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벨레로폰의 비극 - 5 <완>

in #kr-pen6 years ago



[단편] 벨레로폰의 비극 - 5 <완>

결국, 나는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껄껄거리고 있는 목각부엉이를 뒤로하고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내와 단단하게 생긴 백인 남자가 오픈카 안에서 그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영상이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이제껏 보아왔던 품격 어린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쾌락에 영혼을 파는 섹스중독자의 맥이 풀린 미소가 서려 있었다.

내 몸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용솟음쳐 올랐다. 이제껏 내가 뿌리를 딛고 있었던 반석이 사구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기분 때문에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신음은 점점 더 크게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빤질빤질하게 생긴 백인 녀석은 무어라 말인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저 양키 놈을 죽이고 말리라!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복도에 굴러다니던 삽자루를 집어 들었다.

내 이 개새끼들을 산산조각내고야 말 테다! 산산조각내서 조각 퍼즐로 만들어 대형할인점에 떡하니 전시해 버릴 거다. 나는 삽자루를 집어 들고 생생한 영상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영상 안에 집어넣은 손이 경계에 부딪히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손이 뜨거운 주전자를 만진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목각부엉이에 서린 나무도령의 한 맺힌 영혼이 공중에 떠서 껄껄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오픈카 안에서 뜨거운 몸짓을 나누던 두 사람은 갑자기 허공에 삽자루가 떠서 차를 툭툭 건드리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얍삽한 족속들! 맹수를 발견한 겁먹은 토끼처럼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어라.

나는 삽자루를 높게 치켜들어 공간을 뚫고 백인 놈의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일순간 뿌연 광선이 백인 놈의 가슴에서 피어올랐다. 나무도령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내 귓전에 커다란 스피커를 틀어 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퍼지더니 이내 내 뇌를 잠식해 들어갔다. 나는 고통스러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주변이 어둠에 잠기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되어 있었고 어둠 속에서 목각부엉이가 조롱하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였고 나는 내 방에 오롯이 누워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으며,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당장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영아! 괜찮니? 괜찮아? 무슨 일 없었어?”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서 잘 않더니 갑자기 웬 전화? 그리고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아니…삽, 그러니까…삽자루가 떠다니거나 그러지 않았어?”

“이 양반이, 뭘 잘못 드셨나? 삼류 공포영화를 보기라도 한 거야? 애랑 한가하게 집에 있는데 무슨 소리야.”

“애 바꿔봐! 목소리 좀 듣자.”

“어머, 왜 이렇게 안달이래? 예지는 지금 2층 화장실에 있는데, 가서 바꿔줘?”

“아.. 그, 그래? 됐어. 그럼. 괜찮아”

“참나, 요즈음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아냐. 그런 거. 잠시 악몽 꿨나 봐.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치, 그런 약한 말 우리 안하기로 했잖아. 아이를 위해서 고생스러워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야 여보. 난 여전히 당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거 알잖아.”

“알지 그럼……알았어. 그럼 쉬어. 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전화 속의 아내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모두 다 개꿈이었던 거야. 며칠 전 내 꿈속에 나타났던 팔선녀는 그저 몽정이 그리운 나머지 무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었던 거야.

껄껄껄. 에이! 망할 태국 할망구. 나무도령은 개뿔!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물병을 집는 내 손에 무언가 찌릿한 감각이 느껴져 나는 소리를 지르며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황급히 불을 켰다.

놀랍게도 내 손에는 깊은 물집이 배어 있었다. 깊고 깊은 물집.

나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변은 매우 고요하고 적막했다. 개미 한 마리 없을 것 같은 지독한 공허가 내 폐부를 쑤시고, 목각부엉이는 조롱하는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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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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