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자다. 학력이 인플레이션된 시대에…

in #kr-science6 years ago (edited)

나는 과학자다.
나는 내 박사학위 논문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PhD, 즉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Postdoc 과정도 거쳤고,
내 논문도 10편 정도 있으며,
현재 “Research Scientist”라는 직함으로 일하고있다.
그렇다. 나는 과학자다.
과학자이미지.png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금은 학력이 인플레이션된 시대다.
고학력자가 넘쳐난다.
공급이 수요를 아득히 초과한다.
공급은 마치 다단계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교수 한 명이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한다고 하면,
그 제자 박사 중 일부가 다른 곳 교수가 되고,
각각이 또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하고,
그 제자의 제자 박사 중 일부가 다른 곳 교수가 되고,
각각이 또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하고 ....

2~30년 후엔 공급이 과다해짐은 당연하다.

(순수) 과학자는 어떻게 돈벌어 살아가는가?
(순수) 과학자의 목줄은 정부가 쥐고있다.
국민의 세금이 정부의 예산이 되고,
정부의 예산 중 일부가 과학연구기금에 할당되고,
과학자는 (연구소 연구원이든, 대학 교수든) 제안서(Proposal)을 써서 그 연구기금의 일부를 따와야한다.
따온 돈을 소속 기관이 월급의 형태로 지급한다.
정부의 예산이 박사의 공급마냥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언제부턴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프로포절을 쓸 때,
PI(프로포절의 주인)조차 하나의 프로포절에서 자신의 전체 인건비, 즉 100%를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같이 참여하는 Co-I는 말할 것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니, 프로포절의 전체 청구 금액을 줄여 선택될 확률을 높여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프로포절로는 감당이 안되니 여러개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할인'은 늘어만 가고,
그럼에도 느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고문뿐이다.
거기에 더해진 치(명적)타(격).
환경문제를 경시하고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대통령...
내 과학자로서의 삶은 여기까지인가보다.

과학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연구 능력?
과학자에게 연구 능력은 숨쉬기 능력만큼 당연한 것이다.
걔중에도 특히 숨을 더 잘 쉬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더 잘 쉰다고 자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글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논문 쓰는 능력?
논문 쓰는 능력은 비유하자면 밥 숟가락 놀리는 능력 정도 되려나...
중요한 건 밥을 얻어오는 능력.
그것은 프로포절을 잘 쓰는 능력.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혹하게 만드는 언어능력.
그게 나는 부족하다.
그래서 내 과학자로서의 삶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막다른 골목.
이제 나는 무얼해야 할까.
요즘 머쉰러닝이 대세인데, 나도 거기 뛰어들어볼까?
그럼 어떡해야할까? 대학원이라도 다시 다녀야할까?
그동안 내 연구를 위해 프로그래밍은 좀 써왔으니 프로그래머가 되어볼까?
"박사후 10년이라는 경력"의 편견을 깰 만큼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기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할까.
1000시간? 10000시간?

연구Research는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순수과학이 아니라 돈에 밀접히 연관된 분야로 들어왔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View가 36인 시점에 덧붙입니다.

몇 달간 생각해온 내용인데, 막상 글로 정리하니 느낌이 다르네요.
감정이 북받쳐올랐다가 좀 시원해졌습니다.
그동안 생각만 했을 때는 마음 한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했었나봐요.

이 글을 작성하면서 고민을 했었어요. 쓸까 말까...
도태된 실패자의 이야기를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남들에게 널리 얘기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죠.
혹시 여기 스티밋 kr 커뮤니티에 널리널리 퍼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었지만
기우였음이 드러났고
지금 이정도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아마 못보시겠지만)
업보팅 해주신 분들, 응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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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공을 전공한 공돌이 입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컴공, 더 넓게는 프로그래밍을 하시다보니 phd 를 못하게 된걸 후회하는데..phd를 따고 나서도 생기는 고민들은 여전히 있군요. 화이팅합시다

고맙습니다.
순수과학쪽이라 그런거지 컴공 박사는 여전히 잘나가는 듯... 역시 남의 떡이 커보이죠? ^^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비단 과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직업군의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AI와 로봇에 밀려 더 심해지겠지요. 결국 기본소득으로 귀결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요.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지난 15년의 세월을 정리하는 제 마음이 너무 허해서,
그런 큰 그림이 와닿지가 않네요...

무언가 정리를 하시고 새로 시작하셔야 하는 시기이신가 보군요...
응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와 진로를 바꾼다는게 좀 막막하긴 하네요.

저또한 거의 비슷한 상황입니다. 내가 하는 전공과 연구직에 대한 회의감이 오는 시기... 그래도
화이팅입니다. ㅠㅠ

순수과학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꿈과 도전으로 보낸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한 표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새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과학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이해합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단순 돈줄이 정부로 부터 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케이스가 없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은 창업을 하여 성공궤도에 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기회가 있으실 걸로 고려 됩니다. 디제이님을 응원 합니다. ^^

창업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
응원 감사합니다.
아직 몇 개월 여유가 있어서 그동안 자기계발을 충실히 해보려 합니다.

환경관련 전공을 하셨나요?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궁금한게 많아서 물어보고 싶은게 많네요 ㅎㅎ]

제 주변에도 순수과학 전공자, 박사 학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졸업해서도 생활고를 견디고 포닥이나 시간강사로 많이 남아 연구자의 삶, 기회를 노리신 분들이 많았는데.. 근래에는 졸업하고나면바로 6-7할 정도는 취업을 하지 않는가 싶네요..

그래도 학계에 남아있고 싶으신 분들은 머신러닝과 빅데이터에 많이 뛰어들더라구요...

또 퀀트나 빅데이터 관련 교육을 1년 정도 받고 관련 기업으로 취업 하기도 하더군요..

저도 언제부터인가 요즘 공부를 시작하려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application 을 할 수 있는 분야를 하라고 권유하고 있네요...

ㅠㅠ

네, 환경관련 맞습니다. 너무 자세히 들어가면 이쪽 분야가 너무 좁아 신상이 들어날 우려가... ^^
궁금한게 많으시다니 뭐가 궁금하신지 제가 궁금하네요. ㅎㅎ
퀀트나 빅데이타 관련 교육이 1년이나 걸리는군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요.

그렇군요. 환경 관련 쪽이면 자리가 더 없겠네요 ㅠㅠ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잡더군요
아는 동생도 6개월 정도 교육받고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서 빅데이터 회사로 취업했더라구요

그나마 다행인것은 요즘은 국내에서도 교육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미국 같은 경우는 아예 1-2년 코스로 교육후 회사까지 다이렉트로 연결까지 해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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