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프로젝트] 포토에세이 - 아침을 여는 사람들

in #kr-essay6 years ago (edited)

여섯번째 오마주입니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kakaelin 님의 에세이를 추천합니다. 사진과 글이 잘 어울려 제 마음대로 포토에세이라고 소제목을 달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성실한 삶이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
Written by @kakaelin | 2018년 03월

[드르륵 드르륵, 쿵]

오전 7시가 갓 넘은 시간.
바로 옆 빌라 신축공사 현장은 작업 준비로 분주하다.
모처럼의 연차휴가날인데, 열린 창문 틈새로 갖가지 소음이 귀를 찔러온다.
드르르르르륵.




복잡하고 북적대는 도시에 지쳐
도망치듯 이사온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동네는
1년도 되지 않아 온통 공사현장으로 변했다.

드르륵, 드르륵.

이게 아닌데.
어차피 늦잠은 글렀다 싶어 산책이나 나가자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평소 같았으면 막 회사에 도착했을 이른 시간.
천천히 옮기는 걸음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출퇴근 차량들.

동네에 몇 없는 버스정류장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있다.
한 걸음 떼기가 무섭게 분주해지는 거리.
이 한적한 동네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 피로가 역력하다.
모두들 지난 밤의 짧은 휴식으로는 채 털어내지 못한 노곤함이 어깨에 얹혀있다.
더 자고싶겠지.
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싶을 것이다.
내가 그러니까.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권 내에 있는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피로를 함께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참 열심히 산다.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뭘 해서 뭘 이루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
문제는 성실하게 살아가는가야.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성실하게 이루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던 훈계가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해서 귓가를 울린다.




성실하다는게 무엇일까?
나름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 같다.

자랑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은 월급을 받고,
특별히 과소비를 하는 것도 아닌 내게 “생활을 성실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더랬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5일장이 섰다.
5일에 한 번 옷, 채소, 쌀, 반찬 뿐만 아니라
각종 불량식품과 빛바랜 장난감이 늘어서고,
심지어는 이동식 놀이기구가 단지 내 주차장을 점령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그 조악한 것들을 무엇보다 기다렸다.

대학 이후 독립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의 풍경이고,
대형 마트에 밀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열까 말까한 행사가 되었지만
그 곳에는 여전히 장이 열린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예뻐. 정말 열심히 사는게 보여서.”

얼마 전 어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닭강정 한 접시를 내놓으며 말씀하셨다.
작년부터 장이 열리면 스물 초반 남짓한 부부가 와서 닭강정을 판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많이 못배운 티가 나.
그런데 얘네가 말하는게 너무 예뻐.
젊은 사람들이 힘든것도 마다하지 않고 겸손하게 참 열심히 살아.
그냥 예뻐보여서 꼭 하나씩 사게 돼.”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닭강정은 달콤하고 짭짤했다.




“이번에 와이프 생일 선물로 가방을 사줬는데,
이게 왠만한 중고차 값이 나오더라고. 원래 가방이 이렇게 비싼거야?”

담배를 피던 팀장님이 툭, 하고 말을 던져놓는다. 눈동자가 슬쩍 내 곁을 비껴간다.
이건 질문이 아니다. 큰 돈을 쓰고 티내고 싶은 팀장님 특유의 허세끼 섞인 자랑화법이다.
이럴땐 아유, 잘하셨어요, 형수님이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정말 좋은 남편이군요, 우쭈쭈, 라고 해줘야 하건만, 영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질 않는다.

처가댁에 들일 함을 준비할 때,
어머니는 아내에게 “하나쯤 좋은 물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하시며 갖고 싶은 가방 하나 사라며 봉투를 쥐어주셨다. 아내는 그 봉투에서 20만원을 빼 메이커 없는 가방을 사고, 나머지 돈을 전세자금에 보탰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 하나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모두들 바쁘고, 누구나 치열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의 삶에 성실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시선에 치중해 중심을 잃곤 한다.

나 또한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음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내일도 어김없이 오전 7시면 공사장은 분주해지고,
버스 정류장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생길 것이며,
나는 차를 타고 회사를 향할 것이다.

성실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침을 여는 사람들 속에서,
내 삶은 얼마나 스스로를 향해 열려있는건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된다.



  • 오마주 프로젝트 - 한 달이 지난 자신 또는 타인의 글로 누구나 참여가능합니다.
  • 이 글은 오마주 프로젝트 로 재발굴한 글입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kakaelin 님에게 있습니다.
  • 이 글의 SBD 수익은 원저작자에게 전달됩니다.
  • 원글링크 : 아침을 여는 사람들
  • 원글의 이미지를 가져와 약간의 수정을 했습니다.
  • 몇 주 전부터 따옴표를 " " 대신에 “ ” 를 쓰고 있습니다. 훨씬 예쁘지 않나요?😊
    코드로는 <q></q>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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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_^ @soosoo 님께서 쓰신 마크다운이 너무 멋져서 @kyunga 님께서 만드신 걸 알고 찾아서 잘 사용했다고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필요했는데 잘 사용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울곰님ㅎㅎ

엇! 내가 만든것처럼 할라고 했는데 딱걸렸당~

포토에세이 멋지네요

요즘은 성실은 그냥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사용자들이 쓰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실보다는 그냥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맞아요ㅎ 사실 요새는 성실이란 말이 그렇게 달갑진 않은 것 같아요. 매일매일 행복을 추구하기에도 벅차니까 말이죠ㅎㅎ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사진에서 많은 차이가 보이네요! 이미지가 주는 느낌때문에 같은 글도 다른 느낌을 전달해주는군요. 좀 더 많이 배워가게 됩니다. 따옴표 코드 꿀팁도 감사합니다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ㅎ 앞으로 자주 뵈어요!

또 한분이 경아형의 은혜로운 터치를 받으셨군요.^^

키위형 그림이 더 은혜로운듯한데요?ㅋㅋㅋ
그림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ㅋㅋ

믿고 보는 경아님 픽..... 감성 촉촉한 비오는 날씨에 읽으니 더 좋으네요. 세상에는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왜이렇게 많은 겁니까!

힘이되는 송이님 댓글 감사해요!ㅎ
세상에 참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취미로만 쓰려고 합니다ㅋㅋㅋ
산전수전 겪어야 그제서야 책 하나 써볼래나..? 싶어요ㅎㅎ

역시 경아님의 큐레이션!
원작자분의 글과 사진의 어우러짐 그리고 원작자님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큰 울림과 각성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ㅋㅋ 우유님 글 또 올려주세요ㅎㅎ

경아님이 경기도 광주에 계시구나... 하면서 열심히 읽고, 댓글을 봤는데...
경아님이야기가 아니라...kakaelin님 글이 였네요!
오마주 프로젝트...흠 글을 띄엄띄엄 읽어면 큰일나겠어요! ㅋㅋ

넹ㅋㅋ 전 서울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습니다ㅎㅎ
독거님 불금되시구요ㅎㅎ

성실하게열심히사는사람들의모습에서투정부리던제자신을반성하게되네요 좋은포스팅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열심히 살아내셨을꺼에요ㅎ
그걸로도 충분히 잘 하고 계시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마음뭉클해지는 글이네요. (역시 유 아 더 베스트 큐레이터...ㅋ)

댓글이 늦었네요ㅎㅎ 얼른 일 마치고 불금맞이합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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