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데이트 영화 (부제: 영화를 혼자 보게 된 이유 중 하나)

in #kr-gazua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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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주의] 포스팅할 내용이 있어서 정리하다가, #kr-gazua 식으로 쓰고 링크로 거는게 편할 것 같은 내용이 있어서 남긴다.

나는 외국에서 자랐는데, 흔히 말하는 조기 유학은 아니고 부모님과 다 함께 있었어.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다른 한국인이 없었지. 백인 이외의 인종이 거의 없었어. 나중에야 한 가족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집 아이를 학교에서 볼 때마다 중국인인 줄 알았거든. 뭐 한국 사람인줄 알았더라도 다를건 없었겠지만...

나중에는 시내에 있는 한인 교회에 잠깐 다니면서 좀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그 직전까지만 해도 매일 보던 사람 중 유일한 한국인은 가족 뿐이었지.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다가 온 어떤 한인 오빠가 영화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전혀 데이트로 생각되지 않았어.학교에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그 한인오빠랑은 그냥 친척이랑 놀러 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성이랑 둘이서 영화 보러 간 적은 없었거든. 당시에 매우 어렸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상호간에 뭔가 소심해서, 같이 영화보러 간 적은 없었어. (게다가 난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흑백 영화 보는게 제일 좋았으니까.)

재개봉 전용관에 가기로 했어. 그 오빠는 타이타닉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말했다시피 아무 생각이 없었지. 어차피 완전 현대 영화는 잘 안 보기 때문에 볼거면 그냥 때려 부시는 액션이 낫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근데 날짜가 꼬여서 다른 영화를 보게 된거야.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인)이라고 한국에서도 그냥 데블스 애드버킷?이라고 부르더라.

성인 등급이긴 했는데, 당시에 나는 한국 나이로 중 1? 정도였는데 그때나 성인이 되어서나 바뀐게 없을 정도로, 당시에도 성인으로 통과는 할 수 있었거든. 스토리는 그냥 뭐 파우스트에 묵시록 좀 섞은 그런 이야기였어. 별로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평이 괜찮더라.

알 파치노랑 키아누 리브스, 샤를리즈 테론이 나왔는데 간혹 나오던 낯뜨거운 장면들에도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알 파치노가 악마고, 테론에게 가학 행위를 한 걸 암시하는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나도 거기서는 약간 당황...

지금 생각해보면,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고 그 오빠랑 따로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딱히 아무 이유가 없었는데 왜 갔을까 싶은데, 그때는 그냥 한인 자체가 신기하고 좀 친근하기도 하고 해서 거절할 생각까지는 못 했네.

영화 보고 나서 시내에서 우리 아버지를 마주쳤는데, 그 오빠가 좀 당황하는 걸로 봐서 아 이게 데이트였나, 하는 생각을 했어. 엄마는 몰라도 아버지는 그런거 굉장히 싫어하시는데 왜 어릴 때는 그렇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소소하게 심려를 끼쳐드렸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뭐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를 탔어. 영화관은 시내였고 내가 사는 곳은 약간 거리가 떨어진 동네였거든.

그런데 마침 주말이었고,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는 동네에서 유일한 학교인데다가 엄청 커서, 시내에 다녀오는 학교 아이들과 마주칠 확률이 굉장히 높았지. 아버지를 만난 뒤로는 혹시 오늘 일이 남자친구 귀에 들어가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었는데...

내 초등학교 동창생이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던거야. 이름이 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원수 같은 새 걔 때문에 다음 날 학교에 소문이 났다. 같은 한국 남자랑 몰래 만났다고...덕분에 남자 친구한테 차였다. 몇 주간...

다른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보는걸 싫어하게 된 이유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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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국도 남사친, 여사친 개념으로 둘이 영화보러 가는건 용납이 안되는거야?

내 동창들이 좀 곱게 자라서 순진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어디든 사춘기 때는 유치하잖아 ㅋ 별 사이도 아니면서 목숨 걸린 듯이 좋아함...

데블스 애드버킷 재밌었는데.
알 파치노는 나이가 들수록 광기 어린 배역이 잘 어울리더라.

성적이 안 좋아서 좀 나중에 재개봉 했을 때 본거였는데....TV에서 상영하고부터는 평이 좋더라.

뭐라고 얘기해야지..옛날 생각나게 하는 글이야~~

사춘기 때 기억은 다 비슷한건가ㅎ

그랬군.. 혼자 보는게 편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지 이거 실연한 슬픈 이야긴데 왤케 웃기지 ㅋㅋㅋ
싫어하게 된 이유도 너무 귀엽당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어차피 걔랑은 맨날 헤어지고 만나고 그랬고, 저 일 이후로도 다시 만나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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