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12] 못난 내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어요: 마음챙김을 통해 지나친 자기초점적 주의로부터 벗어나기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란 자기 자신에게 주의와 초점을 두는 개인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경향을 말한다.1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 감정, 감각, 행동 등에 관해 생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지 예측하는 능력은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하던 시대나 지금이나 생존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여 유지해 나감에 있어 유용한 측면이 많습니다. 생존과 사회적 유대를 임의로 구분하였지만 사실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고, 원시시대라 하더라도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지 예상하는 것이 늘 중요했을 수 있습니다. 자의식을 통해 인간은 생존에 보다 유리할 수 있었고, 이런 이점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그 기능이 지속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 감정, 행동에 대한 인식은 심리학자들이 보통 사적 자의식(private self-consciousness)이라고 명명해 왔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에 관한 인식은 공적 자의식(public self-consciousness)이라고 부르죠. 공적 자의식이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사회적인 눈치가 빠르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기 쉽습니다. 스팀잇에서도 이런 센스를 장착하신 분들이 보다 빠르게 레벨업하는 경향을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적 자의식이 지나치게 되면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안을 야기하기 쉽죠. 사적 자의식 역시 양날의 검입니다. 사적 자의식이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면 의사결정이나 판단에 도움이 되겠죠. 특히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정보가 불확실하고 모호할수록 감정 혹은 느낌(우리가 보통 ‘촉’이라고 표현하는) 같은 내적 정보를 사고와 잘 융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적응적인 결과를 야기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사적 자의식은 여러 가지 정신병리적 특성과 연관되게 마련입니다.

사적 자의식은 보통 자기초점적 주의(self-focused attention)라는 개념을 통해 심리학 연구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초점적 주의는 자기성찰(self-reflection), 자기검토(self-monitoring), 자각(self-awareness), 내성(introspection), 반추(rumination)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으로 설명되며, 사적 자의식도 자기초점적 주의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렇다면 자기초점적 주의는 무엇일까요? 앞서 사적 자의식의 개념과 상당 부분 오버랩되는 정의를 가져옵니다.

자기초점적 주의란 개인의 주의가 자신에게 맞춰져서 자기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 외모, 행동 등에 집중되어 있는 높은 수준의 자기자각 상태를 뜻한다.2

자기초점적 주의는 외부 요인에 의해 상태적으로 증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리학에서 자기초점적 주의는 대부분 지속성을 갖는 변인으로 상정됩니다.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나타내는 특성으로 간주할 때가 많다는 것이죠. 자기초점적 주의가 높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감정이나 사고를 통제함으로써 상황에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적 자의식이 그러하듯 자기초점적 주의 역시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되면 기능적일 수 있습니다. 사고나 감정, 느낌을 상황 판단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지만,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도 주의의 초점을 이동하여 외부 데이터 또한 판단의 근거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내외부 데이터를 모두 활용하게 되는 경우 자기초점적 주의는 기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자기초점적 주의가 과도하면 병리적인 특성을 나타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등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십상입니다. 자신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에 적절한 인물이 못 된다는 '생각'이나, 긴장으로 인해 야기된 신체적 반응(ex, 식은 땀) 등에 집중하다 보면 빠르게 변화하는 의사소통상의 맥락을 놓친 채 혼자 겉돌기 쉬울 것입니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을 얘기하였지만, 과도한 자기초점적 주의는 불안, 우울, 강박, 정신증과도 유의미한 상관을 지닙니다. 다양한 정신병리를 관통하는 요소라는 것이죠.

자기초점적 주의의 기능적인 면과 역기능적인 면을 아우르려는 시도를 여러 심리학자가 시도했는데, 국내에서는 이지영과 김환이 대표적입니다. (이 두 분은 저보다 훨씬 경력이 많고 연구 실적도 압도적인 존경할 만한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이지영은 Ingram 같은 선행 연구자들을 참고하여 '자기몰입'과 '일반적 자기초점 주의 성향'으로 구분되는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 척도(Scale for Dispositional Self-focused Attention in Social situation: SDSAS)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자기몰입은 자신의 특정 측면에 과도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자기의 다른 측면이나 외부로 주의를 돌리지 못 하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이지영은 <사회불안과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의 관계>3라는 논문에서 일반적 자기초점 주의 성향이 높으면서 자기몰입이 낮은 사람을 비방어적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으로, 일반적 자기초점 주의 성향이 높으면서 자기몰입이 높은 사람을 방어적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연구 결과는 방어적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은 높은 사회불안과, 비방어적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은 낮은 사회불안과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을 저자의 말을 통해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사회불안이 낮은 집단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되 비방어적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에게 주의를 많이 기울이되, 자신의 내적 측면을 다양하게 자각하며 다른 측면들에 쉽게 주의를 전환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환은 자기초점적 주의의 자기몰입적인 측면과 관련하여 초점조절능력 부족, 낮은 명료성, 부정적 편향의 세 가지 속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초점조절능력 부족은 주의의 초점을 융통성 있게 변화시키지 못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정적 편향은 주의의 폭이 넓지 못하고 제한적인 것을 의미하죠. 우울한 사람들의 반추(rumination) 경향을 떠올리시면 이 두 가지 개념을 이해가 쉬운데, 과거 부정적인 경험과 그것이 야기하는 현재 불쾌한 기분과 이 둘 모두에 의해 야기되는 부정적 미래 전망 등으로 쉴 새 없이 주의가 오가지만, 다른 주제로 의식적인 주의이동이 어렵다는 것이죠. 내용도 모두 부정적인 사고뿐입니다.

