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Hunger)”

in #kr-movie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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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Hunger)”

오늘 밤에는 이미 오래전 타계한 유명 배우 스티브 맥퀸이 아닌 흑인 스티브 맥퀸이 감독하고,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한 2008년 작 <헝거(Hunger)>나 보고 자야겠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2013)>를 연출한 사람이다. 이외에 그가 <셰임(Shame, 2011)>과 <헝거>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헝거>는 맥퀸 감독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시킨 그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헝거>는 영국정부에 의해 체포, 수감된 북아일랜드 분리운동 무장투쟁조직인 아일랜드공화군(IRA) 지도자 바비 샌즈의 옥중 단식투쟁을 다룬 영화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굳이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영화였다. 바비 샌즈를 시작으로 수감 중이던 IRA조직원들이 ‘범죄자’가 아니라 ‘정치범’으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한 끝에 바비 샌즈를 비롯한 모두 10명의 IRA 조직원이 끝내 사망한 비극적 사건이다. 사실 나는 단식투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거대권력과 같은 강자와의 싸움은 살기위한 싸움이어야지 죽음을 담보로 한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저항과 투쟁은 ‘몸의 자유’를 최종 목적으로 한다. 즉 사회적 저항의 실질적 주체는 몸이라는 것이다. 이 몸을 통해서 자유의 의지는 관철되며, 자유란 헤겔이 말했듯이 ‘타인 안에서 자기와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을 나의 일부로 간주함으로써 자유는 ‘너’와 ‘나’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인 공동체와 그 연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공동체가 최고의 자유”라는 헤겔의 말은 여기서 나왔다. 개인의 어쩌면 소극적이지만 더욱 적극적일수도 있는 단식투쟁이 갖는 근본적인 이중성속에서 지금의 김영오씨의 단식은 ‘공동체의 자유’를 위한 힘겨운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김영오씨가 우리 사회공동체와 그 자유를 위해 죽음에 이르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공동체는 이미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66일 동안 단식투쟁 끝에 사망한 바비 샌즈는 어떠했을까. 그의 죽음은 거대권력체제, IRA를 정치조직이 아니라 범죄단체로만 취급했던 당시 마거릿 대처 정권의 강력한 정책에 연유한다. 즉 바비 샌즈와 IRA조직원들은 교도소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거대권력에 의해 의도되고 계획된 ‘살인’이었던 것이다. 이 참혹한 사건의 과정에서 바비 샌즈의 몸은 어떻게 저항을 내재화하고, 강렬한 자유에 대한 의지를 분출해가는 모습을 스티브 맥퀸 감독은 앵글속으로 어떻게 잡아내는가가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 하겠다. 공교롭게도 동명이인의 백인 배우 스티브 맥퀸은 <대탈주(1963)>라는 걸작에서 또 다른 몸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실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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