 몇 번의 사고 후에야 아빠는 오토바이를 그냥 세워두셨다. 아빠를 보면, 내가 운동신경이 둔한 건 유전자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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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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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억이 잘 나시나봐요. 전 왜 어린 시절 기억이 흐릿한지 ㅠ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제 기억력은 저도 못 믿어요. ㅎㅎㅎㅎㅎ 흐릿흐릿해서. ㅎㅎㅎㅎㅎ

너무 짧아요ㅠㅠ
흐름 끊기기전에 언능 돌아오세요ㅋ

아~~ 시간이... ㅎㅎㅎ 오늘밤에 열심히 또 쓸게요. ㅎ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린 시절 제 주위에서 본 듯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ㅎㅎㅎ 흔한 꼬마였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왠지 실화같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생생한 묘사때문일까요~ ㅋㅋ

아핫... 묘사가 생생하다니 칭찬 고맙습니다. ㅎㅎㅎㅎㅎ
소설이지만 실화이긴 할 겁니다. 제 기억력이 맞다면요. 그런데 저는 제 기억력을 안 믿습니다. ㅎㅎㅎ

실화를 적은듯 생생하네요.
혹 실화?
디클릭 애니.gif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실화소설이겠지만, 저도 제 기억력을 안 믿습니다. ㅎㅎㅎㅎㅎ

흥미진진하네요 ㅋㅋ

잼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fur2002ks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fur2002ks님의 스팀이 400원대 진입했군요! ㅎㅎ(뻘짓 진행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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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유년의 놀이터가 떠오릅니다.
해질녘, 홀로 그네에 앉아 바라보던 노을이
몹시도 쓸쓸했는데... 혼자 살았거든요.

혼자... ^^
유년시절 생각하며 글쓰기, 써보니 괜찮네요. ㅎㅎㅎ

fgomul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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