김환의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초점조절능력의 부족이 낮은 명료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연결이 어떻게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게 되는 것일까요? 역시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초점조절능력이 부족한 것은 명료성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의 상태나 행위를 살펴보는 자기관찰(self-observation)의 일차적 목표는 내면에 대해 또렷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만일 내적 대상에 초점이 고정되지 않고 조절이 안 되면 내면에 대한 또렷한 인식은 어려워질 것이다. (중략) 단순히 정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연구에 따라 우울이나 반추와 정적 상관을 보였지만, 명료한 인식은 신경증이나 우울과 부적 상관을 보였다. 또 우울한 환자 집단이 과거의 일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회상하지 못하는 자전기억 과일반화 현상이 반추로 인해 유도된다는 결과도 있다. 이것은 반추가 구체적이지 않고 명료하지 못한 자기초점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4

자기몰입이 단순히 주의 통제에서의 어려움일뿐만 아니라 자기의 내적 상태나 기억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 하는 것과 관련 있고, 이 두 가지 모두가 자기초점적 주의의 역기능적 특성을 초래하는 요인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 그럼 역기능적인 자기초점적 주의가 야기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문제점을 찾았으니 해결방안을 알아봐야 하겠죠.

자기초점적 주의의 역기능적인 측면, 즉 높은 자기몰입에 대한 해독제로서 마음챙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seoinseock님께서 스티미언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그 마음챙김이죠. 마음챙김은 근본적으로 의식적인 주의조절 능력을 강화하고 사고나 감정, 감각 등에 대한 명료함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정적인 내용들에 초점이 집중돼 있고 의식적으로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일수록 마음챙김을 통한 이득을 얻기 쉽습니다. 마음챙김은 자기 내외적 요소들에 마음이 마구잡이로 뒤흔들리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런 요소들에 관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따라감으로써 자동으로 주의가 이동하는 것을 막고, 제한된 주의 자원을 의식적으로 할당할 수 있게 돕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어디에 둘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이는 김환의 논리를 따르면, 주의를 두는 대상에 대한 인식의 명료성을 높이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음챙김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연구자마다 다르다 하더라도 주의의 자기조절(self-regulation of attention) 과정을 마음챙김의 핵심 요소로 포함시키는 데 반대할 심리학자는 아마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마음챙김과 의식적인 주의 통제 간의 관련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황으로 보입니다. 마음챙김을 하며 의식적으로 주의를 통제하게 되고 나아가 마음 속에 흘러 가는 것들을 보다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도 일상에서 매우 anti-마음챙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인지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속적으로 경험한 적은 드물다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최소한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태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이 아무리 부정적인 속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결국 왔다가 지나가는 것임을 알기에, 내적 경험에 완전히 개방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쏭달쏭하죠? 그 경지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경지에 오르게 되었을 때 인간의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이 증진될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게 되네요.

ref)

  1. 이선주 (2008). 사적 자의식과 정서 경험이 신경증적 경향에 미치는 영향. 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2. 김용현 (2017). 자기초점주의가 대인관계문제에 미치는 영향: 마음챙김과 사적 자의식의 조절효과 및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3. 이지영, 권석만 (2009). 사회불안과 자기초점적 주의 성향의 관계, 인지행동치료, 9(1), 39-55.
  4. 김환. 이훈진 (2012). 역기능적 자기초점 속성 척도의 개발 및 타당화. 한국심리학회지: 임상, 31(2). 487-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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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처럼 공복에 압도되지 않고 ‘지금 내 위장이 원하는 건 뭐지?’라고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되죠. 열심히 가게를 찾으면서요. 내적 정보와 외적 정보를 잘 활용한 결과, 행복한 식사를 하게 됩니다. ㅎㅎ

고로 챙겨보는데, 명쾌하네요. ㅎ

제가 자기초점적 주의가 과도한 타입인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귀차니즘으로 인해서 중간에 신경쓰기 귀찮아져서 탈출할 때가 있습니다;

귀차니즘이 주의분산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군요!

정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정적 자기인식에서 긍정적 자기인식으로 나아가는데 마음챙김이 좋더군요. 인간의 뇌와 마음 구조가 비슷하므로 다른분들께도 도움이 되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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