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42)만적의 난 - 만민 평등 세상을 꿈꾼 노비 / Korean history

in #kr-history6 years ago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의 만민 평등을 꿈꾼 노비 만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무신정권 시대에 최충헌 이전의 집권자인 이의민은 천민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출세는 노비들을 자극했고.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도 혁명에 성공하면 권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동료 노비들과 개경의 뒷산(북산)에서 나무를 하던 1198년 5월 어느 날 노비들을 불러 모아 일장 연설을 시작합니다.

"무신정변 이후 천민 중에서도 실력자가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우리도 왕후장상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왜 주인에게 매질을 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여기서 왕후장상은 왕. 제후(귀족), 재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희망.jpg

거사에만 성공하면 노비들은 만적을 리더로 선출하기로 하고, 그달 17일 거사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결전의 날, 노비들은 흥국사에 모여 봉기한 뒤 각자의 상전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태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은 지켜지지 못 했습니다.

거사하기로 한 날짜에 약속 장소에 나타난 노비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거사 날짜를 다시 21일로 옮기고 모두 입 조심하기로 하고 돌아갔는데 하지만 곧 이 거사 계획이 탄로가 나고 맙니다.

함께 봉기하기로 했던 노비 가운데 순정이란 자가 자신의 주인에게 거사 계획을 발설하고 만 것입니다.

이 사실은 곧 최충헌의 귀에 들어갔고 최충헌은 즉시 만적을 비롯한 주모자들을 잡아들이라고 명을 합니다.

100여 명의 노비가 결박당한 채 끌려 들어왔고, 최충헌은 그들을 포대에 넣고는 강물에 수장시켜버립니다.

만적에 난에 참여했던 노비들은 봉기도 못해 보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용인시외버스터미널.jpg

그 후로도 무신정권에 저항하는 농민과 노비의 발란은 그치지 않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최씨 정권의 독재는 계속되었습니다.

1219년 최충헌의 뒤를 이어 아들 최우가 권력을 세습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다음은 최충헌에 이어 그의 아들 최씨 집안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던 아들 최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만민 평등을 꿈꾸웠던 만적의 생각을 다시금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모두에게 주워진 기회가 평등한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명절도 이제 이틀 남았네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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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tip2yo님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만적은 과연 진짜 이름이 만적이었을까 싶습니다. 거사를 실패한후 그의 이름을 표기도 안했을테고 이런 만적이 있었다고 해서 만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그 시절에 대단한 용기였던거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의 이름이 만적이 아닐수도 있겠네요
만명의 적 ㅎㅎ
사실 더 많은 만적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적은 난을 시작하지도 못했었네요.

어떻게 보면 그렇죠
하지만 시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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