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 -2

in #kr-pen6 years ago

차가운 물수건에 정신을 차려 보니 달리는 택시 안이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 가는 불빛을 보며 옥이는 정신을 집중 하고 있다.
분명 거래처 H 사장에게 술을 권한 거까지는 기억 하는데...띄엄뜨엄 생각나는 영상 속에
자신이 H 사장의 바지에 토해서 죽일듯 달려든던 H 사장을 피해 화장실로 간 것까지는 기억 나는데,
자신이 어떻게 지금 택시 안에 있는지 알 수 가 없다. 어쨌든 이건 주벤져스 최악의 수치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얼굴에다 확 토해 버리는건데...'
택시 안은 히터의 열기로 후덥지근 했으며 지끈거리는 두통을 잠재우려 관자놀이를 누르는
옥이의 손목에 흉터 자국이 보인다. 어릴적 길을 잃고 산 속을 헤메다 넘어져 생긴 상처 자국이다.

옥이의 주당 기질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옥이 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하고 휜칠한 외모에 놀기
좋아 하는 호색한 이었다. 매주 5일 장날이 되면 농사일은 내팽개 치고 읍내 장터에서 하루 죙일
투전판에 색시집에 장터 바닥을 훓고 지나 다니며 오지랖을 떠는 지라 읍내 장터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을 만큼 유명 인사였다.
기분 내킬때면 장날 옥이와 동생들을 위해 센빼 과자
사오는 것도 잊지 않는 기분파 아버지를 옥이는 좋아 했다.
그래서 20리가 넘는 양조장까지의 막걸리 배달도 싫은 내색 없이 곧 잘 다니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그 날따라 양조장 아재가 마실 가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리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한식경이 넘어 들어 오는 아재에게 쏘아 부치며

"아재요, 이제 오믄 우얍니꺼"
"아따 쪼매난 간나 표독 스럽기가 지 에미를 똑 닮았네. 쪼매만 기둘려라 얼른 주께. 이 내도
사무가 좀 바쁜기라"
"아재, 또 경선이캉 데이트 했능교?"
"아따 쪼매난 가시나는 신경 쓸 거 엄따. 이거 얼릉 갖고 가라 고만. 그라고 아부지한테 꼭 전하그래이
이 달 마지막주가 디데이라꼬"
"디데이가 뭔교?"
" 그리 말하믄 다 안다"
"그라믄 여 손바닥에다 적어 주든가, 내깡 그 디~뭐시기 모른다 아이가!"
"오냐"

해질녘쯤 집으로 출발하게 된 옥이는 손바닥에 적힌 글씨가 행여 지워 질까봐 연신 쳐다 보며
걸었다. 양조장 재영 아재가 늦게 오는 바람에 옥이의 심부름은 많이 늦어졌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탓으로 옥이는 배가 고팠다. 손에 들려 있는 술주전자가 무겁게도 느껴지고 다리도
아파서 잠깐 쉬어 갈 요량으로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모 심기가 끝난 논자락 저 넘어로 보이는
동산엔 선홍색 진달래가 초록의 싱그러움과 어울려 유혹적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배도 고프고
목이 탓던 옥이는 막걸리를 한모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달짝지근한 막걸리는 목줄기를 타고 넘어 가서 온 몸 구석구석으로 전파되어 온 몸이 나른 하게
만든다. 마치 아지랭이가 옥이의 몸에서 피어나듯 옥이는 게슴츠레 해진 눈으로 자신의 손바닥
을 바라봤다. 유성매직으로 씌어진 " 디데이 이번주 일요일" 모르긴 해도 일요일에 아부지캉 아재
캉 모여 여자들 몰래 뭔가를 꾸밀 계획인 듯 싶다.
그때 아부지를 따라 가면 분명 옥이에게 떡고물
이 떨어질테니 그 날은 아부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겠다라고
옥이는 생각 하면서 자꾸만 떨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부여 잡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차가운 한기에 옥이는 눈을 떴다. 벌써 주위는 캄캄해져 있고 스산한 바람이
옥이의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옥이는 자신이 막걸리에 취해 이리저리 산허리를 돌아 다니다
쓰러져 잠든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 보며 자신이 어디 있는지 가늠해
보려 노력했지만 컴컴한 어둠은 옥이를 옥죄어 들뿐 9살 꼬마 여자 아이에겐 원초적 두려움
자체였다.
하늘에 떠 있는 초롱초롱 별들만이 그 어둠과는 별개이듯 반짝거리며 옥이에겐 유일한
친구인듯 했다. 옥이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 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걸음을 뗄때마다 어둠의
공포는 옥이의 발목을 붙잡는듯 느껴졌다. 이윽고 저 쪽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 소리
가 들릴때 옥이는 더이상 그곳에 멈춰 있을 수 가 없었다.
있는 힘껏 그곳을 벗어나려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시골에서 나고 자란 옥이지만 칠흙같은 어둠 속을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체
달려 간다는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고 결국 몇미터 못 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데굴데굴 구르다 돌부리에 걸려 간신히 멈춘 옥이는 오른쪽 팔이 욱신 거렸다. 고통이 몰려 왔다.
아마 넘어져 구르면서 다친 모양이다. 움켜 잡은 팔 위로 피가 흐른다. 손바닥의 글씨가 흐르는
피로 인해 지워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리고 점점 아득 해지는 정신 줄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손전등 불빛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듯 했다.

결국 옥이는 마을 청년들로 구성된 수색대에 의해 발견 되어졌고 부러진 팔에 기브스를 하고
찢어진 상처가 흉터로 남을 거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걱정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엄마와
아부지에게 꾸중을 들을까 걱정하던 옥이는 다행이 아무 말 없이 사주는 센빼이 과자를 맛나게
먹으며 아버지의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다.

" 당분간 돌아 댕기지 말라고 했응께 알아서 혀라"
엄마의 말에 옥이는 디데이가 생각났다.
"암만 그려도 나도 사무가 있는디 워째 그렇코롬 집에만 있는당가!"
"푼수 떨지 말고 집에 짱박혀 있으래이, 안 그카믄 확 내 쫓아 버릴텡께"
운전석에 앉은 아부지도 거들며
"그려 당분간은 조심 혀야뎨. 의사 선생님이 안혀냐! 상처 아물때꺼정은 돌아 댕기지 말라고!!!"
옥이는 디데이 얘기가 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흥 그라도 내는 갈테니께'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막상 기다리던 일요일에 온 몸에 열이 올라 옥이는 아버지를 따라 갈수가 없었다.
열에 들뜬 옥이가 창호지 문 밖으로 희미하게 들을건
다급하게 옥이 엄마를 부르는 재영 아제의 목소리 였다. 그리고 그 날 옥이 아부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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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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