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in #kr-emergency2 years ago (edited)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할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안 쉬셔서 응급실에 갔다가 방금 막 퇴원하셨다고 한다. 이번주 토요일이 할아버지 생신인데,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일을 일단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인지 능력이 있으시긴 한데, 거동이 불편하시고 목에 혹으로 인해 음식 먹는 것이 불편하신 상태이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께서 잠에 들었다가 숨을 안 쉬시는 것 같다고 작은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작은아빠가 119 에 전화를 걸어 일단 할아버지를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동시키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헐레벌쩍 병원에 가서 하루종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전화가 온 시각이 8시이고 그 때 막 집에 도착했다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연락하는 소리를 듣고, 나 스스로도 약간 울컥해지는 그런 기분을 받았다. 몇년 전 고모의 병문안에서도, 그리고 몇 달 뒤 장례식 장에서의 경험이 나의 성인이 된 후 처음 인지하게 된 죽음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돌아가셨고 그렇기에 크게 뭔가 애틋한 느낌이 없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기일을 딱히 챙기고 제사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셨기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정말 아주 가끔 하게 된다.(기억도 사실 거의 없다- 외할머니는 사진으로 봤고 외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같이 살았었다는데, 응급실 엠블런스가 온 날 정도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성인이 되기 바로 직전, 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애초에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고 했고, 사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드라마에 나오는 한편의 스토리의 단역이 사라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밖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 십년 쯤 뒤, 외증조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증조할머니의 경우 100세를 넘기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항상 나를 보면,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외증조할머니의 첫째가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첫째가 어머니 그리고 그 첫아들이 나다), 외증조할머니는 자식을 정말 많이 낳으셨고, 그 자식들로 인해 말년까지도 상당히 안 좋은 일들을 겪으셨다. 예전에 스팀잇 글에 기록한 적이 있는데, 외증조할머니네, 외할머니네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이미 드라마로 나온바 있을 정도로 정말 힘든 삶을 사셨다. 편한하게 그래도 밝은 얼굴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우리가족은 장례식에 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직접 내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고 얼마 뒤 죽음을 경험한 것은 고모가 처음이었고, 그 당시 나는 대학원 생으로 한참 힘들 때였어서 정말 슬프게 울었다. 사촌누나들보다 내가 더 서글피 울었고, 고모의 관을 들고 삽을 푸고 하는 순간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고모네 집에 맡겨놓고 살고 그랬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큰고모는 항상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을 해주셨고 긍정적인 모습만 기억에 남아, 정말 슬펐다. 암 재발로 돌아가셨는데, 사촌누나들은 사촌누나의 사업을 도와주면서 고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재발한것이 아니냐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고, 장례식장에서 며칠 밤을 세우며, 장례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나의 답없는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로 엄청난 암박을 받았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신지는 꽤 됬다. 처음엔 밥을 잘 못 드신다고 해서 걱정되서 선식이나 초콜렛 등을 사가지고 할아버지네 댁에 챙겨드리고 했었고, 이제 참고 드신다고 하셔서 넘어갔었다. 올해 설날에 서울에 올라갔을 때 보고 그 뒤로는 서울에 올라간 적이 없으니 거의 3개월간 얼굴을 못보긴 했다. 이번주 토요일이 할아버지 생신인데 서울에 올라가야 할까?, 내 생일도 있기는 한데.....

응급실, 그리고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나 보다. 그냥 순수학문 공부하지 말고 다른 친구들처럼 의대나 진학하거나 의전원으로 갈껄 괜히 순수학문을 파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그래도 의사가 되면 내 자신이나 내 가족들이 아플 때 그나마 환자의 상황에 대해서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가족이라 나도 객관성을 잃어 판단이 잘 되지 않으려나? 누군가 아플 때, 이럴 땐 꼭 의사란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된다. 뭐가 되어도 잘 할 자신이 있고 잘할 거라고 기대를 받았기에, 사실 지금이라도 의과학자의 길도 있긴 한데.....

손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수술이런것은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순수학문만 우선시하며 공부해왔던 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보면 책상 앞에서 탁상공론을 하고 있는 것(실용성과 전혀 동 떨어진 것이기에)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내가 가우스나 아인슈타인 급의 학자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안 들고, 어렸을 때 높은 IQ 가지고 자신감만 넘쳤지 세상에서 뭔가 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개인 능력이 그 배리어를 깰 정도는 안 되는 것 같다.

마음이 우울해 이런저런 푸념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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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학문을 하는 멋지신 분.
남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을 가려는 분.

가족이 아프면 집안에 의사가 있나 보게되고, 소송이 걸리면 검사 하다못해 순경이라도 있나 둘러 보게 돼지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자기자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힘내야지요 파이팅!

힘내세요~

넵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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