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할 뿐

in #kr-pen6 years ago

그러니까... 예전에... 첫 소설을 연재할 때 있었던 얘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음... 제 첫 소설을 꼭 반드시 읽어보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안 읽는 게 좋을 거예요. 완전 대박 스포가 들어 있거든요.


제 첫 소설 <사랑은 냉면처럼>은 초고를 2달만에 완성했고 공모전마다 떨어지며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쓰는 과정에서 연재를 선택했고 제가 열심히 활동했던 페이스북에 연재를 했답니다. 이미 초고가 만들어져 있던 터라 살을 더 붙이고 빼고 하면서 연재했지요.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남자가 쓰는 로맨스소설. 게다가 남자가 화자인 1인칭 로맨스소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 소설을 좋아한 분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그들은 로맨스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펜들이 돼주셨고 펜 중 한 분이 전자책으로까지 내주셨죠. 음... 여자 독자도 많긴 했지만 남자독자가 더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화자가 남자여서... ^^

연재 내내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렸습니다. 어떤 분은 주인공 ‘경주’가 여사친인 ‘지은’이와 이루어졌음 좋겠다고 했고, 어떤 분은 ‘경주’의 이상형인 ‘수지’와 이어졌음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주’와 ‘수애’가 이어졌음 좋겠다는 댓글은 적었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경주와 수애가 이어졌음 좋겠다는 댓글은 대부분 여자들이었습니다. 로맨스 소설의 주 독자층인 여자. 저는 이미 초고를 써놨기에 열열한 펜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속으로 웃으며 ‘미안하지만... 경주 짝은 그쪽이 아닙니다.’라고만 양해를 구했지요. 연재 후반부로 갈수록 경주의 짝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 없었고 그다음부턴 다들 경주와 수애를 응원했습니다. 둘이 꼭 이뤄졌음 좋겠다고요.

앗, 제가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요. ㅎㅎㅎ

초고를 쓸 때의 경험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요즘 <사랑은 냉면처럼> 초고를 썼을 때의 그 경험을 하고 있거든요. 초고를 2개월만에 끝낸 원동력이었지요.

<사랑은 냉면처럼>은 구성만 10년 정도 짠 제 인생작이자 데뷔작입니다. 원래 처음 생각했던 스토리는,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여자가 망나니 같은 남자를 사랑하며 확 휘어잡고 사람으로 만든다는 컨셉이었습니다. 배경은 식당 주방이 아니라 홀이었고, 여자가 고참이고 남자가 신입이었지요. 이런 씨앗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10년 정도 다듬어졌고 처음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도 남자가 고참에 여자가 신입으로 쓰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는데요, 제가 남자라서 여자 1인칭을 도저히 못 쓰겠더라는... 그래서 바꾸게 됐더라는... ㅎㅎㅎ 소설을 쓰면서도 원래 계획했던 러브라인은 경주와 수지였습니다. 수애는 언니인 수지를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이었지요. 하지만 소설의 전체 분량 중 반 정도 썼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애와 수지는 제가 창조한 인물이고 어떤 사람도 참조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스토리도 완전하게 지어낸 이야긴데 마치 수애와 수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니야, 그건 내 얘기가 아니야. 진짜 내 얘기를 해줘.’ 안 그래도 소설이 반을 지나며 속도도 내지 못했고 써지지 않고 막혔던 차였습니다. 그런 제게 수애와 수지가 이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자기 얘길 써달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십 페이지를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쓴 소설은 제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 수지와 수애가 얘기하면 받아적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그냥 받아 적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애와 수지가 이야기를 들려줬고 저는 그대로 받아적었다면 믿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저처럼 글을 쓰는 전업작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인물부터 만들어 놓으면 그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두 번째 소설도 인물 만드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나 봅니다. 두번째 소설은 로맨스 판타지였습니다. 퇴고를 못해서 아직 책으로는 못 냈고 연재할 때도 너무 인기가 없어서 연재 도 중단을 했더랬죠. ㅎㅎㅎㅎㅎ 아마도 두번째 소설을 쓸 땐 첫 소설을 썼을 때의 그 느낌을 못 받아서 완성도가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억지로 지어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퇴고도 하기 싫은 걸지도요.

