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의 고전 에세이] 마키아벨리는 근대정치학의 아버지가 아니다? - [군주론] 편

in #kr-newbie6 years ago (edited)

안녕하십니까? @jin90g 입니다. "철학도가 보는 JTBC 암호화폐 논쟁" 이후로 시간이 지났군요. 피곤한 일도 많았고 해서 글이 늦어졌습니다. (더 슬픈 것은 오늘은 글만 있고 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콘텐츠는 고전 에세이입니다. 고전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거죠. 사실 교양은 넘쳐흐를거라 생각하지만, 큰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제가 이번 3부작을 통해 논하는 주제는 "마이카벨리는 근대정치학의 아버지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세가지 정도의 내용을 만질 것인데요.^^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른 내용이라 관심이 가신다면 지루한 스크롤바를 끝까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부득이하게 에세이에 들어갈때는 문제를 좀 바꾸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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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간의 평판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는 흔히 근대정치학의 아버지라 평가 받는다. 그가 정치 현상을 도덕이나 종교와 분리해서 생각했으며, 그런 측면에서 플라톤이나 키케로 같은 고전 정치철학자들의 전통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과 당위의 분리"라는 근대 학문의 스타일은 명시적으로는 흄이 주장한 것이지만, 몇몇 철학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저서 [군주론]에서 이러한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가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 십상입니다. ......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 , [군주론], 강정인 김경희 역, 까치, 109~110p 이하 [군주론])

이 구절을 보면 마치 마키아벨리가 플라톤이나 기존 전통정치철학과 선을 그은 것처럼 보입니다. 기존 고전 정치철학자들이 사변이나 이론으로 존재한적 없는 나라(이를테면 플라톤의 [국가]) 를 그리고, 거기에 맞춰 도덕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마키아벨리 자신은 사실과 당위를 구분하는 한편 이론이 아닌 사실에 집중해 군주의 업무를 제시한다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이에 근거하면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마치 '군주가 필요할 경우 악행이나 잔인한 행위, 혹은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 처럼 들립니다. 흔히들 그리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해석합니다. 군주가 피치자인 백성을 경우에 따라 매우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는 내용의 구절도 여러 방송이나 매체에서 인용되곤 합니다.

  •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군주론] 24p

결국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가진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은 '사실과 당위의 구분' 나아가 '도덕과 정치의 분리'라는 기준의 충족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정치철학자들이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로 분류되고, 그렇지 않은 학자들은 고전 혹은 중세 학자로 분류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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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보이는 도덕 VS 실제 도덕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와 다르게, 저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사실과 당위를, 특히 도덕과 정치를 완벽하게 분리해 별개의 것으로 다루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군주론]이란 책은 자기가 생각하는 참된 도덕을 찾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가령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떄, 일견 미덕(virtu)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vizio)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군주론] 111

마키아벨리의 말을 곱씹어보면 그가 문제삼는 것이 '일견 @@ 으로 보이는 것'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 고 말하고, 훌륭한 행실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런데 달리 말하면 성공하지 못한 미덕, 복을 불러오지 못한 사실 미덕이 아니라, 이름만 '미덕'으로 불릴 뿐 전혀 다른것, 심지어 악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건 부정의 원칙 )

  • "군주라면 애당초 인색하다는 평판에 신경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 그의 검약함으로 인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인민들에게 특별세를 부과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의 재정이 충분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궁극적으로 그가 더욱 관후하다고 생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관후함처럼 자기소모적인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그 미덕을 행하면 할 수록 그 만큼 그 미덕을 계속 실천할 수 없게됩니다." [군주론] 113

무엇이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것인가, 무엇이 실재로 미덕인가에 대한 질문은 플라톤이 대화편을 쓰면서 반복하는 방법이고,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매번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말하는 것 말고, 실재로 용기는 뭐냐는 거죠. 이는 전형적인 고대철학의 특징이고 연구방법론입니다.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인색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군주에게 있어 실재 '관후함'의 미덕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관후하다는 평판은 자기소모적이고, 끝내 백성을 약탈하게 만드는 이름뿐인 미덕이지 실제로는 악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 또한 군주에게 미덕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정치철학이 도덕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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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미덕(Virtu) 개념의 부활(르네상스)

여기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미덕' 개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군주의 미덕*역량(Virtu)을 매우 강조하며, 미덕 없는 자는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많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군주에게 여러가지 잔인무도한 행위를 요구하고, 타인을 속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서로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내려면 그의 미덕 (Virtu) 개념이 고대 그리스 문화의 '훌륭함'(Arete) 개념의 부활(르네상스) 이라는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훌륭함미덕은 영어사전의 뜻으로는 Excellence of any kind, 다시 말해 어떤 것의 가장 좋은 상태, 훌륭한 상태, 잘 기능하고 잘 행동하는 상태와 같은 풍부한 뜻을 가집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잘 하는 것을 훌륭함미덕 이라고 일차적으로 가리킵니다. 의사의 미덕은 사람을 잘 치료하는 것이고, 도공의 미덕은 도자기를 잘 만드는 것이고, 군인의 미덕은 적을 잘 무찌르고 동료를 잘 지키는 것이겠죠. 이제 또 세세하게 나누면 육군 보병(스파르타)의 미덕과 해군(아테네)의 미덕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가의 미덕은 플라톤 같은 경우에 는'미덕으로서의 정의 구현' 정도로 말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리스의 훌륭함, 다시 말해 미덕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악 개념 혹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익숙한 죄악이나 의무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성질이나 관점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여전히 고전철학의 기준으로 군주의 미덕을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군주가 군주의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가? 그것은 어떤 미덕인가? 이런 것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는 고대철학의 미덕 개념을 부활시켜(르네상스)시켜 책을 정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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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결론 / 마키아벨리는 근대의 아버지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모범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사실과 당위의 분리, 정치와 도덕의 분리 같은 근대적 유행을 따르는 역사학자 혹은 정치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연구 방법은 근대 철학보다는 고대 철학과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따라서 그는 근대의 아버지가 아니라 "르네상스 정치철학자의 모범"이라고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때 "르네상스의 모범"이란 한편으로 그가 고대 철학의 '미덕' 개념을 부활(르네상스)시켜 제대로 사용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 그가 과거 역사에 파묻히지 않고, 부활시킨 개념을 이용해 자신이 처한 현실 시대의 문제를 분석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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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다음편 예고

마키아벨리가 고전 철학의 개념을 부활시켜 정치학을 정리하고 [군주론]을 썼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는 더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번 3부작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로 애용했던 개념, "형상"과 "질료"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을 주제로 글을 이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 연재 중에 현실예시에 저의 마키아벨리 해석을 적용해보는 기회,,, 혹은 그동안 이해하기 어렵고 난잡했던 [군주론]의 예시사례들이 제 해석에서 어떻게 하나의 원리로 정리되는지 시범을 보일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공간이 모자라면 특별 4부를 준비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여러분, jin의 고전 에세이 ... 마키아벨리 [군주론] 2편 ..... "군주, 형상을 부여하는자" 편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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