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가 바라본 JTBC 암호화폐 논쟁] 3) 교환의 매개, 정반대의 본성을 가진 두 화폐

in #kr-newbie6 years ago

안녕하십니까? @jin90g 입니다. [철학도가 바라본 JTBC 암호화폐 논쟁] 시리즈도 이제 마지막 3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다 딱딱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선 1편과 2편의 내용을 요약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따라 글이 많습니다.

A. The road so far; 지금까지의 길

이 글의 발단은 유시민 작가의 주장 "가치가 변하는 것은 화폐가 아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만약 어떤 것이 가치가 변한다면, 그것은 화폐가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유 작가가 "화폐!"라고 인정하는 법정화폐들(달러, 엔, 원, 등등) 또한 가치가 변해왔습니다. 유 작가님의 주장에 따르면 법정화폐는 화폐이면서 동시에 화폐가 아닙니다. 모순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법정화폐가 사실은 화폐가 아니었거나, 혹은 유 작가님의 첫번째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첫번째 반박은 "가치가 덜 변해서 안정적인 것이 화폐고, 가치가 자주 많이 변하는 것은 화폐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더 와 덜>이란 성질이 똑같은 물량을 다루는 기준이라는 것을 밝혔고, 더 많은 것과 덜 한 것이 학문에서 같은 법칙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야구공, 자동차, 지구, 해와 달이 뉴턴 물리학의 지배를 받듯이 말이죠. 따라서 더 변하는 것과 덜 변하는 것의 차이는 화폐와 화폐 아닌 것의 차이를 함축할 수 없습니다. 화폐이냐 아니냐는 성질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두 번째 반박은 "가치 척도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은 화폐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화폐가 척도 기능을 해야한다면 기능 성공 여부에 따라서 화폐와 화폐 아님을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척도 개념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특히 유 작가님이 지지하는 척도 개념은 직육면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기본 단위 1cc 정육면체를 확보하듯, 등가교환을 측정함에 있어 사물을 구성하는 불변하는 "1" 가치 알갱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1" 가치 알갱이가 사물 안에 몇개 있느냐에 따라 '이 상품이 얼마냐'가 나오는 것이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이런 척도는 영원불변하는 가치 알갱이 "1"을 요구하는데,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끝없이 변화합니다.

따라서 신의 도움 없이는 불변하는 "1"가치 알갱이를 구현할 수 없고, 그래서 인류는 부득이하게 국가=정부 라는 인공 신을 만들어 "1"가치 알갱이의 불변성을 유지하려 하니, 저는 이것이 법정화폐 시스템의 철학적 배경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연합)

반면 척도라는 것은 초기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1" 알갱이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습닌다. 알갱이 없이 사물을 측정할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물들의 성질과 형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상거래 교환에서 어떤 비례와 어떤 관계로 교환되느냐를 확인해 이를 비례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하학적이고 비례적이며 상대적인 척도 개념은 교환이 먼저 발생한 다음에야 척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문제는 어떤 척도가 어떤 의미에서 교환의 매개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플라톤 스러운 질문을 해야하죠. "교환은 무엇인가?" 그리고 "매개"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결론을 살짝 먼저 말씀드리자면, 유시민 작가의 화폐 개념과 그 철학적 배경은 물질을 기준으로 짜여있는 유물론적 성격이 강한 반면, 이와는 정반대인 것 처럼 보이는 화폐 개념과 철학적 배경이 있어 충분히 현실의 상거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은 제 논문 주제인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 일부를 정리해 교환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B. 교환이란 무엇인가 /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

사실 교환을 한마디로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면, 서로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 설명법을 차용해서 바스티아의 교환 개념을 좀 거칠게 정리해보겠습니다.

