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

in #kr-movie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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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칸 영화제는 영화 역사상 신인감독의 가장 충격적이며 아름다운 데뷔무대 중 하나로 기록된 영화제였다. 신인감독상인 ‘황금카메라상’에 1935년생의 당시 무려 55세였던 구소련의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Zamri Umri Voskresni, Don't Move, Die And Rise Again!, 1990)>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칸에 출품되기까지 과정도 드라마틱했지만, 카네프스키 자신의 삶 역시 우여곡절로 점철되며 파란만장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후속작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눈 오는 날의 왈츠(1992)>로 연속되는 한 소년의 잿빛 성장드라마다. 두 작품은 꼭 같이 봐야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막 종전이 된 1940년대 후반, 여전히 스탈린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던 시대에 유배와 배제의 땅 시베리아 탄광촌에서의 삶은 치열하기가 그지없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발레르카’(파벨 나자로프)는 세상과 사물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전장과 같은 사람들과 환경은 그를 사고뭉치로 치부하며 배척하기만 한다. 오히려 발레르카는 말이 통하지 않는 당시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고 있던 일본군 포로들에 교감하고 위안 받는다. 또한 그에게는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수호천사와 같이 챙겨주는 현명하고 야무진 소녀 ‘다리아’(디나라 드루카로바)가 곁에 늘 있었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의 ‘소냐’와 같은 구원자적 존재다. 폐쇄적인 시대상황 속에서 인간 회복에의 갈망을 호소하며 발레르카와 다리아의 설익은 풋풋한 사랑이라는 휴머니즘을 속삭인다. 그러나 발레르카와 다리아를 둘러싼 음울한 세계의 힘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갱단의 꼬임에 빠져 하수인이 돼버린 발레르카를 다리아가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끝까지 추적해온 갱단들에 의해 발레르카는 크게 다쳐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지만 다리아는 그만 희생되고 만 것이다.

실제로 참혹했던 카네프스키 감독 자신의 성장시절을 담은 자전적 영화다. 대부분의 출연진이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비전문배우들로 예산도 줄이고 사실성도 더욱 확보했다. 제목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당시 시베리아 아이들의 놀이라고 한다. 전편인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소녀 ‘다리아’는 후편인 <눈오는 날의 왈츠>에서는 소녀의 여동생 ‘발카’로 마치 예고된 것처럼 부활하여 1인 2역을 맡았다.

이후 3부작 격으로 이 두 주인공을 출연시켜 소련연방 해체 후의 사회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 20세기의 아이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영화를 접할 길이 없다. 여자 주인공 역의 디나라 드루카로바는 성장한 뒤에도 배우의 길을 계속 걸었지만, 남자 주인공이었던 파벨 나자로프는 감옥을 들락거리는 범죄자의 수렁에 빠졌다 한다.
다리아의 시신이 운구 되고 소녀의 어머니가 완전히 벌거벗고 횡설수설하며 미쳐 날뛰는 장면은 사실성에서 갑자기 상징으로 돌변한다. 사실 정황상 어머니로 생각될 뿐 소녀의 어머니인지도 확실치 않다. 화면이 바뀌어 동네 꼬마들을 비출 때 감독의 말이 들린다. 이제 현실세계로 돌아왔으니 영화임을 깨달으라는 마치 환기의 손짓과 같다. 여러 번 이 영화를 봤지만 이 장면의 해석을 어찌해야할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상징이라는 게 애초 상징의 대상이 되는 원관념과 그 상징에 의해 해석되는 보조관념의 관계가 ‘一 대 多’의 구조이기에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징에 대한 해석은 늘 분분하다. 보는 이가 알아서 해석할 뿐이다.

이런 기법은 간혹 사용되는 걸 볼 수 있다. ‘압바스 케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나 ‘자파르 파나히’의 <거울>에서도 그랬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일순 모호해져 오히려 사실성을 강화하는 효과일 수 있다. 우리 일상에서 한참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심하듯 ‘별 신경 쓸 것 없어’라든지 ‘이거 농담이었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농담이라는 말에 혼란에 빠지고 무슨 말이었는지 다시 되새김질하면서 진지했던 이야기가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전문 영화평론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최고의 성장영화이자 리얼리즘 영화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메마르고 탁한 시선에서 쉽지가 않은 감정이입이 이루어졌다. 다만 아쉬운 건 카네프스키 감독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건 확실하지만, 신상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이후 전혀 작품 활동기록이 없다는 점일 게다. 그는 사실상 평생 두 작품만 남겼다. 그의 인생사의 진하고 곤했던 액기스 전부가 담긴 것이다.
딸을 잃어 미친 어머니, 또는 어떤 여인이 단지 완전히 발가벗었다는 이유만으로 설마 페북에서 삭제하고 계정정지를 내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페북은 도덕군자인양 행세한다. 예술은 그저 예술로 이해해야한다.
미친 여인의 말대로 ‘영화는 이제 시작되는 것’일 뿐이다.


다운로드되는 사이트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정액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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