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는 왜 감옥에 갔을까 #1

in #kr-pen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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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당시 불법이었던 동성애로 인해 감옥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사실만 들으면 은근한 의혹들이 생겨나곤 한다. 생전에 이미 엄청난 인정을 받아서 부와 명성이 대단했던 인물이, 그것도 이미 정점을 찍고 더 많은 창작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정확히 어떤 경위로 투옥까지 된 것일까.

동성애가 불법이라면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인물은 왜 함께 기소되지 않았는지, 죄목이 어떻게 법정에서 증명이 되었는지, 와일드의 작품을 좋아하던 상류 사회의 일원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는지 등의 의문들이 생길 만도 하다. 당사자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 확실한 발언을 하지 않은 이상, 예술가들에게 따르는 자유롭고 퇴폐적인 이미지 정도로 갑자기 법정에 끌려갈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죄목의 특성상 남들의 '증언'이 최대 증거였을 텐데, 그것만으로 유죄 판결이 내려질 만큼 암담한 시대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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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와 알프레드 더글러스(Alfred Douglas)

오스카 와일드가 체포되기 수 해 전부터, 그와 그의 연인 알프레드 더글러스의 관계는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와일드는 부인 콘스턴스와 자녀 둘과 함께 사는 집에도 자주 동성 친구들을 불러들였고, 밖에서도 자주 어울려 다녔다. 즉 동성애자로서의 이미지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특성상 그의 성향을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없었고, 소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소문이 그의 커리어를 방해하지도 않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시대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인이 사생활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거나 남이 폭로하기는 또 어려운 시대였던 것이다. 현대에는 흔한 '몰래 카메라'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 없이 '우정'으로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사진과 글귀들 밖에는 없는데, 그 누가 오스카 와일드처럼 유명하고 인기 많은 스타 극작가를 법정에 끌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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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퀸즈베리 후작(The 9th Marquess of Queensberry): 알프레드 더글러스의 아버지

와일드의 연인 알프레드 더글러스는 스코틀랜드의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이었다. 이 퀸즈베리라는 인물은 매우 사납고 괴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권투의 큰 후원자이기도 했다. (현대 권투의 기초인 퀸즈베리 룰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게다가 그는 무신론자로 굳이 알려질 만큼 자신의 관점을 설파하고, 결혼과 남녀 관계를 주제로 책도 낼 만큼 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었다. 현대에도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사람들이 다수일 텐데, 이 강한 성격의 스포츠광이 아들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채찍으로 아들을 때린 일화도 있다.)

아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퀸즈베리 후작은 결국 오스카 와일드에게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남겼는데, 그 내용인즉슨 동성애자인 척 하는(정확히는 '남색을 하는 척 하는') 오스카 와일드에게가 전부였다. 후작 자신도 법적인 책임은 지기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생활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서, 그는 사립 탐정들을 고용하여 증거 수집에 나서게 된다.

퀸즈베리가 찾아낸 것은 여러 하층민 계열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테일러라는 인물을 통해 와일드에게 소개되었고, 돈을 받고 '풍기 문란'에 해당하는 행위에 응했다. 그들 중 다수는 원래 그렇게 돈을 버는 자들이었다. 아마도 본인들의 미래를 생각해서인지, 성관계에 미달하는 행위들만을 증언했고, 따라서 와일드가 기소된 죄목은 풍기 문란에 해당했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는 세 번의 재판을 통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퀸즈베리를 피고로 한 첫 재판은 퀸즈베리의 주장이 사실인지, 그리고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 적시인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퀸즈베리의 변호사는 오스카 와일드의 대학 동창 에드워드 카슨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에 대해, "옛 친구답게 더욱 독하게 몰아세울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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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카슨(Edward Carson)

그렇다고 해서 카슨이 와일드에게 오랜 원한이나 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 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으나, 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임하게 된다.

여기에서 와일드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 원인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단순한 동성애자여서가 아니라, 젊은 남성들에 대한 '나쁜 영향력'이 인정이 되어 감옥까지 가게 된 것이다. 퀸즈베리의 변호사 카슨 뿐 아니라 결국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린 판사도 그런 견해를 내비친 것으로 보아, 정확히 어떤 부분이 오스카 와일드를 추락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사후 사면은 2017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법정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보다 훨씬 젊은, 이십 대 초반 정도의 청년들과의 연애를 선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중개인 테일러를 두고 돈을 주며 밀회를 했다. 게다가 그가 가장 사랑한 연인 알프레드 더글러스를 처음 만났을 때, 더글러스는 (당시 성년의 기준인) 21세가 채 안 되었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의 지식과 학식, 지성은 그의 발목을 더욱 옥죄는 것이 되어, 법적인 시각에서 판단 능력이 흐린 젊은 청년들을 나쁜 길로 끌어들인 인물이 된 것이다.