  • 형상 원인) 교환이란 자신의 노력으로 타인을 이득보게 만들고, 타인의 노력을 그것에 어울리는 비례 안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표현 형식은 협력과 분업이다.
  • 질료 원인) 교환은 노력의 전달 가능성에 의해 구성된다. 두 사람의 교환은 내가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이바지(서비스)와, 그 보답으로 타인이 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이바지(서비스)로 이루어진다.
  • 작용 원인) 교환은 인간의 무한정(indefini)한 욕구, 다채롭게 변화하는 욕구를 인간 혼자서의 능력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 목적 원인) 교환은 만족에서 노력의 비율을 축소하기 위해 발생한다.

그래도 어려워보이네요. 좀 거칠어서 왜곡될 수 있지만 보다 단순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정(indefini)합니다. 끝없이 변화하죠. 그런데 인간 혼자만의 능력은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욕구를 어떻게든 잘 가다듬어 약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능력을 개선해 욕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받게 되고, 심하면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협력과 분업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만족에서 노력이 들어가는 비율을 절약합니다. 그런데 협력과 분업이 일어나려면, 참여자들은 그들이 얻어낸 만족에 함께 참여한다는 예측을 가져야만 합니다.

따라서 협력과 분업 속에서 내가 남들을 이바지 한 만큼, 나 또한 남들에게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교환이 성립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력 절약이죠. 이렇게 교환이 확대되고 활성화되면 될 수록, 인간은 노력을 절약하게 되고,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교환 그 자체도 인간의 노력이기 때문에 , 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일정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으면 먼 나라와 상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이자 개념과 신용화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과거에 축적된 재산을 빌려 쓸 수 없고, 미래에 벌어들일 재산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교환 행위 자체도 노력이라서, 우리는 교환을 억지로 확장할 수 없습니다. 대신 교환에 소모되는 수고로움을 절약하는 또 다른 이바지(서비스) 제공자를 교환 체계 안에 들어오게 해서 교환을 자연스럽게 확장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 때 들어오는게 화폐 "교환의 노력을 절약해주는 이바지(서비스)" 다시 말해 교환 속의 다른 상품들 처럼, 교환 행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상품입니다.

C. 화폐, 교환의 수고를 덜어주는 이바지(서비스) 상품

이처럼 교환 개념을 이해해보자면, 화폐라는 것이 특별한 척도가 아니라 물물교환의 연쇄 속에 들어온 또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물물교환의 교환 비례 관계를 표시해주고 교환으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척도 상품인 것이죠. 그래서 화폐를 통한 간접 교환의 연쇄를 끝까지 추적하면 단순한 물물교환과 같아집니다.

  • "경화든 지폐든 유통되는 돈의 액수가 얼마가 되었든 간에, 빌리는 사람은 빌려주는 사람들 모두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쟁기, 집, 도구, 식량, 원료를 받을 수 없다. 농부가 50프랑을 빌려 쟁기를 산 경우, 농부가 빌린 것은 50 프랑이 아니라 쟁기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는 화폐가 가치의 척도라는 말과 교환의 매개라는 말은 "1"가치 알갱이를 찾는 기존의 법정화폐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화폐가 가치의 척도라는 말은 "화폐가 물물교환의 비례관계를 표현해준다"는 뜻입니다. 이때 화폐는 대체로 아직 현물로 지불되지 않은 지연/딜레이(delai)된 보답의 비율을 뜻합니다. 동시에 화폐가 교환의 매개라는 말은 "화폐가 교환에 소모되는 노력을 절약해 교환을 확대하는데 기여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화폐는 교환이 먼저 발생한 다음에 비로소 태어나게 됩니다.


