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줄기 에서 멈춰 한참 보고 있었습니다. 화면을 키워서 확인도 해보고 말이죠. 갚아야 하기에 '빚'이란 시어를 선택한건가 하면서... 무지에 대한 대가가 부채로 다가온다면 지식을 갖추어 간다는 것을 부채에 대한 상환으로 읽어도 되는가... 선대가 물려준 지식을 학습한다는 것은 빚을 갚는 마땅히 해야할 일인가...
뭔가 샛길로 빠져버린 느낌입니다.
지렁이가 무지렁이가 되어 죽듯 식자가 자신이 무식자임을 직면하면 죽겠죠?
새벽이란 시간이 이토록 몽상 혹은 망상을 부채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즐거운 고뇌에 찾게 됩니다.
정확하게, 오타가 아니라 일부러 적어놓은 단어가 맞습니다. 알지 못함에 대해서 이를 (심지어) 죽음으로 갚아야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죽음은 물리적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식을 갖추는 것을 통해 부채를 상환한다는 해석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환은 결국 후대에 빚을 다시 남기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흔적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벽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잠들기전의 새벽과 일찍 깬 후의 새벽을 모두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