카슨이 이 청년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경고하자, 오스카 와일드 측은 퀸즈베리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을 취소한다. 주변인들에게 대체적으로 비호감이었던 퀸즈베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들을 살리려고 애쓰는 아버지'로서의 동정표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조사해서 찾아낸 것들을 그대로 법의 손에 넘겼고, 그렇게 해서 오스카 와일드는 체포 영장을 받게 된다. 두번째 재판이자 와일드를 피고로 하는 첫 재판은 배심원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서 무산되지만, 다시 열린 재판에서 결국 유죄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 더글러스가 귀족 계층의 일원이었다는 점도 와일드의 추락에 한층 더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 와일드의 부모는 부유한 전문직(부친의 경우 성공한 안과 의사)으로, 당시에 전문직이란 결국 '귀족에 미달하는 계층'이었으니까.

처음 오스카 와일드가 퀸즈베리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는 사실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법정에 서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어떻게 보면 본인이 제공한 것이다. 실제로 와일드의 친구들은 그냥 그 쪽지를 찢어버릴 것을 권했고,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퀸즈베리는 언뜻 보아도 얽히면 피곤한 상대였고, 그 싸움은 불리한 싸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였는데도, 오스카 와일드는 법정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의 오스카 와일드는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을 뿐 아니라, 날카로운 위트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성공한 데다가 특히 말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흔히 그러하듯, 수많은 추종자 뿐 아니라 많은 적들도 있었을 터이다. 한 번 추락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와일드가 본인의 말 솜씨를 과신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법정은 문학의 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화려한 말들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 경우도 여럿 보인다.

훗날 와일드가 감옥에서 알프레드 더글러스에게 쓴 편지, 심연으로부터(De Profundis)에는 그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젊은 연인에게 주로 돌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그가 퀸즈베리 후작을 무시하지 않고 굳이 고발한 것에는 더글러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으리라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와일드는 더글러스가 미워하는 후작을 크게 혼내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젊은 연인을 증인석에 세우는 것만큼은 허락치 않았다. 훗날 감옥에서, 이러한 모든 것은 더글러스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훗날 오스카 와일드의 손자는 와일드가 퀸즈베리 후작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더글러스가 와일드에게 미쳤던 엄청난 영향력을 축소해서 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당대 오스카 와일드의 주변인들은 퀸즈베리를 무시할 것, 그리고 첫 재판이 끝날 때 쯤에는 동성애가 죄목이 아닌 유럽 국가로 갈 것을 종용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처럼 피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 뛰어들어, 거의 자멸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는 점은 알프레드 더글러스의 엄청난 영향을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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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측면에서 오스카 와일드 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다른 부분이 작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삶에 대하여 달관한 한 인간이 내면의 울림을 거부하지 않고 생각대로 행동으로 옮기는것 아닌가 합니다. 그냥 떠오른 생각입니다.

오...오랜만입니다! 네, 법정 기록에서조차 알 수 있는 건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집착이었죠. 내면과 사회가 충돌하게 되는 지점에는 일단 비극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오랫만입니다. 맨날 아무말만 하다 보니 바빴습니다.

ㅎㅎ멋진 아무 말일 것 같은데요. 구경하러 곧 가겠습니다.

Hello jamieinthe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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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연못이
여기에 있구나

천사의 자동필기
예언을 피하노리

피하면 안됨?ㅠ

-그곳2-

악마의 거래소
절망의 빠징꼬

재물에 눈이먼
그의찬 눈동자

직감의 승부속
인생을 배팅해

결국은 올인나
영혼을 팔았네

끊어진 케이블
되돌릴 길없네

이거 자동필기임?ㄷㄷ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당했네...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아니네

어쨋든 대박 꿀잼이다.

ㅋㅋ 남이 '빵'에 가는 이야기가 꿀잼이라구?!

의식의 흐름대로...
오스카 와일드 - 도리언 그레이 - 젠틀맨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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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누군가 이 드립을 칠 것 같다 생각했답니다.

큭! 누군가의 예측에 들어맞는 행동을 하다니!! 이정도 였던가...
다음에는 반드시 허를 찔러 드립죠 -.-+

ㅋㅋㅋ기대하겠습니다!

이런 뒷얘기 재미있네요.

ㅎㅎ그쵸? 골격은 영어 위키에도 나와 있지만, 관련 책 두어 권과 옥중 서신 전문과 법정 기록을 보고 나서야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더라구요.

나도 보팅해줘 제이미 ㅋㅋ

ㅇㅋ ㄱㄷ

팔로잉 목록이 알파벳 순으로 나올 때는 자주 찾아가기 쉬웠는데 이제는............흔적 보고 찾아가니깐 참고하셍

ㅠ.ㅠ 오스카 와일드.... 나이팅게일과 장미 보고 울었는데 네이버에 작가검색해보고 약간 흠칫한 인물. ㅎㅎㅎ 재밌고 흥미로운 포스팅이네요.

아, 그 동화...아마 알프레드 더글러스를 만나기 전에 썼을 듯 하네요ㅠ

왜 약간 흠칫 놀라셨을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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