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3

in #kr-feminism3 years ago

섹스 #3

1.

원래 #2 에서 끝낼 계획이었는데 재미있는 댓글을 받아서 #3 도 쓰게 됐다.
“애인이랑 같이 샤워하면서 물 온도 맞추는 거 깨알같이 귀엽지 않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질문 당사자분은 #1 때부터 멋진 질문을 남겨주신 분이기에 감사하다. (_ _)

저 질문을 보고 샤워하는 때를 회상해 보았다. 물 온도를 맞추느라 “괜찮아? 안뜨거워?”를 연신 서로에게 묻는 애인과 나를 상상하고 있자니 확실히 귀엽긴 하다.
여하튼, 저 분 덕분에 깨알같이 귀여운 장면들을 회상하고 있다.

2.

항상 섹스를 함에 있어서 내 원칙이 하나 있는데, 반드시 샤워를 하고 이후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안 씻고 하면 뭔가 찝찝하다. 다만 내가 샤워를 하기 전에 항상 하는 일은 애인에게 키스를 하는 일인데, 샤워를 하지 않으면 그 이상으로 진도를 나가지 않을걸 알기에 애인은 그 순간 항상 나를 부추긴다.

그 부추기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엽다.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또 섹시하다. 나는 귀여움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남성을 좋아한다.

3.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이건 과거 애인에 관한 것이다. 흡연자였던 그는 이따금씩 내게 담배피고 오는 걸 허락을 구했다. 그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렸는데 당시 콩깍지 효과로 귀여워 보였음.
그런데 나는 이 당시 전 애인이 내심 서운했다. 나라면 비흡연자인 애인을 위해 애인을 만나는 동안에만이라도 담배를 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뭐, 그렇지만서도 담배향이 나는 키스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이야기 한 건데, 담배냄새를 맡는 것과는 달리 키스할 때 담배 향이 나는 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3-1.

근데 현 애인이 담배피고 오겠다고 하면 너무너무 서운할 것 같다. 전 애인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나는 비흡연자인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리고 괜히 ‘이 사람은 나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나는 속 좁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저런 사소한 것들을 마음에 담아 둔다.

4.

계속해서 생각해 봤는데, 사실 섹스를 하는 도중에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엽다고 느끼는 시간은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애인은 섹시하다. 살짝 자랑을 하자면 애인은 등빨이 좋다. 나랑은 다르게(...) 단단한 몸을 가져서 그의 몸을 만지는 게 좋다.

삽입 섹스를 할 때엔 애인의 어깨나 허리를 잡는데, 그 자세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단, 애인이 귀를 애무할 때면 전혀 안정적이지 않음.

5.

계속해서 애인의 귀여운 구석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 애인은 섹시함에 훨씬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애인에게 내 귀여움에 대해서 물었는데, 꽤 티피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답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보면서 왜 흥분했냐고 물을 때, 옷을 벗기 전에 부끄러워 하면서 노려볼 때, 그리고 자기 이름을 부를 때 귀엽단다. 자기 이름을 부를 때라는건 아마 삽입섹스 도중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다.

6.

그 외에도 애인에게 여러가지 물었는데, 그중 꽤 의외의 답변도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는 순간이 서로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는데, 애인은 귀여운 것보단 애틋하다고 한다. 샤워할 때 서로가 친밀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단다.

또 귀엽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무해한 이미지라는데, 섹스라는 건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귀여운 것보단 “어른어른”한 것으로 느껴진다더라.

임신 걱정이라던지(완벽한 피임은 없으니까), 내가 아플까봐, 혹은 어떻게 해줘야 내가 더 좋아할까 생각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자신에게 신경 쓰는 건 사정시간밖에 없고 나머지는 내 반응을 관찰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에 나를 배려하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7.

애인이 섹스할 때 나에게 부차적인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는데, 나는 사실 딱히 애인에게 그런 배려를 한 게 없던 것 같다.

가령, 애인이 상위 포지션에 있을 때 내가 무거워할까 봐 팔에 힘을 줘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한다는데 나는 이때까지도 정말 몰랐다. 또 섹스를 하고 나면 항상 사타구니 쪽이 뻐근했는데, 단순히 내 유연성의 문제인 것 같아서(...) 애인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한 번 섹스 후에 허벅지 안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이후로 항상 나를 엄청 걱정해 주는데, 당신 책임이 아니니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8.

귀여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산으로 가버림.
어... 귀엽게 마무리를 하고 귀여운 글을 쓴 척 해야겠다.

섹스 후에 냉장고에서 미니 음료 캔을 따서 마시는 내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가끔 애인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마실래?” 하는 모습도 매우 귀엽다.
또 섹스 후에 틴트를 다시 바르는 내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는, 틴트를 블러셔 대용으로 볼에다가도 톡톡 찍으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제 그거 볼에다가도 할거지?” 라고 말하는 애인의 모습도 귀엽다.
그리고 나는 이제 #4 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