(영화 파가니니의 한 장면)

척도를 서로다른 성질의 상품이 교환된 이후 발생하는 관계와 비례로 이해한다면, 유시민 작가의 주장과 철학적 배경에 정반대되는 유형의 화폐가 존재하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황금과 같은 전통적인 금속화폐들, 현물화폐들,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암호화폐 일부들이 여기에 해당하게 되죠. "1" 가치 알갱이가 아니라 교환 행위가 만들어내는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는 금과 같은 금속화폐 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법정화폐 주의자들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현실을 설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 화폐 서비스 체계에서 교환의 노고를 가장 잘 줄여줄 수 있고, 사기 안치는 화폐 서비스 체계가 뭇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주류 화폐가 됩니다. 성질이 다른 노동력과 성질이 다른 상품들을 매일매일 일상에서 교환하는 우리들의 현실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것을 금화나 은화로 교환 관계를 표시할 수 있고, 원화나 달러료 표시할 수 있고, 암호화폐 회계장부로도 표시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가치가 안정되어야 널리 쓰이는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과도 양립가능합니다. 그만큼 드넓은 장소와 시대에서 유효한 상품이라는 뜻잉니까요. // 다만 그것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정반대인 것입니다.)

D. 유시민 작가의 화폐 개념은 유물론적이다. (오직 물질 기준이다.)

유시민 작가의 암호화폐 비판이 함축하는 화폐 개념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유 작가님은 불변하는 "1" 가치 알갱이를 담보하는 불변의 "1" 법정화폐를 요청합니다. 그래야 가치 척도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죠. "1" 가치 알갱이가 상품 안에 몇개 들어가 있는지 헤아린 다음에 등가교환을 확인할 수 있고, 그래야 교환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공 신의 지위를 가진 국가=정부가 권력을써서 법정화폐 단위 "1"의 가치를 안정화시킵니다. 이런 체계에서 화폐 단위 "1" 가치 알갱이는 교환/상거래를 성립하고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중립영역, 중립토대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은 모든 상품의 성질이 다 똑같고, 단지 서로 가치 알갱이 개수를 몇개 더 갖고 있냐 혹은 덜 갖고 있냐로 구분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두 가지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는 시장의 상거래 없이고 상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가치 알갱이가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국가=정부라는 인공 신의 은총 없이는 상거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번째 결말은 서로마의 파멸로 그라운드 제로가 된 서유럽에서 피난민들이 장사하기 위해 모였다가 자치도시로 성장했다는 애덤스미스의 분석과는 좀 다른 주장이군요. 보다 재세한 사례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정부가 파멸해도 사람들은 남아서 시장을 형성한다... 이런 사례 말이죠.

E.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화폐 개념과 철학적 토대

이제 우리는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토대를 가진 화폐 개념을 봤습니다. 하나는 유시민 작가님의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불변하는 '1' 가치 알갱이" 입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이 토대는 인공 신 국가=정부의 힘으로 불변성이 유지됩니다. 교환에 앞서 존재하며 교환을 성립시킵니다.

반면 상거래/교환이 발생한 후에 비로소 태어나는 화폐가 있습니다.
이는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입니다.
이 상품(화폐)의 역할은 교환에 소모되는 노력을 절약해주는 것입니다.
교환 체계 안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화폐는 단지 교환의 비례 관계를 표시할 뿐
객관적이지도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가치는 관계다. 내가 저들에게 주는 도움(이바지/서비스)이 저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저들이 보답으로 지불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

전자는 암호화폐를 화폐가 아니라 사기라고 주장합니다. 환술이라는 것이죠.
후자는 암호화폐를 방금 태어나 따끈따끈하지만 그래서 낯선 화폐로 이해합니다. 아직 어색하고 그래서 불편하다는 것이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서비스 제공자가 노력하기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 현실의 화폐와 상거래 현상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각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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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철학도가 바라본 JTBC 암호화폐 논쟁] 3부작이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쓰는 것 보아하니 저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치경제학 관련 글은 천천히 올리려 합니다. 보다 고품질 글을 남기기 위해 논문도 다시 읽어봐야 하고, 아직 번역을 덜 한 부분도 짬 내서 해야하니까요.

대신 다음 시리즈는 제가 구상했던 세 종류 콘텐츠 중에 두번째인 고전 에세이 입니다.
이번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용해 짧은 글 3부작을 써볼 생각입니다. 포인트는
알고 봤더니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가 아니더라" 라는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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