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영화제’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다...

in #kr-movie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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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영화제’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이라는 대목에서부터 고개가 갸우뚱했다. 주최·주관이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이 위원장으로 있는 ‘임정기념관건립위원회’다.

프로그램은 △‘저항의 세계사:투쟁을 기억하라’ △‘저항의 기록:다큐멘터리’ △‘저항의 세계사:전쟁과 투쟁’ △‘한국영화: 식민지 조선을 담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저항의 세계사: 투쟁을 기억하라’는 섹션에는 ‘알제리전투’ ‘백장미’ ‘체 게바라: 뉴 맨’ ‘진링의 13소녀’ 등이, ‘저항의 기록: 다큐멘터리’ 섹션에는 ‘쿠바, 저항과 연대는 계속 된다’ ‘야스쿠니, 지령, 천황’ ‘치열한 현재’ ‘개미군단’ 등이, ‘저항의 세계사: 전쟁과 투쟁’ 섹션에는 ‘폭스트롯’ ‘언더 파이어’ ‘노비’ ‘스탈린의 죽음’ ‘일본춘가고’ 등이 그리고 마지막 섹션인 ‘한국영화: 식민지 조선을 담다’에는 ‘반도의 봄’ ‘현해탄은 알고 있다’ ‘자유만세’ ‘유관순’ 등이다.

나는 이들 작품 중에 <알제리전투(1966)>, <백장미(1982)>, <체 게바라: 뉴 맨>, <진링의 13소녀>, <언더파이어>, <스탈린의 죽음>, <노비> 등은 이미 봤다.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노비(2014)>를 제외하고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나 한국영화들은 구하기 어려워 보질 못했다. 그러나 <반도의 봄>은 최근에 발굴된 ‘이병일’ 감독의 1941년도 작품으로 네이버TV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춘향전을 영화로 기획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문제는 국가의 예산 등의 지원을 받는 관변단체가 ‘저항’의 화두를 내걸 수가 있느냐다. 국가는 저항을 촉발하는 사회모순의 담지자로 저항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지 저항을 기치로 내세우는 건 기만의 언어도단이다.

선정된 영화들도 그렇다. <알제리 전투>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저항’이라는 주제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지만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장예모’의 <진링의 13소녀(2011)>는 진링, 즉 ‘난징’의 옛 이름인 한자로 ‘금릉(金陵)’으로 ‘난징대학살’을 다룬 영화다. ‘진링의 13소녀’란 가톨릭 학교의 순진한 여학생들을 대신하여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끌려가 13명의 화류계 여성들이다.

그러나 장예모는 자국 역사에서의 참극을 장예모의 특유의 색감으로 덧칠하면서 신파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난징대학살을 정말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은 중국 6세대 감독 ‘루추안’의 <난징! 난징!(2009)>임을 영화 전문가들인 영화제 조직자들도 모를 리가도 없을 터인데 중간에 나오는 ‘위안부’가 예민하고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나. 물론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위안부로 일본 황군 병사와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존재다.

특히 <언더파이어>는 만약 동명의 ‘유역비’ 주연으로 제2차 대전에서 중국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와의 로맨스를 다룬 2017년 작품이라면 영화제 근본적 취지를 의심할 만한 코미디일 것이다. 아마도 1983년 ‘닉 놀테’와 ‘진 핵크만’이 주연했던 1979년 ‘니카라과 내전’에서의 종군기자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일 것이다. 니카라과 내전은 3대 60년에 걸친 ‘소모사’ 독재정권과 이에 저항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의 일전이었다. 결국 산디니스타 게릴라들은 소모사 축출에 성공했고, 니카라과는 쿠바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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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이 영화의 핵심은 산디니스타의 저항이 아니라 미국 종군기자들의 활약상이다. 미 행정부나 CIA, 군부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미국과 미국자본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독재정권들을 지원하지만 객관적이고 양심적인 ‘기자’와 같은 존재들로 인해 균형이 맞추어지고 미국적 정의는 실현됐다는 전형적인 미국 이데올로기의 전개방식이다. <언더파이어>도 취재도중 정부군에 의해 처형된 진 핵크만의 처형 장면을 사진기자 닉 놀테가 폭로함으로서 소모사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뉘앙스를 잔뜩 풍긴다. 결국의 저항과 해방의 주역 산디니스타와 니카라과 민중은 그저 배경에 불과한 존재들로 전락한다.

이 영화제 영화들은 전반적으로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저항을 영화들이 상당수로 저항을 협애하게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저항’의 발생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사회 내부의 계급모순에 따른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이며, 노동자, 여성, 인종, 성소수자 등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몇 영화들로 구색을 맞추려고 했지만 결국 기승전 그리고 ‘민족주의’이고, 정확히는 ‘민족주의 영화제’임에도 거창하고 뭉뚱그려 ‘레지스탕스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감히 달았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이 계급적 관점과 지향과 결합하지 못했을 때 어떤 파행과 굴절을 겪었는지 역사는 오히려 엄숙히 증언한다. <알제리 전투>에서의 대 프랑스 식민권력과의 투쟁의 주역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부르조아와 프랑스에서 배운 엘리트 계층, 군부가 특권화하여 옛 식민지 모국의 이익을 대변하며 오히려 자국 민중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권력집단으로 변질됐다.

요즘 각종 ‘국수주의자’들 단체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주최·주관자인 이종찬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우리나라를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적으로도 독립운동을 했다. 음악 영화 문학 이런 것도 독립운동의 중요한 아이템인데 그간 우리가 소홀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레지스탕스영화제’의 의미가 매우 뜻깊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어색하고 궁색하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이종찬과 사촌인 이종걸이 일제시기 대표적 ‘아나키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조부인 ‘이회영 선생’의 유지를 제대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독립운동이 세계평화에 기여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레지스탕스’의 개념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2차 세계대전에 나치독일에 점령된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실제 참여했던 ‘사르트르’의 “인간의 자유를 향한 ‘전적인 고독’ 속에서의 ‘전적인 책임’ ”이라는 말이 레지스탕스의 정의에 가장 적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절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전적인 고독’의 ‘전적인 책임’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레지스탕스 영화제’ 기획됐는지는 의문이다. 포스터조차 여실히 한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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