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시 쓰기 #27] "녹찻잎이 머금던 말" / 이경원
더는 하고 싶은 말도
할 말도 없다공허함으로 쌓인 입 속에
쓰디쓴 녹찻잎을 한번 넣어보곤
맛을 음미한다견디기 힘들어 금방 뱉어내고
괜시리 화를 내질러버린다따스한 손길로 물을 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녹찻잎이 발그레 향을
피운다그 맛이 본연의 맛임을
알아주길 바래보며
한번 더 음미해보길나의 말이 쓰디쓴 녹찻잎이라면
흐르는 물과 흐르는 시간을 기다리고
한번 더 음미해보길녹찻잎이 머금던 말 / 이경원
시는 권유와 상상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보여줄 뿐, 글의 주제나 의미는 전부 독자의 몫이니까요... 그래서 전 시를 좋아합니다. 한 문장을 두고 오래 사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쓰디쓴 녹찻잎이 무엇일지 상상해보았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 선생님의 호통, 학우들의 충고, 교수님들의 조언... 심지어 스팀잇에서 글을 올릴 때의 스티머들까지 떠오릅니다.
어떤 말이든, 그것이 심지어 도움을 주는 말일지라도 사람의 감정이 쉽나요. 찻잎에 들어간 향 만큼 감정선이 오르락내리락하겠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한 번 더 음미한다'는 부분과 '흐르는 물, 흐르는 시간'을 읽었을 때는 황당할지 모르시겠지만 블록체인 시스템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 이곳에서는 아무리 녹찻잎같은 말이라도 불순물이 들어간 녹차인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먼저 음미하고 평가해보는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학업과 과제에 치어서 피곤한 아침에 쓰지만 따듯한 시를 읽어보니 기운이 납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