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 협상, 더 넌 - 아쉬운 후기

in #kr-life6 years ago

영화 <안시성> <협상> <더 넌>을 본 주관 가득한 간략한 후기.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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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승리의 역사를 재현한 영화인데 끝날 때까지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내가 좀 무감한 편이
긴 해도 당황스럽다. 난 왜 <안시성>을 보고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 건가. <안시성>은 분명 거
대한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은 영화다. 보는 내내 제작진의 노고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
뿐이다. 몇 줄에 불과한 역사 기록을 영화적 상상력을 불어내어 거대한 스크린에 옮겨놓았는데 비주
얼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알맹이를 놓친 기분이다. 20만 당나라 대군에 맞선 성주 양만춘의 매
력은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의 역학 관계도 얕게 건드리기만 할 뿐 쉽게 지나간다. 135분
의 러닝타임은 당시의 복잡한 정세와 여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서사와 전
투 사이에서 혼돈만 거듭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우선 서사를 말해보자.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일수록 개개인의 매력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한데 해도
중심축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안시성>은 뻔하고 전형적인 전개를 거듭하느라 중심 캐릭터, 양만
춘의 고뇌와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영화 속 양만춘이 지고 있는 책임과 무게에 비해 해결방
안이 손쉽게 제시된다. 그가 전술에 능하고 덕망이 높은 것은 알겠는데, 승리의 쾌감을 전하려면 보
다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 주변 캐릭터 역시 좀처럼 상투적인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적
으로 풍과 활보, 백하와 파소를 말해본다. 풍과 활보는 고구려 전사의 매력보다는 사극 감초 캐릭터
의 전형에 머물고, 백하와 파소 역시 안시성 전투에서 역할보다는 곁가지 로맨스로 쉽게 소비된다. 특히 백하란 캐릭터는 신녀 캐릭터보다 무의미하게 소비된 거 같아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그럼 가
장 많은 공을 들인 전투신은 볼만했을까. 이 역시 난 잘 모르겠다. 세 차례 공성전 중 아이디어가 돋
보인 두 번째 전투가 인상적이긴 해도 박진감과 속도감이 그리 썩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를 같이
본 멤버가 넷플릭스 고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 표현이 딱 맞다. 그 이상의 압도
적인 쾌감은 글쎄, 전반적으로 제작비를 헛되지 않게 안전하게 영화를 완성했다는 인상만 강하게 남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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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장르적 매력보다 배우의 매력으로 끌고 가는 영화다.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협상>은
무난한 킬링타임 영화다. 다만 킬링타임의 포인트가 영화가 내세운 홍보 문구와는 조금 다르다. 처
음으로 악역을 맡은 현빈과 냉철한 협상가를 맡은 손예진의 변신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거다. 날
카롭고 치밀한 전략이 오가는 협상극을 기대했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다. 인
질범과 협상가의 대결 구도는 굉장히 한국적인 상황에 뿌리를 내리고 긴장보다는 짜증을 유발하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짜증은 극사실주의(?)로 접근한 현실 묘사이기에 영화적 재미를 해칠 정도
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협상>이 나아갈 방향이 장르적 쾌감보다는 한국 영화에서 유행처럼 번지
는 사회 비판의 목적에 가까울 수 있다는 예감이 든다. 예를 들면,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처럼 부
도덕한 권력층을 전복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어쨌든 <협상>은 처음부터 순수 장르물의 재미가 반감된다. 대신 그 자리에 평소보다 머리를 조금
더 기르고 거친 남자로 보이려고 말을 툭툭 내뱉는 현빈이 있고, 협상가의 전문성은 딱히 보이지 않
지만 제복을 입어도 사복을 입어도 예쁘기만 한 손예진이 있다. 영화는 뭘 해도 예쁘고 멋있는 두 배
우를 서로 모니터로 지켜보게 한 뒤, 다행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의 장점은 한번 탄
력이 붙은 전개에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거다. 감정이 점점 과열되는 협상가의 캐릭터는 살짝 아
쉽지만, 시종일관 냉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인질범은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매력을 발휘하며 극
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나름의 흥미를 안겼던 캐릭터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며 무너진다. JK 필름 특유의 휴머니즘이 스멀스멀 나타나면서 앞서 언급한 <베테랑>이
나 <내부자들>이 걸어온 길을 답습한다.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현빈의 노고가 무색할 지경이다. 적
어도 내겐 그랬다. 영화 곳곳 알맞게 뿌려진 MSG 덕분에 지루할 새도 없이 흘러가지만, 막판 전개가
배우들의 매력으로 달려온 영화의 재미를 갉아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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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온>을 보면서 작위적인 연출 때문에 피식피식 웃은 기억이 난다. <더 넌>이 모처럼 그때
의 추억(?)을 되살렸다. 겁을 주려고 여러모로 애는 썼지만, 보는 내내 심장이 평온했던 기억이다. 하

다못해 무의미한 깜짝 놀람도 느끼지 못했다. 첫 번째는 수녀가 자살한 수녀원이란 공간에 어떤 으
스스한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데도 굉장히 평면적으로 그려진
다. 적당히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으레 당연한 깜짝 효과만 있을 뿐, 호기심을 들게 하는 미스터리한
공간감을 전혀 구축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 예상 가능한 놀램도 비주얼적인 충격도 없다. 감독님 공
포영화 좀 많이 보셔야겠어요.... 두 번째 [컨저링 2]에서 보여준 무서운 포스를 상실한 발락이다. 그
림 속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던 그때 그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등장을 반복하는데, 나중
에는 특유의 BGM이 나올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역시 스토리의 부재다. 특히 아이린 수녀
와 파트너를 이루는 버크 신부에게 너무 뻔한 트라우마를 심은 데다 활용 방식도 고루해서 어떤 긴
장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뻔한 클리셰로 작용하는 트라우마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더 넌>에서 빛난 건 아이린 수녀를 연기한 테이사 파마가다. 안타깝게도 무섭지 않은 공포
영화였으나 여림과 강함이 동시에 전해지는 테이사 파미가는 고고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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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협상, 더 넌 - 아쉬운 후기

2018.09.19 by J

영화 <안시성> <협상> <더 넌>을 본 주관 가득한 간략한 후기. 스포일러! 분명 승리의 역사를 재현한... 어쨌든 <협상>은 처음부터 순수 장르물의 재미가 반감된다. 대신 그 자리에 평소보다 머리를 조금 더 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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