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야성을 잃은 세태 : 잭 런던 <야성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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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은 예전의 까다로운 식습관을 곧 잊었다. 우아하게 먹으면 먼저 다 먹은 동료가 그의 남은 음식을 강탈했다. 그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그가 두세 놈들과 싸우고 있으면 어느새 다른 놈들의 목구멍이 그 음식을 먹어 치웠다. ... 너무 심하게 굶주려서 이제는 남의 것을 넘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 이 첫 도둑질은 살아남기 힘든 북극에서 벅이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증표였다. ... 생존경쟁이라는 무자비한 투쟁에서 도덕성은 허영에 불과하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 잭 런던 <야생의 부름> 중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에는 벅이라는 개가 나온다.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던 벅은 어느날 썰매를 끄는 개로 팔려간다. 나른하게 하루를 보내고, 또 비슷한 다음 날을 맞던 벅에게 하루는 느닷없이 생존과 투쟁의 장이된다. 이제, 혹독한 야생에 적응하며 벅에게 숨겨져 있던 야성이 깨어난다. 벅은 말한다. '도덕은 생존 경쟁의 투쟁 현장 속에서는 무의미한 것임을 알았다.'고.

굶주림 속에서 인간은 도덕적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배가 부른다 해서 도덕적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개는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개와 인간의 차이다. 최근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이명박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방송 장악 시도와 숱한 방산 비리, 정경 유착 등의 관례화된 한국의 악습은, 언제나 풍요를 부르짖는 이들에 의해 자행됐다. 풍요와 도덕이 오히려 상반되는 상관 관계를 갖는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한국 사회는 굶주려있는가? 1953년 한국 전쟁 이후 급속도로 발전해 온 한국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원조를 받는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나라라는 말과, 세계 경제 10위에 속하는 경제력이라는 진부한 수식어는 언제까지 되풀이 될 것인가.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우리는 성찰의 기회를 놓쳤다. 그러는 사이 깨어난 건, 아니러니하게도 야성이 아닌 도덕이었다. 도덕은 당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야성을 잠재웠다.

소설의 말미, 말미에서 벅은 썰매를 끄는 개들의 대장이 된다.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치열한 순위 다툼을 이겨낸 벅은 힘차게 썰매를 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벅은 썰매를 끄는데 미숙한 어느 몰이꾼의 팀으로 팔려간다. 몰이꾼의 계획은 야심차다.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얼어붙은 강과 산을 넘으려 한다. 그렇게 개들을 몰아부친다. 대장인 벅은 썰매 끌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들은 벅을 떼어놓고 무리하게 개들에게 채찍질을 거듭한다. 그렇게 그들의 썰매는 얼어붙은 호수의 한복판을 지나다 결국 추락하고 만다. 그들은 충분한 식량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호수를 건너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잭 런던 <야성의 부름>은 문명 사회 풍요와 빈곤 속에처한 현대인들을 위한 소설이다. 도덕이란 이름으로 강요된 합의의 편파성에 대한 비판이자, 그것에 가만히 수긍하는, 야성을 잃은 세태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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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  last year (edited)

어떤 분이 그림을 보러 오셨나 구경왔어요..ㅎㅎㅎ모험가는 죽고 야성의 벅은 살아남는군요. 히어로 벅이네요 만화 소재네요 ^^
혹시 님 소개사진'에곤실레' 신가요? 임대한 파워로 보팅하고 가요....팔로우 해요. 자주뵈요

안녕하세요 @raah 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처음엔 책의 메시지가 특별하다 생각했는데, 조금 달리보면 히어로 물로 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프로필 사진은 에곤 실레 맞습니다. @raah 님 초상화 이벤트 하시면 한 번 신청해 보려고 기회를 틈타고 있습니다 ㅎㅎ

와..저도 @thewriting글 보면서

독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됬습니다.

강한동기부여 감사합니다.

제가 사색이 부족했었던거 같아요!!

눈이 너무 초롱초롱 하십니다. 저녁에 스탠드 없이도 책 보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처음 kr-pen을 정독하고 있는데 참 좋네요.

@pagery 님 안녕하세요! kr-pen에는 좋은 글이 많지요 ㅎㅎ 그래서 괜스레 부담스러워진다는..

도덕성마저 편파적일 수 밖에 없다면 내 도덕성은 어느 줄에 서야 할까... 고민되네요...^^

  ·  last year (edited)

현실적인 말씀을 해주셨네요 ㅎㅎ 그런 고민 끝에서, 우리는 합의된 도덕과 개인의 야성의 접점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책 우리집에 있는데 읽지는 못 했네요. 혹시 원서로 책을 읽으시는지요?

안녕하세요 @energizer000 님,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읽었습니다 :) 표지 사진을 구하다 보니 원서 사진을 올리게 되었네요.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