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46) 신돈 - 고려 귀족들과 싸운 마지막 개혁가 / Korean history

in #kr-history6 years ago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신돈입니다.

예전 드라마에서 손창민씨가 신돈 역할을 해서 많은 인상을 남겼죠.

그럼 한번 이야기 나누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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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고려귀족들은 신돈을 요사스러운 승려라고 했습니다.

자꾸 이상한 제도를 들먹이며 땅과 노비를 '강탈'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백성들에게 그는 그야말로 구세주 여겼습니다.

백성들은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나타났다며 환영을 했습니다.

개혁은 그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366년 개혁의 사령탑 역할을 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는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토지와 노비 제도의 개혁이었습니다.

이 기구를 가동해 귀족들이 백성들로부터 뺏은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은 본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누가 반발을 가장 많이 했을까요??

당연히 권문세족들이었었습니다.

이러한 개혁 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권문세족들은 토지와 노비가 줄어 들면서 재산도 줄어 들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신돈은 그래도 개혁을 계속해서 밀어붙였었습니다.

공민왕이 그를 지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래 공민왕의 제안을 사양했다고 합니다.

개혁이 진행되면 권문세족들이 이간질을 할 것이고, 그러면 왕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민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말을 믿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고 그 약속을 믿고 신돈이 개혁의 지휘봉을 잡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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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변정도감]

하지만 이 약속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첫째, 권문세족의 반발이 너무 심했고, 둘째, 백성들이 신돈을 지나치게 신임했습니다.

이 두가지 모두가 공민왕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안 좋은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가 부녀자들을 희롱한다거나 승려인데도 술과 고기를 즐긴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이 공민왕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퍼뜨렸을 확률이 컷겠죠.

하지만 공민왕은 이 소문을 믿었습니다.

어쩌면 이 소문을 믿은 게 아니라, 이 소문을 핑계로 그를 버리기로 결심한 건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공민왕은 약속을 어기고 1371년 체포하라는 어명이 내리게 됩니다.

혐의는 역모! 왕을 해치려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어쨌든 곧 체포돼 유배 갔다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반란 혐의를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돈을 배신한 공민왕의 최후도 그리 명예롭지는 않았습니다.

공민왕은 말년으로 갈수록 음란해졌습니다.

젊은 소년들을 뽑아 자제위를 만들어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그러던중 후궁이 외간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 외간 남자는 내친김에 왕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1374년 공민왕은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참으로 허무하죠.

조정에는 비상이 걸렸고 왕의 자리를 비워 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적절한 후계자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다행히 반야란 여인이 낳은 공민왕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결국 왕에 올랐는데, 바로 32대 우왕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반야는 원래 신돈의 첩이었는데 공민왕이 몰래 신돈을 따라가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민변정도감을 만들어 개혁을 시도한 신돈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우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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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영원한 약속은 없나 봅니다. 다 내게 이로우면 약속을 하는데 불리하면 파기하고... 공민왕의 뚝심으로는 신돈의 개혁의지를 지지하기 힘들었겠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권력과 돈 앞에서는 의리라는 것은 사실 찾기 힘든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털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무엇보다 당시의 상황을 따져보자면, 공민왕은 고려 중심으로 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그 때 강력했던 귀족 세력인 권문세족은 '원의 권세'를 등에 업은 귀족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원에게 잘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을 겁니다.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이 맘에 들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었죠.

한줌 권력도 놓기 힘들어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비우는 것은 싶지 않은가 봅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싶네요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아요. 과거는 미래의 지표죠.

지금도 내일의 과거가 되겠죠 ㅎㅎ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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