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꿈의 해석 - 1

in #kr-pen6 years ago (edited)



꿈의 해석 - 1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미래를 향해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나의 개념은 사람들과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끝없이 순환되며 이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의 시간이 통용되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삶의 조각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의 생활도 어느새 5년이 흘렀다.

군대에 가기 전 나를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는 나를 찾지 않는다. 내게 휴대전화가 없고, 도무지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친구들은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거기에 대해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시간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성난 파도 같은 세상에서 떨어져 잔잔한 호숫가에 나만의 움막을 짓고 살아가는 격이다. 세상과의 단절,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내 방은 그야말로 아날로그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언젠가 나는 인터넷을 하다가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는데, 대량의 정보가 서로 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겠다고 싸워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 그 이후로 컴퓨터는 사용하더라도 인터넷을 이용하진 않았다. 애초부터 우리 집에 컴퓨터가 있었던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내 방에 컴퓨터가 들어설 여지는 없을 것이다.

내가 기거하는 다락방에는 낡은 건물들이 개미떼처럼 밀착해 있는 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그마한 창이 하나 달렸다. 나는 늘 상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칙칙한 시멘트 벽돌로 이루어진 낡은 건물들이 아니라, 드넓은 산과 들이 펼쳐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다락방을 따로 옮기지 않는 한, 창밖의 풍경은 변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대학 다닐 때 전공공부 대신 홀로 틈틈이 익힌 미술 실력을 십분 발휘해서 내가 직접 원하는 풍경을 상상해서 그린 수채화를 창에 붙여 놓은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한 이틀간은 보기 좋았다. 아침마다 들리는 참새 소리가 그림 속 풍경에서 들려오는 것 같고 주방의 수돗물 트는 소리가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정적인 그림으로는 나의 바람을 만족하게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그림을 붙인 후로는, 창을 닫을 때마다 방에 볕이 잘 들지 않아 습하고 어두웠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창에 붙여놓은 풍경화를 떼 버렸다.

나는 다락방에 기거하면서부터 창밖을 내다보며 세상을 관찰하는 취미가 생겼다. 세상은 조금만 멀찍이서 바라보면 온갖 호기심 넘치는 일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밤 열 시가 넘어, 이틀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취객이다. 취객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전봇대와 시비를 붙기도 하고, 전봇대를 부여안거나, 심지어는 영역표시까지 한다. 어느 정도 전봇대와 우정을 나누고 나면 그는 매번 같은 장소에 제집처럼 드러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걸며 맛있게 잔다. 잠을 자는 취객을 쳐다보는 행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개똥 쳐다보듯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 멀찍이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 손가락질하는 사람, 전혀 무관심한 사람,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를 깨울 용기는 없다. 내가 행인이라도 그렇겠지.

내가 1층과 좁은 계단으로 이어진 2층 다락방에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든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어떤 충격, 실연, 상처, 같은 것들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좁고 어둡고,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공간을 20대의 중반을 앞두고 다시 발견했을 때,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어릴 적 안긴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함이었다. 어찌나 포근했던지 나는 다락방을 다시 발견한 당일,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가 오후 늦게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대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다락방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다락방에서 잠깐잠깐, 책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하던 것이, 자주 읽는 책들을 옮겨놓는 책장으로, 낮잠을 자는 침실로, 최종적으로 붓과 팔레트와 이젤과 그 외의 미술도구들을 들여 놓아 곧 화실로 발전시켰다. 나는 더는 외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외출을 하지 않자 어머니는 걱정했고, 아버지는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다락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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