하지만 세 번재 소설 <또르륵 또르륵 통통>은 최근 첫 소설 썼을 때의 느낌을 얼마 전부터 받고 있습니다. 소휘와 미영이가 ‘내 얘기를 이렇게 써줘’라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요. 최근에 썼던 18회에선 반 정도 쓰고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막혀서 더 안 써지는 상황이었고 저는 커피를 흡입하며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미영이가 다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써줘.’라면서요. 18회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네 시간입니다. 천천히 읽어도 10여분이면 다 읽는 소설은 이렇게 네 시간이나 썼던 것이지요. 19회는 금방 썼습니다. 원래 소휘는 3부에서 재등장할 계획이었습니다. 등장 시기도 다 정해놨고 이수와 미영이 그리고 현정이의 이야기가 펼쳐질 계획이었죠. 하지만 소휘가 제가 말을 걸더군요. 지금 등장해야 한다고. 저는 놀랐습니다. 전 소휘의 부탁대로 소휘를 19회에 조기등장시켰고 이야기는 술술 풀렸습니다. 소설을 쓰는 저지만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소휘와 미영이가 되고 있습니다. ‘내 얘기를 소설로 써줘. 내 진짜 얘기를 소설로 써줘.’라며 제게 이야기를 해주고 저는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는 느낌입니다. 전체 틀은 대략 짜여져 있는 소설이지만, 이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네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써질지 아니면 첫소설 때처럼 완전하게 다르게 써질지. 19회는 소휘 덕분에 두 시간만에 썼습니다. 저는 키보드를 두드릴 뿐 소휘와 미영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나 할까요.

물론 이 소설은 제가 몇 번 언급했듯 사실 반 지어냄 반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실을 그대로 쓰기엔 (이미 아주아주 오래전에 연락은 끊겼지만)당사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 거고, 혹시라도 이 소설을 보고 원망할 것도 같아서 사실을 그대로 적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공된 인물이었던 수지와 수애가 나온 첫 소설과는 달랐죠. 하지만 <또르륵 또르륵 통통>은 제 손을 떠난 느낌입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소휘와 미영이 그리고 현정이가 풀어갈 것입니다. 저도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제가 처음 의도했던 결말이 나올지, 아니면 전혀 다른 결말이 나올지. 제 역할은 그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일 뿐이니까요.

Sort:  

소설을 꼭 일고 싶게 만드시네요~

ㅎㅎㅎㅎㅎ 이제 잼나게 읽기만 하시면 됩니다.

쓰다 보면 처음 기획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이 종종 있더라고요.

네. 소설 쓰면서 많이 느끼고 있어요. (2번째 소설은 기획한 대로 썼지요. ㅠㅠ 그래서 망한 ㅠㅠ)

무아지경에 빠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네요~

정신과 손가락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ㅎㅎㅎㅎㅎ

신접의 상태에 들어섰군요. 캐릭터와 하나가 되어야 캐릭터가 말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접신 잘하시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 곗고 써주세요 ㅎ
응원하겠습니다. ~

캐릭터와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
응원 고마워요 ^^

나하님 늘 화이팅 입니다. ^^

ㅎ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제 첫 소설을 꼭 반드시 읽어보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안 읽는 게 좋을 거예요.

스포당하고 싶지 않아 ㅋ 스킵했어요. 읽고 싶은데 나중에 소설 읽고 다시 올게요~

앗... 읽으시게요? ㅎㅎㅎㅎㅎ 스팀샵에서 1스달에 팔고는 있는데, 폰에 넣는 과정이 살짝 어려울 수도 있어요. 리디북스나 기타 전자책 서점에선 3,500원입니다. ^^ 이메일 알려주시면 PDF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 아님, 네이버블로그에서 제가 한시적으로 오픈해드릴 수도 있고... ^^

네 곧 날잡고 읽어야겠어요! 제가 원래 한 번에 달리는 걸 좋아합니다 ㅋㅋ 괜찮아요 스팀샵도 이참에 사용해보고 안되면 리디북스 아이디도 있으니 +_+! 친절한 안내 감사드립니당!!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2827.81
ETH 2583.62
USDT 1.00
SBD 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