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13. 변비 탈출을 향해서

in #kr-pet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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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에게 변비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전에도 변비로 병원에 다녀왔다. 당시에도 습식 캔을 권유받아 인터넷에서 유명한 주식 캔 3~4종류를 사보았지만 모두 실패했고, 그 이후엔 우리 둘 다 바빠서 잊어버렸다. 고양이 변비는 사람의 변비와는 달리 목숨과 연관된 것을 일찍 알았다면, 그래서 그때 조금 더 노력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제야 든다.

주식 캔(또는 파우치) 찾기 프로젝트

주식 캔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입맛 까다로운 고양이 주식 캔 찾기 프로젝트 이후에도 몇 종류를 더 샀고 아직 배송 중인 상품도 있다. 집에서 삶은 닭, 구운 고등어, 간식 캔까지 포함해서 총 79가지의 습식 캔을 시도할 예정이고, 현재 45종류를 시도해보았다.
닭, 치즈, 생선까지만 허용하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소, 캥거루, 사슴도 먹는다. 둘 다 양고기와 칠면조는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일 섭취 칼로리인데 1g당 적어도 3.5kcal를 생성하는 건사료와 달리 습식 캔은 1g당 0.4kcal~1.6kcal밖에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습식 캔만 먹을 경우 건 사료 섭취의 3배에 달하는 양을 먹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건 사료 위주로 먹었던 첫째 둘째의 위는 그렇게 크지 않다. 한 번에 많이 먹지도 않지만, 혹시나 많이 먹은 경우에는 결국 토해내기 때문에 우리는 잘 먹으면서도 열량이 높은 그러면서도 방부제와 인공 향료도 없으며, 뉴질랜드산 녹색 잎 홍합이 들어가 관절에도 도움이 될 주식 캔을 찾고 있다.

주로 씹어먹는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혀를 이용해서 음식을 입안으로 넣는다. 그래서 습사료를 먹는데 사용하는 대부분 시간은 음식을 입안으로 넣는 것을 실패하는 데 허비한다. 집에서 삶은 닭의 경우, 길고 잘게 찢어서 주기 때문에 입에 들어갈 확률이 높은 편이나, 대부분의 습사료는 참치처럼 짧은 형태라 잘 먹지 못한다. pâté 형으로 된 주식 캔도 종종 있지만, 지금까지 시도한 캔은 첫째가 싫어하는 맛이거나, 또는 열량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그나마 잘 먹는 주식 캔을 갈아줬더니 먹는 양이 현저하게 늘어나서 이틀간 환호했지만, 그 이후로는 잘 먹는 날도 있고, 아예 입도 대지 않는 날도 있다.
고양이는 음식을 묻는 시늉을 할 때가 있다. 문제는 맛이 없어도 묻고, 맛이 있어도 묻는다는 것. 맛없는 음식은 버리는 의미로, 맛있는 음식은 숨겨뒀다 나중에 먹겠다는 의미로 묻는다고 한다. 나는 첫째가 왜 음식을 묻는지 알고 싶다.

새로운 건사료

변비에 걸리기 전엔 신장에 도움이 되는 Royal Canin Renal을 먹였었고, 변비 후에는 Gastro Intestinal을 먹였다. 내가 여행을 간 동안 의사로부터 습사료를 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그 말을 아주 충실히 이행했다. 문제는 다이어트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일까? 일일 권장 열량과 각 습사료의 열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습사료만 먹어 배부른 아이들은 충분한 열량 섭취를 못 했기에 내가 돌아왔을 땐 털에 윤기가 없어진 상태였다. 처음엔 신장이 나빠진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났고, 그다음엔 영양 부족으로 지방간이 온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황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방간은 아닌 것 같아서 열량을 늘릴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건사료도 함께 먹이기로 했다.
Gastro Intestinal의 열량은 1g당 3.48kcal고, 길냥이들을 위해 사뒀던 Royal Canin Fit32의 경우 1g당 3.67kcal이다. 혹시 해서 둘 다 줘봤는데 첫째와 둘째 모두 Fit32를 선호했다. 그 이후엔 무려 1g에 4.1kcal나 되는 Royal Canin Sensible을 발견했다. 열량으로 치면 센서블이 우세하지만, 둘째는 센서블을 잘 먹지 않고 왜인지 센서블에는 차전자피가 들어있지 않아 Fit과 Sensible 모두 급여하고 있다.

