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구(鐵西區)
‘철서구(鐵西區)’
- 이 정도는 봤어야 영화 좀 봤다는 소리 들을 만한 영화
중국 왕빙 감독의 <철서구(鐵西區, 2003)>를 접하게 되면 우선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아무리 다큐멘터리 영화라지만 초입의 간단한 <철서구>의 배경설명 자막 외에는 그 흔한 내레이션 설명도 없다. 화질은 극히 떨어지고 특별하게 계획된 구성도 없어 보인다. 카메라는 그저 출연자들이 가는 대로,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갈 뿐이다. 러닝 타임은 또 어떤가. 자그마치 무려 9시간 45분에 달하는 가히 인내력의 테스트다. 그럼에도 ‘위대한 작품’이라는 허망한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일까.
오늘날 영화감독은 부지기수지만 ‘작가’의 지위를 감히 부여받을 수 있는 감독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중국의 ‘왕빙’ 감독은 그 어떤 이견도 없이 진정한 ‘영화작가’로 불릴 만한 감독이다. <철서구>는 그의 대표작이자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만주를 중국에서는 ‘동북지방’이라고 부른다. 동북지방 최대의 도시가 인구 500만이 넘는 선양(瀋陽)이다. 선양은 한때 ‘중국의 심장’이라 불리며 중국 최대의 중화학 공업지역이 들어선 곳이다. 이 선양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가 바로 <철서구>다. <철서구>에 철강, 제철, 제련 같은 대단위 중화학공업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30년대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이후부터였다. 선양 주변에는 철광, 석탄, 구리 등과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들이 매장되어 있다. 이 자원들에다 만주철도와 각 지선이 관통되는 철도의 분기점으로서 사통팔달의 교통이 결합하여 일제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병참기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선양공업지역’, 특히 <철서구>는 ‘선양제련소’를 중심으로 중국에서는 가장 많은 생산량과 가장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자본주의가 몰려왔다. 낡고 녹슨 선양의 공장들은 효율성과 경영 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경쟁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명색이 국영기업이지만 평생 일한 노동자들의 삶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박탈해버렸다. 노동자들이 평생 모아놓은 연금들은 한순간에 푼돈으로 사라졌다. 새로운 보완조치나 개선이 없는 낡아빠진 시설과 설비다보니 당연히 생산성은 떨어졌다. 그것을 빙자하여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그나마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초라한 임금조차 감지덕지해야하는 평생 배운 게 노동뿐인 노동자들은 남아야했다. 그러나 그 저임금조차 체불되는 건 예사고, 못 이겨 그들이 직장을 떠나버리면 그 자리는 더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들이 채워나갔다.
결국 <철서구>의 수많은 공장들은 합리화와 민영화의 열풍 속에서 2000년대 들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 생존의 위기에 빠진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는 당연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탈을 쓴 억압적 체제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그저 체념하고 각기 생존을 위해서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 갈 뿐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녹이 슬고 낡아빠져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냄새들이 솔솔 풍기던 공간도 화려했던 기억조차 남아있지는 쓸쓸하고 흉물스러운 폐허로 변해간다.
<철서구>는 1부–‘녹(綠)’, 2부-‘폐허’, 3부-‘철로’로 구성된 3부작이다. 9시간 4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의미하듯 이 영화는 지루함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의 일상이라는 게 어차피 지루할 수밖에 없음을 웅변해준다. 궁색한 일상 속의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소소한 잡담들로 모두 채워질 뿐이다. 이 영화의 독해방식은 결국 지루함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삶이나 ‘그들’의 삶이나 시공간이 다를 뿐 어차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익숙해짐으로서 ‘나’와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던 시공간을 초월한 일체가 되는 아픔을 체험하고 공유하게 된다.
강자독식,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민영화와 이윤지상주의에 축출당한 ‘노동’과 그로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이 아웅다웅 살았던 공장들과 노동자지구의 주택가 ‘공간’들, 그리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철로’는 축출당한 사람들과 무너진 삶의 공간들의 무수한 ‘상실’들을 힘겹고 아련하게 연결한다. 왕빙은 이 모든 상실과 박탈의 기록 서사를 6mm 캠코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고스라니 담아냈다. 그리고 순전히 혼자서 기획, 연출, 촬영, 편집 등을 다해냈다. 그는 영화가 얼마든지 '1인'의 노력의 결과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를 이제는 거의 사라진 ‘영화작가’라고 칭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국내의 어떤 영화평론가는 그를 21세기의 최고 작가반열에 올려놓았고,
감독이 되어 출연자 왕빙이 작품 활동하는 모습을 역으로 필름에 담기도 했다..
왕빙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의 시간마저 해방시켜버렸다. 3년 가까이나 선양의 <철서구>에 머물면서 점차 폐허로 변해가는 것들과 시간에 마모되어 사라져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그려냈다. 사회주의 공동체 시대에서 자본주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시대로의 변질 속에서 ‘쓸모없는 것들’의 시간을 응시한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것’들의 존재를 환기시키며 '왜 사라지고 잊혀져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묵중한 물음을 던진다. 거의 열흘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봐야했던 영화였다. 어마어마한 상영시간의 인내의 압박을 익숙함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어떤 영화보다 진하고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는 영화적 체험을 선사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