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 이육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 [MOVIE]

in #kr-movie3 years ago (edited)

   번 삼일절에 이육사의 삶을 주제로 한 특선영화, 『절정』을 재방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재작년, 뒤늦게 본 『절정』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과 한국인에 대해 다시 보게 해준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정이 있어서 영화를 다시 보지는 못해 아쉽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겸, 예전의 글을 각색하여 다시 포스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티미안 여러분들은 『절정』을 보셨나요?

   재작년 말에 미국에 잠시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약 2~3주간의 짧은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대 때 경험했던 미국보다는 성인이 되어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국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주로 관심이 갔던 부분은 사회 구조, 사람들 간의 소통 방식, 관습, 여가 생활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관찰하면서 다다른 결론은 미국 민주주의 기저에 작용하는 합리주의와 정의라는 원리였습니다. 길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새로운 땅을 차지하여 정착하려면 서로 간에 납득할만한 원칙 수립이 필수적이었을 것이고,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유입된 다양한 인종과 문화, 흑인 노예의 역사에서 비롯된 갈등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의'는 미국 사회에서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였을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또, 잠시 여행했던 기억을 살려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려보면, 일본은 철저히 '실리주의'가 작용하는 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지 않아도, 여전히 행해지는 일본의 만행이나 전쟁국가로의 복귀결정과 같은 뉴스를 보면 적어도 '정의'라는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는 아닐 것 같습니다.​ 비슷한 과거를 지닌 독일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과거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수많은 철학자들을 배출한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저한 이성', '비판의식'과 같은 단어가 떠오릅니다. 독일을 여행한 적도, 독일 사람과 대화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전혀 사실과 다른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음에도, 절대 그 모습과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상 헷갈리는 개념들인)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틀은 인간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 만들어진, 아직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선택된 시스템일 뿐이며, 결국 국가나 국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역사와 문화 혹은 민족성, 신화와 같은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피곤하고 암울했던 역사를 이겨내며 선진국의 민주주의라는 틀만을 좇다가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할 고유의 가치를 잃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절정』은 이육사의 삶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할까?'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실마리를 모두 제시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 이육사는 꾸미기를 좋아했던 쾌활했던 청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어렸을 때는 개구지고 총명하여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던 장면, 달빛 아래 마루에서 형제들과 모여앉아 참외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들이 예쁘게 그려졌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의 모습,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상상했었던 궁핍하고 핍박받았던 독립투사가 아닌,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밝게 성장한 이육사의 원래의 삶을 알게 되니, 오히려 이 모든 개인적인 평화를 버리고 독립투사의 삶을 택한 이육사의 고뇌와 고통이 더 무겁게 다가왔던 것도 같습니다. ​​​ 그리고 동료 윤세주와의 대화에서 이육사가 상상한 미래의 조선에 대한 묘사는, 현재 보고 접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현대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교토 거리 사람들은 위대한 문인의 작품을 읽고 거장의 음악을 듣고,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더군. 그들 말대로라면 일본은 문명을 이룬 셈이지. 헌데, 그들이 깔고 앉은 방석 아래 조선과 만주 백성들의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지 않나. 핏물 위에서 과연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 거기에 문명은 없네. 그 곳에선 가장 배부르게 먹은 자가 가장 야만스러운 자일세."​

   "새로 태어날 조선은 절대 일본이며 아메리카 따위를 닮아서는 아니되네. 새로 태어날 조선의 백성들은 내 입에 들어오는 쌀을 기름지게 먹겠다하여 다른 이의 고혈이 빨리는 것을 못 본 척해서도 아니되네."

   (본 글은 2016년 7월 14일 네이버 블로그에 직접 게재했던 글을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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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번호가 264여서 '이원록' 실제이름보다도 우리에게 이육사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시인. 학창시절에 많이 접했었는데 영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더 늦기전에 꼭 봐야겠어요~:)!

    신화의 김동완이 배역을 맡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해서 놀랐습니다^^ 강추합니다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도티님!

    김동완이 이런 영화를 찍었는지 몰랐습니다. ^^
    이육사에 대한 영화, 간단한 줄거리 이야기해주시니
    꼭 보고 싶어지네요. 챙겨보겠습니다~

    저도 처음에 김동완이 주연했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놀랐었네요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mimitravel님^^

    깔끔하고 정갈한 화면 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신화 김동완이 연기를 좀 하네 싶더라구요.. 요즘 국경일이라고 특별 프로도 별로 없는데..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맞아요~ 배우들도 화면도 훈훈했던 것 같아요ㅎㅎ 다시 한 번 봤으면 싶었는데 아쉽네요^^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멀린님!

    첫 방영할 때도 봤었는데
    우연히 어제 채널을 돌리다 재방영도 보게됐어요-
    노토스님의 글로 만나니 또 반갑네요!

    우와~ 신농님이 시청하셨었군요! 저도 반갑습니다^^ㅋ 이제 또 주말연휴가 시작되었네요! 즐거운 금요일 밤 보내세요~^^

    이 드라마 명품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저도 꼭 보고 싶어요.
    김동완군이 연기도 아주 잘했고, 드라마 내용도 좋다던데..

    정말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발견이었네요ㅎㅎ 오늘도 방문 감사드립니다~!

    2부작 드라마라니 생소하네요.
    모르는 작품들을 많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_^

    또 한 건 했습니다ㅎㅎ 2부작인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라구요^^
    좋은 밤 보내세요, 울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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