기존에는 물그릇이 세 군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먹고 싶을 때 바로 먹을 수 있게 하라는 조언에 물그릇을 8개로 늘렸다. 또한 처음 샀을 때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아 구석에 치워뒀던 분수대도 다시 가동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첫째와 둘째 모두 잘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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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세린 좌약, Miralax, 차전자피, 프로바이오틱스

  • 글리세린 좌약 : 변비의 원인 중 하나로 거대결장으로 인한 근 무력과 결장 끝부분의 신경 이상을 의심했다. 그 당시 락툴로스를 먹이던 때라 변 자체는 딱딱하지 않았으나 계속 변비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첫째의 담당 선생님은 어린이용 글리세린 좌약을 통해 거꾸로 신경을 자극해보기를 권했고, 그 방법마저 통하지 않으면 거대 결장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기에 우리는 온 힘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첫째의 나이는 적어도 9살로, 담당 의사 선생님마저도 수술은 위험성이 커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고양이를 붙잡고 있어야 할지 우리도 몰랐고 첫째도 몰랐다. 그래서 한 알을 넣는데 4~5개 정도는 실패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남편도 잡는 방법을 터득했고, 첫째도 안기면 꼬리를 들어 약을 넣기 쉽게 도와준다.
    그리고 근 무력과 신경 이상이 맞았는지 글리세린 좌약을 넣으면 90% 확률로 배변에 성공한다.

  • Miralax : 사람용 변비약으로 하루에 1/8tsp 미만을 급여 중이다. 대장 내로 물을 흡수하게 해서 변을 무르게 하는 용도인데, 만성으로 사용할 경우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한다. 끈적해서 거부가 강했던 락툴로스와, 첫째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Laxapet과는 달리 무향, 무취, 무미에 변을 무르게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역시 가능하다면 그만 먹이고 싶은 약이다.

  • 차전자피 : 기능성 식이섬유로 고양이용을 사고 싶지만, 아랍에미레이트로 배달 가능한 업체가 없어서 그냥 사람용으로 샀다. 1/8tsp 미만을 급여 중인데, 우연인지 아닌지 차전자피를 처음 먹은 다음 날, 첫째가 29일 만에 좌약 없이 스스로 배변하는 데 성공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16일간 5번을 성공했고, 근무력과 신경 이상을 의심했던 우리에게 어쩌면 변비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 프로바이오틱스 : 다른 고양이들이 잘 먹는다는 리뷰를 읽고 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첫째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섞은 습사료를 먹질 않는다. 며칠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은 미라락스+차전자피 대신 프로바이오틱스+차전자피로 배변에 성공하는 것이다.

건사료와 습사료 비중은?

습사료 대비 건사료의 열량이 2~9배 정도 높기 때문에 열량을 채우면서도 토하지 않을 만큼 먹이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건사료 급여가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양이 적당한 것인가였다. 결국 전체 먹은 양 대비 습사료 비중을 계산해 보았고, 혼자 배변을 한 날은 굵은 글씨로 표시를 해서 대조한 후, 매일 먹는 양의 70%는 습사료를 먹이기로 했다.

사실 먹고 말고는 첫째 마음이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지 의문이지만 먹으라고 계속 따라다니면 조금이라도 먹는 성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저울 그리고 웹캠

  • 음식용 저울 : 먹은 양을 측정하기 위해 처음에는 슈퍼에서 파는 최소단위 1g의 테팔 전자 저울을 샀다. 하지만 그 저울은 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값이 바뀌는 발암 덩어리였고, 1g, 1g이 소중했던 우리는 결국 인터넷에서 최소단위 0.1g의 저울을 다시 구매했다. 새로 산 저울은 엄청난 정확도와 신속 서비스로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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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중계 : 첫째는 마른 상태로 더 살이 빠지면 안 되고, 둘째는 비만이라 살을 빼야 해서 반려동물용 체중계를 구매했다. 첫째의 경우 4kg로 되돌리기 위해 1일 158kcal를 목표로 삼았는데, 둘째의 경우 180kcal부터 350kcal까지 웹사이트마다 다른 열량을 권고하고 있었다. 기존에는 230kcal를 목표로 급여하고 있었는데, 지난 7일간의 평균 섭취 열량이 196kcal인 반면 몸무게는 큰 변화가 없어 200kcal를 섭취하는 것으로 재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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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캠 : 모션인식을 하는 웹캠과 일반 웹캠을 사서 하나는 고양이 화장실에, 하나는 식판 앞에 뒀다. 가끔 인식을 못 하거나, 앱이 종료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긴 하지만 누가 언제 어느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어 정말 편해졌다.




오늘 1달간의 라마단이 끝난다. 그간 고양이 돌보느라, 일찍 퇴근하는 남편 삼시 세끼 챙기느라 나에게 소홀해져 있었다. 작년에 디스크로 고생한 후 필라테스와 걷기로 한창 체력을 길렀는데 작년 12월에 연말 분위기에 휩쓸린 후 지금까지 필라테스,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그 어느 곳도 가지 않았다. 더워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아서일까? 며칠 전엔 급기야 기운이 다 빠져 이틀간 누워있기만 했다. 이제는 첫째의 변비 해결을 위한 시스템도 어느 정도 구축했으니, 이번 휴일이 끝나면 다시 요가부터 시작해야겠다.

이다음 집사 일기 제목은 "드디어 변비 탈출!"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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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는 직립동물의 전유물인줄 알았더니 의외군요.
저는 동물들은 수분이 모자라면 알아서 음수량도 늘리고
운동도 하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
너무 큰 기대를 했나봅니다-ㅅ-;;

저도 알아서 먹고 운동할 줄 알았지만 저희집 애들 덩치 차이만 봐도.. ㅋㅋ 운동하기 귀찮은건 사람이나 고양이나 마찬가지인가봐요.

두냥이 나란이 앉아서 ㅋㅋ 뭘그리 뚫어져라 보고있누ㅎ
사람이나 동물이나 변비는 참 싑지 않군요 ㅎ

집사야 밥을 내놓아라 냐옹.
애기들 변비랑 치료법은 비슷한가봐요. 다만 애기들은 아직 어리고 저희 고양이는 나이가 있다는 정도..

고양이도 변비가 다 있군요... 집에서 키워서 그럴까요?

많이 안 움직여서이거나, 물을 별로 안마셨거나, 나이가 들어 장근육이 약해지거나 관절염으로 화장실에서 취하는 자세를 꺼려해서 그럴 수 있대요. 아예 집 밖으로 산책을 시키기에는 동네 길냥이가 너무 많고, 집 안에서는 많이 움직이질 않네요.

집사님 화이팅!

감사합니다!

써니님의 첫째에 대한 사랑이 물씬 느껴집니다 ㅠㅠ 우리 첫째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으면서도 열량도 높은 사료가 얼른 나타나기를 ....
그나저나 써니님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니다 !!!!!!! ㅠㅠㅠㅠ

으앗! 그간 또 많이 바쁘셨나요?!!
열량이 높으면서도 생선이고 몸에 좋고 질감도 첫째에게 맞는 캔이 금방 도착해서 줘 봤는데 또 거절 당했어요. 한국에는 온라인 펫샵이 많은데 여긴 적어서 더 테스트해볼 수 있는 제품도 많이 안 남았어요 :( 참 쉽지 않네요. 이러다 아마존에서 구매하게될 것 같은.

결국 만인의 이마트, 아마존에서 사셔야 하나봅니다 ㅠㅠ

눈물나도록 자세하게 데이터를 수집하시네요..
사실 고양이의 병을 낳게 하기위해 먹는 양과 그의 열량까지 세심하게 체크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첫째가 빨리 낳았으면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니까요...ㅎㅎ

저희가 첫째 나이도 정확하게 모르고, 의사마저 꺼리는 수술을 감행할 수는 없어서요.. 그냥 예전에 처음 변비가 왔을 때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지금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 미안할 뿐이예요.

흐으...집사 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정말 호기심 만으로 반려동물을 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껴요 ㅠㅠ
변비 탈출 기원!!! 순풍 순풍 나오기를... :o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귀여웠는데 같이 오래 지내다 보니깐 가족이 되더라구요. 처음에 잘 케어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당시엔 너무 아는 것도 없고 회사 생활에 제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 같아요 :(

동물들도 당연히 변비에 걸릴텐데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네요. 자세히 매일 매일 잘 누는지 체크해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두마리를 키워 누구껀지 분간이 안돼서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웹캠이 도움이 되더라구요. 일찍 일찍 케어해주세요.

집사하기도 정말 쉽지 않네요.. 알아야하는 지식들이..ㅎㅎ
그래도 저렇게 귀여운 주인이 있으면..ㅎㅎㅎ
고양이몸만 아니라 realsunny님 몸도 꼭 챙기면서 일하세요 ^^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귀여워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알아야 할 지식 중에 특히 중요한 부분은 처음 입양할 때 수의사선생님이 알려주셨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몰라서 못 찾는 부분이 많았어서요.

정말 공부 많이 해야 하는군요 ㄷㄷㄷ
다음번엔 꼭 변비탈출 이야기가 올라오기를 저 역시 바랍니다. 화이팅!!
그나저나 소, 캥거루, 사슴 등의 캔을 먹는다니 좀 웃기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을 먹는것도 웃기지만 캥거루랑 주머니여우가 통조림으로 나온다는게 더 충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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